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뭘 하든 부부

볼리비아 Micro Lot

by 만델링

어스름이 남은 아침 핼쑥한 얼굴로 출근하는 의 손에 홍삼톤골드를 쥐어준다. 평소보다 20여 분 이른 출근이다. 조금 이른 출근이지만 집을 나서는 입장에서는 쩔쩔매며 부산스럽다. 마음까지 단단히 먹는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규칙에 매인 습관에서 겨우 몇십 분 변화가 생겼다. 그래도 그 변화는 파도처럼 철썩거린다. 전날 밤 알람 설정을 한다. 제대로 했는지 다시 들여다보고 확인 후 안심한다. 잔다. 잠이 오지 않는다. 벌떡 일어나 또 알람을 확인한다. 간혹 짜증을 낸다. 그게 뭐라고 긴장하고 걱정하는 건지. 어떤 일이든 규칙에서 벗어나면 신경이 쓰인다. 어쩌다 겨우 한 번 일찍 출근해야 하는 심드렁한 변화임에도 말이다.


부부라고 해도 서로에게 그리 해줄 일은 없다. 점심시간 후 카톡을 하고 퇴근 전 메일을 보내는 사이로 지내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고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사이지만 지 재밌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무해한 말들로 하루를 채운다. 때로 각자는 프거나 고독하다. 치열하게 다. 쓸쓸하게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 추스른다. 함께 살지만 서로를 다 알지 못한다. 들여져 그저 알은 체하며 이해하며 산다. 이 나이쯤 되면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생존을 위한 유연함을 가진다. 위기에 대처하는 의연함을 보여다. 동지적 관계가 된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언한다. 확신이 서지 않아 망설일 때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도와준다. 게으름을 피우든 자만심에 빠져 착각을 하든 그저 듬듬히 내버려 둔다. 그럼에도 서로는 길고 긴 끈으로 묶다. 가뜩이나 힘든 세상 그래도 내 편이라는 확신을 갖고 휘두를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다. 그리 믿는다.


뜬금없이 웃기기를 잘한다. 원인과 결과에 따른 분석을 통해 상처 받은 감정을 위로하는 타입이다. 좌뇌형이라 추측한다. 분석을 통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옆에 있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한숨을 쉰다. 그를 불편한 사람으로 여긴다. 인내심이 강화되는 시간이다.

생각이 부딪칠 때, 화가 날 때, 억울할 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말수가 줄고 목젖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미간에 주름이 생기고 얼굴은 새초롬해진다. 기싸움에서 꾸준히 진다. 기깔나게 드러나는 표정 때문에 별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부다. 때때로 헷갈려서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오늘의 커피는 볼리비아 마이크로 랏이다. 도토리의 텁텁한 쓴 맛이 난다. 가득 채운 커피 잔에서 느긋한 향이 난다. 진지한 맛과 간질간질한 향기가 상쾌하다. 고즈넉이 즐거운 커피다. 누구에게라도 다정할 것 같은 부드러움이 있다. 루이보스티 같은 애잔한 향은 없다. 모호하고 멍한 머리에 웃음을 준다. 코코아 맛을 낸다. 편안해지는 맛이다.

볼리비아 커피는 연륜이 쌓인 사람의 이력서 같다. 이마의 주름에서 달콤한 맛이 느껴진다. 둥그스레 굽은 등에서 쌉쌀한 커피의 풍미를 느낀다. 5 대 5 비율의 피지컬은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물 같아서 숙연하다. 홍삼톤골드를 고 집을 나서는 그의 등이 슬프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직장인의 련함이 보인다. 볼리비아 마이크로 랏은 일상성, 개성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 삶의 자잘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생각하게 하는 커피다. 안정감과 든든함이 감싸는 느낌이 든다. 따뜻한 손으로 악수하며 뚜벅뚜벅 또 앞으로 간다. 조바심 없이 그저 간다. 곁에 있는 사람의 온기로 힘을 낸다. 지름길 없는 인생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