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세심히 기억하려는 노력

과테말라 엘 파라삭 블루제이드

by 만델링

자꾸자꾸 까먹는다. 생각한 단어가 입으로 나오지 않는다. 교보문고 주차장에서 차를 찾지 못해 헤맸다. 거스름 돈을 덜 받고도 몰랐다. 기억력 저하가 꽤 심각한 수준이다. 언어 장애를 의심한다. 공간 파악 능력 저하다. 계산 능력 저하다. 뇌에 작은 이상이라도 있을까 걱정이다. 기억력에 문제가 생기는데 정상이라고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무슨 뾰족한 대안도 없다. 치매에 걸리면 치매 발생 이전부터 자신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한다는 연구가 국제학술지 신경학에 소개됐다는 것을 위로로 삼을 뿐이다. 차 키를 어디다 뒀는지 깜박하고, 건망증이 있다는 것을 본인이 알면 아직 치매는 아니라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현재 나는 기억력이 감퇴되고 자각 능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간간히 느낀다. 오늘은 주방 가위를 잃어버렸다. 김을 굽고 잘랐다. 부스러기를 치웠다. 제자리에 두려고 가위를 집는데 가위가 없다. 그새 사라졌다. 주변을 여러 번 훑었음에도 큼직한 주방 가위는 보이지 않는다. 일상이 이렇다. 잠시 생기는 현상이라고 위로를 하나 내심 걱정이다. 건망증이 악화되어 치매가 될 수 있는 의학적 요인은 확실히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뇌의학 전문가들이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아직 치매가 아니라 하니 그것만으로도 위로는 된다. 을 사용하여 뭔가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면 기억력이 향상된단다. 리두기로 주춤했던 퀼트 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가야겠다. 반듯하게 줄을 긋고, 시접분을 생각해서 자르고, 양끝을 맞춰서 단단히 깁고 하는 행위가 뇌에 자극을 주겠지. 수시로 기억력 감퇴를 막는다는 식품을 섭취해야지. 불포화지방산, 아르기닌, 마그네슘 등 영양소가 풍부한 호두와 아몬드를 먹어야지. 퇴행성 질환 예방에 최고라 하니 꼭꼭 씹어 맛있게 먹어야겠다.


오늘의 커피는 름이 꽤나 길다. 대신 참 멋지다. 과테말라 엘 파라삭 블루제이드. 과테말라는 중앙아메리카 북서쪽에 위치한다. 수도는 과테말라시티. 중앙 산지와 고원은 화산 토양으로 비옥하다. 시원하고 쾌적하여 커피 재배에 좋은 환경이다. 블루제이드, 소리 내어 불러본다. 검은 물이 매끈하게 찰랑거리며 다가온다. 달달한 바닐라 향이 근사하다. 달달하고 쌉쌀한 쓴맛에 연한 꽃향기가 섞였다. 고급스럽다. 부드럽고 고소하고 환하고 밝은 신맛 몸이 가뿐하다. 따분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좋은 책 말고 좋아하는 책을 끼고 아파트 벤치에 앉아 마시면 좋겠다. 매양 같은 하루 일과에서 잠시 틈을 내어 밖에서 마시자. 소리가 목 끝에서 가릉거리는 순간이 닫힌다. 니트럭에서 파는 붕어빵을 사자. 수제 붕어빵은 아니다. 요즘은 붕어빵도 프랜차이즈다.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사장님의 입담이 좋다. 누런 주전자에서 흘러나오는 반죽도 받아서 쓴단다. 반죽하면 어깨가 나간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붕어빵도 자본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니 쓸쓸하다. 용쓰며 사는 삶이 애잔해진다. 치매를 걱정하다가 커피 한 잔으로 철학자가 된다. 살다가 슬퍼지는 순간에 넋두리를 풀어놓을 친구가 있으니 안심이다. 전부가 스마트폰 덕분이다. 앉은자리에서 그리도 멀리 있는 얼굴을 보며 말할 수 있다. 그 다정함이 빈집 같은 마음을 다독인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은 늘 친구에게서 본다. 돈 벌지 못하는 사람의 자괴감, 열등감, 마음의 일들을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내게는 행운이 아닐까 싶다. 삶의 피곤함을 카페인에 섞어 보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