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한가한 시간에 꾸는 꿈

파나마 SHB 산타 클라라

by 만델링

코로나19 사태 이후 막혔던 여행길이 열릴 모양이다. 참좋은여행사에서 보낸 이메일에는 자가격리 면제 유럽 6개국 당장 떠나도 좋다는 문구가 적혔다. 마침내 유럽 여행의 문이 열리고 11월 초에는 떠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인이 여행할 경우 자가격리가 면제된다는 장점이 있다. 2차 백신 접종까지 완료한 여행족이라면 귀국 후 2주간 자가격리 역시 면제된단다. 결국 코로나19 이전 일정으로 유럽 여행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대신 출국 전 72시간 내 발급한 유전자 증폭(PCR) 검사서가 필요하고 해당국 입국 직후 코로나19 검사를 거친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가뿐히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얼마나 기다리던 시간이었나를 생각할 때 폭발적 수요가 있을 듯하다.


스위스, 스페인, 프랑스, 그리스, 체코, 오스트리아가 백신 접종 완료 여행족을 유혹하는 6개국이다. 내가 유럽 여행을 한다면 일단은 프랑스, 파리로 할 것이다. 매우 정밀하게 제작된 스위스산 지도를 들고 갈 것이다. 구글 지도가 3D 입체로 길을 가르쳐준다 해도 펼치면 뻣뻣한 종이 지도가 좋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잠든 거리를 오래 걸을 것이다. 인적이 드문 길에서 도시가 깨어나는 모습을 즐길 것이다. 첫 여행이니 유명한 곳을 먼저 봐야 할 것이다. 노트르담 성당,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사람이 오지게 많아서 <모나리자>를 볼 수 없다는 루브르 박물관, 건물이 아름답고 소장한 회화도 전부가 걸작이라는 오르세 박물관, 생 마르탱 거리나 센 강변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걷고 싶다. 좀 멍청하고 이상한 데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더라도 그리하고 싶다.

두 번째 방문국은 오스트리아. 내게 가장 추천과 권유를 많이 한 곳이다. 한 번쯤 유럽을 다녀온 지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어딜 가나 관광객뿐이라 마음이 편안해서 좋았다고. 칠흑 같은 밤 수천수만 개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고요한 밤공기가 압권이라고 했다. 아름답고 진기하고 매력적이라 멀미가 났다고 했다. 모차르트를 몰라도 모차르트를 듣게 되는 나라, 독특하고 아름다운 그 나라에 꼭 가보라고 한다.


가을은 훅 하고 지난다.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나누자. 당장 해외여행은 어렵더라도 기대하는 마음만은 꼭 붙들고 있자.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고 나날이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자. 발길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두 발로 타박타박 많이 걷자. 동네 빵집에서 속은 부드럽고 겉은 바삭한 빵을 사서 손으로 뜯어먹으며 걷자. 키득거리면서 헐렁헐렁 호들갑을 떨기도 하자.


오늘의 커피 산타 클라라는 향이 짙고 농밀하다. 해발고도 1600m -1700m 사이에서 경작된 커피다. 고산지에서 재배되어 생두의 밀도가 치밀하다. 단단하고 결점두가 적다. 알이 고르고 예쁘다. 레몬향이 나는 타임이 느껴진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작고 소박하게 살아가자 다짐하게 하는 커피다. 하고 싶은 것들을 겨우 하나씩이라도 해가면서 앞으로 나아가자고 그렇게라도 살아가자고 말한다. 일명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커피다. 생각할 틈도 없이 쫓기듯 사는 나는 손수 내린 커피 한잔으로 복잡한 마음을 달래는 의식을 하는 셈이다. 공복이 채워질 때 드는 따뜻함의 쓴맛, 아몬드의 고소함, 빵 부스러기의 바삭함, 살구와 자몽의 향기로움이 느껴지는 커피다. 차분하고 유쾌하다. 나잇살이나 먹고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만은 되지 말자고 나를 타이르는 커피다. 이 짧은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좋아하는 이에게 안부를 전하자. 듣기 좋은 울림이 있는 노래에 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