017 노란 맥심을 좋아하지만

니카라과 산호세 워시드

by 만델링

작은 애는 학교 갔냐? 숭숭한데 밥 잘 먹이고 그래라.

간식 챙겨주고 키 크는 약도 꼭 먹이고. 어머님이 전화하셨다. 구순이 가까운데 늘 자식이 걱정이다. 얼마나 여물어 보이지 않으면 저리도 걱정일까 싶다가 내가 아이를 보는 마음을 생각하면 그냥 또 웃음이 난다. 자식은 언제나 어리다. 어머님은 불편한 허리와 다리로 아무렇지 않게 밭에서든 부엌에서든 일하신다. 또렷하게 보이지도 않으면서 음식을 숭덩숭덩 만들어 주신다. 무척 소박하게 보이나 그릇 바닥을 긁을 만큼 맛있다. 나는 요리에 진심인 적 없다. 깨끗하게 손질하여 제대로 익혀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요리 프로그램 레시피를 따라 계량컵을 사용해 요리를 한 적도 있다. 지나치게 노력을 요하고 만들다가 지쳐서 그만뒀다. 음식 만드는 일에 이렇게 노력을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눈썰미가 없고 솜씨가 없다. 특히 무엇을 만드는 일은 잼병이다. 어머님은 자식 먹이는 일이 즐거움이고 삶의 보람인 분이다. 그러니 그분의 음식은 항상 맛있을 수밖에.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지 않은 까닭은 진지한 마음 없이 건성으로 요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계량컵으로 정확히 계량했더라도 사랑과 정성이 든 어머님 음식처럼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머님은 오직 밭 일이 우선이다. 최근에는 수확해서 말린 고추를 팔라고 하셨다. 거둬들인 것은 많은데 소비할 일이 걱정이셨다. 제대로 하는 일은 없다. 군소리 없이 심부름 잘한다. 성격이 급해 손발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어떡하든 듣자마자 해결하는 일은 일급이다. 내가 맞춤이었다. 마른 고추 25근을 팔았다. 한 근은 600g이다. 내가 판 건 15Kg이다. 근 당 이만 원, 합이 오십만 원이다. 고추를 가지러 가면서 돈을 먼저 드렸다. 오만 원을 내게 주신다. 차비하라고 하셨다. 어머님 넣어두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 않고 냉큼 공손히 받고 감사하다 말씀드렸다. 고추를 다 팔았다. 거래처가 없긴 어머님과 마찬가지다. 꾀를 냈다. 친정엄마에게 스무 근을 드렸다. 어머님이 사돈 김장하라고 주셨다고 말했다. 감사해서 어째 우리는 뭘 드리나 하신다. 엄마가 감사 전화를 하면 어머님은 뭐라고 하실까, 에라 모르겠다. 나머지 다섯 근도 팔았다. 항상 요리에 성의를 보이는 언니다. 반찬과 국을 여러 번 얻어먹었다. 받지 않으려고 하는데 꼭 받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에 반찬을 얻기 위해서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머님의 고추는 주인을 찾아 완판 되었다.


오늘의 커피는 참 이국적이다. 커피가 이국적인 것이야 당연하지만 니카라과는 더 그렇다. 니카라과 산호세, 이름처럼 서글서글하다. 거대한 활엽수와 키 큰 나무가 있는 숲이 연상된다. 나무가 만든 그늘에 앉아서 흘러간 세월을 떠올리는 풍경이 보인다. 그늘 밖은 뙤약볕이지만 그늘 안은 서늘하여 하루의 고된 노동이 사라지는 기쁨을 느낀다. 물씬 풍기는 독특한 향기와 주황색 과일에서 나오는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검은색 액체는 윤슬처럼 반짝인다. 푸짐한 과일 바구니를 앞에 두고 있는 느낌이다. 목마름을 씻어준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 살짝 식혀 마셔보자. 하얀 거즈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보는 맛이다. 꽃물결이 인다. 저녁나절 밥 하는 냄새에 실려온 고소한 쓴 맛이 난다. 이탈리아 파르마산 치즈처럼 쫀득쫀득하다. 가벼운 바람이 불 듯 사랑스럽다. 어머님의 고생스러운 노동 앞에 한 잔 드린다. 단것을 좋아하는 분이라 맛있게 드실 것이다. 벽에 일찍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어머님이 커피 한 잔에 에너지를 얻는다면 나는 참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