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찡하고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이 들면서 기쁘다. 일기장에 썼으나 밖으로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는 더 좋다. 물론 글로 써서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녀들은 편지 쓰기를 마뜩잖아하는 편이라 그런 감동을 받기는 어렵다. 만약 글로 쓴 이야기를 받는다면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 글을 브런치에 옮겨 적어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것 같다. 그때는 감동을 넘어 서로에게 감응이 되지 않겠는가.
특히 그녀들의 엄마 이야기는 자주 듣고 여러 번 들어도 좋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녀들의 엄마는 70 ~ 80대이고 젊어서는 보수적이었으나 할머니가 된 후 의사 표현이 뚜렷하고 뭔가 하고 싶은 일에 적극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영어 공부를 시작한 분도 있고 법화경 필사를 계속하여 그 노트가 무려 열 권이 된 분도 있다. 무릎이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 금방 들은 걸 기억하지 못한다, 눈이 부셔 눈물을 자주 흘린다, 큰 소리로 말해야 고개를 돌린다, 그런 엄마들이다. 엄마들은 부지런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었다고 대접받으려 하지 않는다. 아직도 온갖 음식을 뚝딱 차려내는 기술을 잊지 않고 있어서 그녀들 집에 방문한 누구라도 한 상 차려 먹이는 걸 좋아한다. 늘 부지런히 쓸거나 닦거나 볶거나 끓이거나 여념이 없어 주변에 사람들이 모인다.
세월을 조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녀들은 남편이 있다. 간혹 사별한 분도 있다. 일명 할아버지인 남편들은 유머가 없고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데 재주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친구들은 아버지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거나 때때로 하더라도 그네들 남편 이야기로 옮겨져 화를 낼 때가 많다. 엄마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기보다 아버지 이야기는 일상에서 웃으며 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엄마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공통점을 발견하기 쉽지 않음이다.
저기,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 엄마가 얼굴을 들고 나를 보네.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날 때 할머니가 꿈을 꾸었다네. 누런 털이 빛나는 암소가 막 무릎을 펴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네. 소가 힘을 쓰며 막 일어서려는 참에 태어난 아이이니 얼마나 기운이 넘치겠냐며 이 아이 때문에 웃을 일이 많을 것이니 잘 거두라 했다네. 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신경숙 저, 엄마를 부탁해 254쪽 5 ~ 18행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딸들은 엄마를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으로 여기며 지냈던 시간이 한탄스러워 운다. 아이들 때문에 인생이 정체되고 있다 여기는 딸들은 늦게서야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이해한다. 소설의 주인공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도 내 꿈 내 인생이 사라지는 것이 억울하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턱을 비스듬히 치들고 주먹을 꼭 쥐곤 했다. 얼굴을 엄마 얼굴 앞에다 딱 붙이고 바락바락 소리 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원하는 게 나올 때까지 요구했다. 허나 이제는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입으로 네네, 한다. 이래도 네, 저래도 네, 라고. 더 이상 엄마에게 바랄 게 없다는 뜻이다. 엄마 품에서 나올 수 있는 것들이 더 이상 나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말과 통한다. 엄마의 권력이 쇠락했다는 뜻이기도 하다.나도 나이가 들어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됐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엄마의 전화가 귀찮기만 하다. 어쩌겠는가. 그냥 다 귀찮을 뿐이다. 엄마만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는 모두 다! 소설을 읽고 나니 눈물이 난다. 엄마의 인생을 갉아먹고 엄마가 된 내가 엄마에게 그러면 안 되겠다 여겨진다. 치매에 걸린 소설 속 엄마에게 근사한 커피를 드려야겠다.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커피가 좋겠다. 코 끝에 닿는 향이 달달하고 소녀시절이 떠오르는 커피가 어울리겠다.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되는 엄마를 위해서 삶의 향기가 물씬한 커피를 찾아본다.
오늘의 커피는 포도, 블루베리 맛이 난다. 상큼하다. 많이 마셔도 입가가 진보라빛으로 물들지 않는다. 따사롭고 시고 달다. 사그라진 열정에 영혼이 채워진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흥미진진하길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 다가올 날이 기다려져 가슴이 벌렁거린다. 산뜻한 신맛은 무겁고 슬픈 인생을 살아낸 엄마들의 영양제 같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고 의연하게 버티고 선 고목 같은 엄마들을 생각하면 제자리를 지키며 애쓴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서늘하게 닿는다. 물러서지 않고 지킨다는 것, 그 뜻을 느낀다. 작은 꽃들이 바닥에 붙어 넓게 자리를 지키듯 소박하게 은근하게 살고자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