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플 때 생각나는 사람은 단연코 엄마다. 어디가 어떻게 어찌 아프다거나 하는 이유도 필요 없다. 아프니까 그냥 엄마가 보고 싶다. 누적된 노동에 입맛이 없다가 몸이 바쁘지 않으니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호박죽. 둥글고 커다란 누런 호박 껍질을 벗긴다. 듬성듬성 잘라 냄비에 넣고 끓인다. 적당히 무른 상태가 되면 믹서에 넣고 간다. 불린 강낭콩을 넣고 같이 끓인다. 찹쌀가루를 솔솔 뿌린다. 참 쉽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늙은 호박은 누군가에게 얻을 때가 많았다. 요즘은 호박을 주는 이가 드물긴 하다. 그래도 내게는 오렌지 빛이 연하게 도는 예쁜 호박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죽으로 변신시키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엄마에게 전화했다. 호박은 있는데 호박죽이 없다고. 당장이라도 달려와 끓여주겠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와서 내 고통을 확인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엄마다. 겨우 몸살 조금에 호들갑이지만 왠지 어린양을 하고 싶은 날이다. 잘할 수 있는 일이 늘어가는데도 마음은 헛헛하다. 그래서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어떻게 지금까지 단단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호박죽을 끓여 엄마에게 가야겠다.
그러나 아무도 엄마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엄마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우린 다 알았다. 오늘도 엄마는 하루 종일 왕상이를 등에 업은 채로 설거지를 하고 찌개를 끓여 날랐을 거란 사실을. 엄마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엄마의 잔뜩 불거져 나와 있는 무릎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엄마의 오른쪽 무릎이 벌에 쏘인 것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무릎 안쪽에 솜뭉치를 쑤셔 넣은 듯했다. 아니다, 그건 솜뭉치가 아니었다. 엄마가 버텨온 세월이 거기, 당신의 무릎 안쪽에 고스란히 고여 있었다. 가난 앞에 주먹질 한번 할 수 없었던 세월의 막막함이 거기 한 줌의 응어리가 되어 박혀 있었다. 스스로 한 마리 우매한 소가 되어 그저 묵묵히 현재만을 일궈야 했던 늙은 어미의 무르팍엔 열매 대신 염증이 맺혔고 어미는 자신이 꽃피워낸 그 흉한 꽃이 못내 부끄러워 두 손으로 얼른 무릎을 감싸 쥐었다. 무릎을 감싸 쥔 엄마의 손등 위엔 벌겋게 부어오른 무릎보다 더 붉고 더 깊은 주름이 그어져 있었다.
이명랑 저, 삼오식당 108쪽 8 ~ 22행. 시장통 식당집 둘째 딸이 쓴 소설이다. 삶에 깃들인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절망의 바닥에서 솟아나는 에너지, 비루한 일상에서도 긍정적인 웃음을 잃지 않는 자신감이 넘친다. 시장에서 펼쳐지는 쌀쌀맞은 풍경과 시장 사내들의 상습적인 음주와 폭력이 너무도 능청스럽게 그려진다. 오늘 주인공은 시장통에서 장사하는 엄마다. 큰딸의 셋째 아이를 돌봐준다. 자식들 돈 벌라고 몸뚱이 성할 때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성치 않은 다리를 절룩거리며 세월에 뭉개진 무르팍을 다스리는 일은 고통스럽다.
오늘의 커피는 왕상이 외할머니와 같이 마신다. 예리하고 깊은 쓴 맛의 커피다. 순수하고 솔직한 시장통 엄마는 땅을 디딜 때마다 고통의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페루 쿠스코는 고통의 신음을 멈춰준다. 키 큰 나무에서 열리는 견과류의 고소함과 하얀 생크림의 부드러움이 있는 쓴 커피다. 살짝 그을린 귤의 산미가 은근하다. 쉼 없이 오래도록 일한 엄마가 잠시 쉴 수 있는 한 잔의 여유다. 남은 생을 자식에게 의탁해야 될 때가 올까 두려워하는 엄마들께 드리는 눈물의 커피다.
내남없이 엄마들은 자신의 몸이 낡아지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언제나 그대로인 줄 안다. 혼자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식에게 손을 내민다. 그것도 미안함과 죄스러움까지 담아서. 그 마음이 싫다. 늘 무엇이 그리 미안하고 제대로 해준 것이 없어 안타까운지 말이다.
팔순이 가까운 내 엄마도 때로는 엄마가 보고 싶어 풀벌레 우는 밤에 운단다. 평생 호강 한번 못한 내 불쌍한 엄마... 하면서 흐느낀다. 아, 도대체 어머니라는 단어는 왜 울음과 비슷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엄마라는 의미는 늘 미안함과 연관되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되는 건지. 옹이 진 손가락, 굽은 다리는 엄마의 헌신이었음을 안다. 나는 여태껏 엄마의 뻣뻣한 무릎 한번 주물러 드리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엄마의 곰삭은 시간에 효도라는 이름으로 이제야 조붓하게 존경을 더한다. 더도 덜도 엄마의 남은 생은 지금 같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