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 일단 해보자

예멘 모카 마타리

by 만델링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 애면글면 말거라. 하도 많이 들었지만 대체 거기서 거기는 어느 만큼인지 모르겠다. 느 날은 사람은 다 똑같어하셨다. 오늘은 별별 놈이 다 있어하신다. 말씀하실 때마다 의미가 다채롭다. 때로는 까끌까끌 한탄인가 싶다가 지금은 여한 없이 충분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열심히 듣고 연습해도 늘지 않는 외국어 습득처럼 어려운 말씀이다. 오래 산대도 별것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 늘 모르는 것이 많다. 북하면 모른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아는 듯 웃어 넘어간다. 생의 시기마다 찾아오는 어려움과 난해함에 여전히 헤맨다. 그럼에도 최소 1인분의 몫은 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몸에 힘을 빼고 내 호흡에 맞춰 하나씩 한다. 여하튼 점점 좋아질 것이다. 더디지만 노력은 게을리하지 말자. 스스로 주문과 응원을 한다. 어머님은 아쉬운 게 있다고 하셨다. 다리 아프기 전에 가지 못했던 명산과 사찰이 자꾸 생각난다 하신다. 내게도 하고 싶은 건 미루지 말라고 하신다. 래, 미루지 말자. 챙기며 살아야겠다 생각한다.


메모를 한다. 조금 근사한 표현으로 버킷리스트다.

1. 근력운동 하기. 어느 날부터 무릎이 시큰거렸다. 크게 한 노동도 없는데 온몸이 쑤셨다. 일시적 갱년기 장애라 생각했다. 건강검진 결과 근력 부족이었다. 퇴행성관절염인 줄 알았는데 골밀도 부족이었다.

2. 동남아시아에서 살아보기. 일명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기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탄다. 우리나라보다 물가도 저렴하다. 따뜻하고 물가도 싼 그곳에서 온전히 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푼다. 덜 쓰고 덜 갖고 한껏 게으르게 살아보고 싶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 흰수염고래를 만날 수 있다는 스리랑카, 모든 게 느리게 흐른다는 라오스에서 살고 싶다.

3. 중국어 배우기. 이미 시작되었다. 한어병음과 간체자 쓰기는 완성되었다. 꾸준히 하면 쉬운 동화책은 곧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홍콩 배우를 만나러 갈 것이다. 여고 때 친구들이랑 이야기했던 코팅된 책받침 속 인물이다. 지금도 현역으로 열연 중이다. 호호 할아버지 얼굴이 되었지만 그래도 멋짐은 남았다. 구 손 잡고 만나러 갈 것이다.

4.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2025년에 할 것이다. 남편이 퇴직을 했거나 할 즈음이다. 야보고의 유해가 발견되어 순례자가 오가기 시작했다는 길이다. 불구불한 길을 나작나작 걷는다. 당히 쉬어가며 걷는다. 그늘에 앉아 지나가는 순례자를 찬찬히 본다. 긴장감은 덜고 지루함은 벗고 마음은 필요한 에너지로만 채울 것이다.

5. 일본 간사이 료칸 방문하기. 목록 중 가장 쉽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로 세상이 막혔다. 어쩌면 맨 나중에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본 정통 료칸에서 도도하게 솟아오르는 노천탕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바람을 쐰다.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니 벌써 손끝이 저리다. 하지만 비용을 생각하면 너무 무리한 사치가 아닌가 싶다. 목록에서 빼야 하나 고민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이다. 이루기 위해서 건강한 체력과 돈이 필요하지. 객기와 만용으로 비치지 않게 차근차근 부도 하며 준비해겠다.


오늘의 커피는 예멘 모카 마타리. '예멘'이라는 지명이 익숙할 것이다.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있는 국가다. 천일야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모카'라는 말도 물론 친근할 테다. 예멘 홍해 연안의 항구 도시다.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커피 무역의 중심지였다. 마타리는 영화 마타하리 주인공 이름처럼 들린다. 세 단어의 연관성을 굳이 찾는다. 예멘 모카항에서 수입한 커피콩으로 마타하리가 향미가 아주 좋은 커피를 만들었다. 이 정도... 빈약한 상상력이다. 햇살은 포실포실하고 바람이 자르랑자르랑 분다. 잘게 부서지는 햇살에 눈을 찡그리고 마신다. 라디오에서 '내게 사랑은 너무 써~'하는 옛날 곡이 흐른다. 리즈시절에 쉼 없이 부르고 듣던 노래다. 쓴웃음이 난다. 마타리는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 모양과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로스팅 후 원두의 색깔이 다양한 편이다. 그런 외양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마타리가 가지는 매력은 폭발적이다. 풍부한 향과 길게 남는 좋은 쓴 맛이다. 초코향의 여운이 오래 이어진다. 흙내음, 삼나무, 목탄, 잘 마른 장작의 내음이 난다. 농밀하고 크림 같은 달콤한 맛을 피워낸다. 진하고 깨끗한 맛이다. 태생의 단점을 맛의 정점으로 성했다. 프리카 원두가 처음 도착하여 커피의 세계적인 애칭이 된 모카 마타리. 커피 3대 천왕이라는 말이 헛말은 아니다. 심한 허기가 느껴질 때 마시자. 그 달짝지근한 맛과 향에 취해 하루 종일 경망스럽게 웃게 된다. 매일 밭에서 노동하고 밥 하시는 어머님이 드시다면 야야, 우리 수박 한 덩이 들고 저짝으로 다녀오자 하실 맛이다. 마타리는 한평생 한 사람의 곁에서 인생을 마무리하는 허전하고 쓸쓸하고 단단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