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오른쪽을 보면 오른쪽, 왼쪽을 보면 왼쪽, 또는 헤엄치듯 둥둥. 사라지지 않고 눈을 따라 이동한다. 일상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신경이 쓰인다. 꽤나 유명한 안과에 갔다. 정밀 시력검사, 안저촬영, 안압측정 검사 후 '비문증' 진단을 받았다. 눈이 느끼는 증상의 하나이며 그 자체가 심각한 질병은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다. 유리체가 노화되어 묽어지면서 혼탁한 찌꺼기가 생긴다. 그 부유물이 떠다니고 눈앞에 보이는 것이 날파리증이란다. 재작년부터 별별 종류의 병명을 들었다. 신문이나 뉴스가 아니라 내 몸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현상으로 인해서다. 쉽게 말하면 노화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노인의 몸으로 변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 전에 없던 다양한 통증이 일고 있다.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 탓을 하면서 한동안 독서를 게을리했다. 이제 다시 읽을까 한다.
요즘 나의 속도는 문제가 있다. 설거지와 청소하는 속도,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속도, 문자를 읽고 답하는 속도, 글을 쓰는 속도, 책을 읽는 속도,사람의 감정에 반응하는 속도.아이를 나무라거나 칭찬하는 속도. 너무 빠르거나 또는 느리다.중간이 없다. 맞춤한 정도를 모르겠다. 불현듯 느꼈다. 내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열심'이 왜 중요한지 묻는 아들과 하루를 시작한다. 엄마가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수학을 왜 자기도 배우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불평을 하며 집을 나선다. 노트북으로 인강 듣고 스마트폰으로 SNS 하는데 노트 필기는 왜 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는 선생님도 좀 어렵단다. 이제껏 자기가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사는 게 학교생활이라며 자퇴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엄마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운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하는 것도 아니라 답답할 때가 많다. 딸과는 달리 아들은 혈육의 정만 있다. 그렇다고 딸보다 덜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다. 딸은 자랄수록 자매애가 느껴져 연민이 든다. 그런 이유로 딸아이의 말은 가슴에 닿는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박의 아내이자 순이의 며느리이자 연이의 딸이고 전업주부 여성이다. 내게 하나의 욕심이 있다면 그것은 아름답고 정확한 글쓰기로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도 멀리 떨어뜨려 봐야 보이는 눈으로 책을 읽는다. 구체적 인간에 대한 관찰과 이해를 하려고 읽지만 읽어내는 건 매번 익숙하지 않고 힘들다. 새로운 언어를 낚아서 새로운 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느낌에 독서를 한다. 자발적 선택이 많지 않은 일상에서 그나마 가능한 것이 독서와 커피를 고르는 일이다. 그래서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 볶는 냄새가 길 건너편까지 퍼지는 동네에 살기에 커피가 더 친하다. 오래 입어 무릎이 날강날강한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쓱 갈 수 있는 단골 카페가 있다. 맨 구석 자리에 앉아 사장님이 만든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으며 글을 쓸 수 있다. 허공을 보며 딴전을 필 수 있고 흐르는 음악에 정신줄을 놓을 수도 있고 투명인간처럼 있어도 된다. 내가 나답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오늘의 커피는 아라비카 품종의 내추럴이라 향기가 그윽하다. 마음에 부는 꽃바람이다. 아기의 조그마한 입술처럼 빨갛고 예쁜 앵두 향이다. 부드럽고 곧다. 쓴맛이 조용하고 선하다. 포근하고 담담하고 상큼한 맛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의 '월하 독작'을 읊조리며 마신다. 벗 없이 홀로 정갈한 마음으로 우아하게 마신다. 휘청거리는 삶을 꽉 붙들어 맨다. 약간의 서운함을 잊는다. 슬며시 화가 나고 슬픈 감정이 울컥 치솟을 때도 무던히 지난다. 무관심해진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가까운 사람들을 어떻게 더 사랑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한가하지 않은 시간을 한가하게 보낸다. 피곤이 몰려오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연락하면 단골 카페를 소개할 수 있다. 피,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