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살면서 그리운 것

에티오피아 구지 우라가 G1

by 만델링

숨, 나와 마주 서는 순간 - 강 할망네의 또 다른 문제는 남편의 한량기였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 가수 생활도 했다는 신랑은 자손 귀한 문중 어른들의 과보호로 자라서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 남자'였다. 자식을 셋이나 낳았지만 인물 좋은 그에게는 늘 여자들이 따랐다. 34쪽.


딸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우리 어멍은 누가 본인이 낳은 자식이고, 누가 다른 여자 자식인 줄도 몰라요. 친척들도 구별 못할 정도로 의붓자식에게도 고르게 잘했어요. 다들 그런 은공은 아는지라 어멍에게 지극정성으로 잘해요." 35쪽.


이 책은 제주해녀에 대한 기록이자 육성 인터뷰 모음이자 잠언집이다. 물에서 건진 것들로 가장 노릇, 엄마 노릇을 한 사람들은 모진 파도와 거친 물결도 잠잠히 재울 수 있는 부지런함을 지닌 이들이었다. 목숨 건 물질로 굴곡진 삶을 이어온 그들에게는 삶의 통찰력이 있다. 늘 바람을 두려워하고 바람의 향배에 민감해하며 자연을 거스러지 않는다. 목숨을 유지하고 직업을 이어가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된 노동에 육신이 물러져도 지속 가능한 노동을 위해서 욕심을 줄이고 절제하며 바다에서 생을 줍는다.


나쁜 남자 이야기는 현재도 계속된다. 남자는 돈 벌고 여지는 살림한다는 가부장제 명제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허위다. 내 엄마만 해도 그렇다. 아버지가 생계를 맡았지만 온전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낮동안 가게를 지켰고 살림은 당연히 했다. 엄마는 퇴근이 없고 정년이 없는 노동자였다. 지금은 여든을 향하고 평일 오후 어린이 집에서 하원한 녀를 돌본다. 보상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족 노동에 매여 쪼글쪼글 늙고 있다. 아버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차려주는 식사에 퉁을 놓기가 일쑤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평생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노동자인 엄마에 비해 아버지는 제 몸 써서 일한 사람들이 가지는 삶의 통찰이 부족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이제 누가 시키기도 전에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자기 착취의 달인인 엄마가 섧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신산한 노동의 삶이 이리 섧게 다가올 줄 몰랐다. 부쩍 음식 간이 안 맞는다고, 삭신이 쑤신다며 앓아눕는 엄마보다 평생 일만 하다 빈 집처럼 텅 비어 아픈 엄마가 더 섧다. 숨으로 인생을 헤쳐온 제주해녀가 전하는 이야기도 섧다. 마음 붙일 곳 없고 기대 쉴 곳 없는 여인들이 한숨 돌리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있긴 할까? 사는 게 숨 가빠 한 호흡 고르기도 힘든 그녀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생을 줍는 노동을 한다. 그녀들의 고단한 노동을 나라도 기억해야지 싶다. 노동에 담긴 담담한 말들을 이해하고 슴이 먹먹했던 불행한 시간을 같이 앓고 싶다. 늙어 미각이 둔화된 내 엄마, 잦은 물질로 물멀미가 있는 해녀, 자기희생이 강요된 삶을 묵묵히 사는 많은 여인들을 위로하고 싶다.


오늘의 커피는 레버드립으로 추출한다. 물의 온도와 추출 시간을 조절하여 커피의 신맛과 쓴맛을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추출 시간을 늘려 진한 커피 맛을 표현할 수 있다. 분쇄도를 작게 하여 바디감이 좋고 좀 더 농밀한 커피 맛을 낼 수 있게 한다. 구지 우라가는 레몬글라스, 로즈마리, 오렌지 향미가 있다. 달달하고 산뜻한 신맛이 있다. 향이 더디 퍼지고 쌉쌀한 쓴맛은 다크 초콜릿 맛이다. 묵직하게 스미며 가볍게 넘어간다. 수한 날이 모질어서 눈물바람이던 시간이 가라앉는 강 할망께 드린다. 언제든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지게 하는 해녀에게,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고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것을 느끼며 나와는 다르게 살길 바란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드리는 커피다. 황망함, 난감함, 쓸쓸함이 사라지는 커피다. 삶이 무거워지는 순간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