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맞춰

콜롬비아 라 카시아니

by 만델링

붙임성 좋다. 분위기 한눈에 스캔 완료. 미소는 천상급. 결론은 예쁘다, 늘씬하다, 깊은 갈색 눈매는 매혹적이다. 쇼트커트를 했다. 키는 크다고 할 수 없다. 158cm 정도다. 그녀가 피아노 앞에 앉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은 푸른 댓잎이 사르륵거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더블 A형이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O형이라 여긴다. 일할 때는 카롭고 꼼꼼하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웃자란 꽃대처럼 머쓱하다. 무슨 일을 하던 정확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반듯하게 자로 잰 듯 처리하는 모습에 감탄한다. 건반 위를 움직이는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다가가 만지고 싶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그녀를 찾아간다. 대나무에 빨간 깃발 린 곳 아니다. 마하 C5 두 대가 있다. 콘서트 홀 연주 때 볼 수 있는 그랜드 피아노다. 매끈하게 빛난다. 검은색 광채가 멋진 피아노다. 풍성한 음향과 울림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녀가 있는 곳은 언제나 피아노 교습소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청소하는 그녀를 본다. 굽 높은 슬리퍼를 신고 밀대질 하는 모습이다. 음악이 흐르는 것도 아닌데 멜로디를 따라 흔들리는 기분이 든다. 힘찬 목소리로 부르면 까르륵 웃는다. 어찌 지냈냐고, 왜 그리 얼굴 보기 힘드냐고 묻는 그녀의 목소리가 좋다. 큼하고 싱그럽다. 구슬 같은 수다와 거침없는 처방을 받고 집으로 오는 길은 가볍다. 막막하고 쓸쓸하던 마음이 녹는다. 뾰족하게 섰던 마음이 둥그레진다. 길고 지루한 여름이 끝나는 기분이 든다. 낯익은 풍경이 새삼 고맙다.




모든 일에 관심을 보인다. 40대 아저씨 개그를 능란하게 한다. 계란 프라이와 클래식 스팸을 조선호텔 수석 주방장처럼 굽는다. 햇반을 데워 갓 지은 밥보다 한층 맛있어 보이게 담아내는 특기가 있다.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문과반 고2 남학생이다. 그와 같은 집에 사는 다른 그가 있다. 모든 일에 무심한 중년이다. 정돈된 소파에서 조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에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양손을 똑같은 모양으로 손등이 위로 향하게 스틱을 잡고 연습한다. 15분 이내 압축 설명하는 영화 리뷰를 즐기는 유튜브 사용자다. 여러 편 보면서 기쁨을 느낀다. 즘 고2 그와 중년 그가 저녁 산책을 한다. 굵고 짧은 팔을 엇걸어 팔짱을 끼고 목이 어깨에 닿을 듯한 뒷모습으로 걷는다. 나란히 걷는 둘의 등에서 노랗게 물든 늦가을의 다사로운 평온함이 느껴진다.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 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평화로움이다. 고2 그의 앞날을 고민하는 중년 그

의 마음은 오래 묵은 나무 둥치 마냥 무겁다. 소수점 이하까지 재는 내신 성적표를 보면 고2 그의 미래는 혹독한 겨울이다. 나는 둘 사이에서 하얗게 말라버린 작은 겨울 개울 같은 마음으로 지낸다. 둘을 보듬는 일은 쓴웃음이 나는 일이다. 허벅지에 '참을 인' 세 번을 새기니 하루가 끝난다. 히야~ 오늘도 수고했구나! 갑자기 친구와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싶어 진다. 바닷가 근처 깔끔하고 단출한 횟집에서 소주 한 병 나누고 싶다. 양식이든 자연산이든 싱싱한 생선회 한 접시면 충분할 것이다. 마음은 벌써 집을 나섰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다. 꼬드길만한 사람이 없다. 평소 인맥 관리를 하지 않은 탓이다. 주소록을 뒤적인다. 고민 없이 전화해도 좋을 사람이 있나 헤아린다. 음, 아무래도 앞뒤 없이 전화할 데는 없다. 나는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구나, 편하게 놀자고 말할 사람 하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커피는 묵직하고 파워풀하다. 8비트 로큰롤 리듬을 두둥두두둥 두드리는 맛이다. 힘깨나 쓸 것 같은 여장부의 팔뚝이 그려진다. 힘이 있고 무겁지만 남성적인 커피는 결코 아니다. 다다미가 깔린 소박한 료칸의 작은 방에서 혼자 마시는 커피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어둑한 그늘이 느껴지는 산미가 있다. 다이내믹하고 섬세한 맛이다. 고로 여성적인 커피라고 정의한다. 사치스러운 외양이다. 활짝 핀 작약 같다. 상하고 우아하다. 세월이 가고 시간이 흘러도 아름다운 여인이다. 지금보다 몇 살 더 많은 나이가 되었을 때 닮고 싶은 여성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절제미가 있다. 완벽한 균형감이다. 입안에는 진한 초콜릿 향기가 가득 찬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몸을 뉘고 싶은 커피다. 서향 볕이 길게 늘어진 호수에서 쉬면서 즐기고 싶다. 가랑가랑 떠들면서 맛있게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고 말하는 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