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도 쓸수록 늘어나나? 근육처럼 키울 수 있는지 궁금하다. 가능하다면 용량을 늘리고 싶다. 대용량 뇌로 닥친 일을 빠르게 해결하고 남은 시간은 커피 콩알 자르륵거리며 놀고 싶다. 일이 많아지고 빠르게 잘하려고 하니 고민이 많다. 처리 순서에 대한 것과 원만하고 효율적인 해결에 대한 것으로 나눈다. 매번 곤혹스럽다. 물론 웬만한 답은 안다. 당장 해결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될 일을 구분하면 된다. 전자는 감정의 움직임 없이 해결할 수 있다. 세탁물 찾기, 자동이체 등록하기, 폐가전 수거 예약하기, 저녁 장보기다. 하지만 가짓수가 많고 번번이 귀찮다. 후자는 조금 무겁고 힘들다. 밥을 챙기는 일과 긴밀히 연결된다. 마음이 쓰이는 일이라는 뜻이다.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라 많이 피곤하고 지친다. 에너지가 충분할 때는 쉽게 된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심드렁할 때는 애를 쓰다가 좌절한다. 평화로운 일상이 막힌다. 잠시 걸어야겠다. 마음의 용량을 늘린 후 해결해야겠다. 걷는다는 것은 머릿속을 정리하는 일이다. 복잡한 것을 간결하게 한다. 답이 없는 일도 좀 떨어져서 보게 한다. 그러면 보일 때가 있다. 애매한 것은 집중해서 모호함을 해결하게 한다. 걷기는 아들과 하는 답 없는 다툼에서 나오게 한다. 엄마의 영역이 어디까지 인지 알려준다. 자식을 떨어뜨려 놓고 기다리라고 처방한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라 한다. 마음 흔들리지 말고 따뜻하게 안아주면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무력하고 싸움에서 진다.
메뉴판을 보고 골라보자. 나이테가 보이는원목 메뉴판이다. 핸드드립 주문 전용이다.결이 고운 나무판이 반질반질하다. 매끄러운 느낌이 좋다. 편안하다. 손때가 묻진 않았지만 시간이 새겨진 듯 바래진 느낌이다. 주문하기 수월하다. 한글이 먼저 나온다. 괄호 속에 영어가 적혔다. 대륙별로 커피 이름이 나열되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순서다. 로스팅 단계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있다. 오감을 열고 풍미를 느끼는 방법과 수확량이 적어서 유명해진 원두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평소 알던 몇몇 카페랑 운영 방식이 다른 듯하다. 주인장의 커피 사랑이 보인다.
꽃향기 남발하는 커피가 아니다. 묵직하고 부드러운 커피다. 진한 갈색 액체가 쌉싸름하다. 꽃바람 들어서 풀석거리다가 차분히 제자리로 돌아온 방랑자를 닮았다. 인도네시아 커피다. 사색에 잠긴 듯 깊게 가라앉는 맛이다.
카페에서 주인장의 코피 루왁을 마실 수 있다면 행운이다. 핸드드립의 장인이라 일컫는다. 한 잔 기준으로최소 만 원 이상은 지불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마셔볼 수는 있지만 굳이 구하지 않는다. 희귀한 커피 아니어도 근사한 커피가 두루두루 있다. 내 마음에 들어온 커피는 만델링이다. 두 번 구운 쿠키 마냥 구릿빛으로 반짝인다. 매끈하게 볶아진 만델링이 묵직한 향을 피운다. 천천히 마셔 볼까?
인도네시아 만델링은 화산지형에서 탄생했다. 화산토는 물 빠짐이 좋다. 수마트라 섬에서 재배된다. 독특한 개성을 지녔다. 원두 봉지를 열면 크리미한 향이 난다. 버터리한 기름진 무엇이 들어 있구나, 바로 알아챈다. 수동 핸드밀로 드르륵드르륵 간다. 물줄기를 가늘게 하고 좀 빠르다 싶은 속도로 내린다. 나무, 초콜릿, 흙 같은 향과 묵직한 느낌의 쓴 맛이 가슴에 닿는다. 시간 속에서 낡아가는 오래된 성당이 보인다. 걸으면 나무 바닥에서 깊이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환청이다. 달달하고 고소하다. 참 좋은 맛이다. 만델링은 주체하지 못하는 열정과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한다. 각진 삼각 어깨는 숱한 여성의 눈길을붙들 것이다. 하지만 겉보다 은근하게 부드러운 속에 반할 것이다. 자제할 줄 아는 친구 같은 남자다. 애석하게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없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다. 행여 그런 남자를 보거든 같이 볼 수 있게 누군가 카톡을 보내면 좋겠다.
내 필명이 만델링인 이유는 2010년으로 거슬러간다. 모 카페에서 블라인드 테스트 대회를 했다. 잘 볶은 원두 20g을 참가자에게 준다. 받은 원두를 직접 갈아서 내려 마신다. 음미한 원두 이름을 적는다. 커피에 대한 품평도 같이 쓴다. 갈지 않은 원두를 주는 것은 모양과 크기를 살피라는 뜻일 게다. 취향대로 마시고 충분히 느껴 원두를 설명하는 게임이었다. 그때 내가 맞힌 원두가 만델링이다. 처음으로 게임에서 승리했다는 기쁨을 느낀 때였다. 다음에 글을 쓴다면 필명은 '만델링'으로 해야지, 했었다. 그리하여 나는 by 만델링이다.오늘의 커피는 나의 고민을 자유자재로 몰고 가 버릴 건 버리라고 쓴소리 한다. 담아두지 않아도 되는 건 깃털처럼 가볍게 훌훌 털어버리라고 한다. 최소한의 무게만 지니고 살라고 한다.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부족한 용량으로 더 잘하려고 아등바등하지 말란다. 고민할수록 나아지지도 않는다. 걱정하고 불안할 때 2배속으로 낡아버리는 마음에 대해 말한다. 그저 모두 재미있게 살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