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쌍둥이자리 태생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태양궁이 쌍둥이자리다. 순발력이 있고 호기심이 많고 유쾌하고 총명한 사람, 유명한 점성술사가 쓴 별자리점에 나와 있는 점괘다. 그 말은 모든 쌍둥이자리 태생에게 해당되는 말이며 그런 품격을 갖춘 쌍둥이자리 태생의 누군가는 지금 자신의 삶을 그 격에 맞게 열렬히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 놀라운 통찰력에 부합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약간 들어맞는 구석이 있기도 했다. 순발력 있고 유쾌한 사람이다, 그건 맞는 듯했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아니다. 나이가 들고 체력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니 웃는 일도 줄고 매사에 반응도 더디다. 노력해도 별수 없더라 하며 내 안위만 걱정한다. 그냥 내 깊은 생각에 빠져 지낸다. 사소한 행운에 기대며 조심스레 살아간다. 문득 엄마가 나를 낳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한다. 열등감이 인다. 큰 애를 낳을 때 무려 26시간의 산통을 겪고 양수가 터졌다는 소리에 백기를 들었다. 급히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만나게 된 일은 기쁨보다 참을성 없는 엄마라는 각인을 남겼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 똬리를 튼 뱀이 몸을 풀듯 스멀거리며 가슴에 응어리졌다. 내 엄마는 사흘 밤낮의 산통을 겪고 나를 낳았다. 나는 겨우 하루를 참고는 덥석 배를 가르고 아이를 낳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 삶에서 집요할 정도의 근성이 부족한 이유는 그 참을성 없음으로 설명된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늘 부럽다. 늙은 엄마의 쭈그렁 얼굴과 살가죽에 새겨진 비틀어지고 진한 굳은살이 눈앞에 스친다. 일단 나를 낳고 키워 독립시킨 엄마에게 감사를 전하고 타박하고 고소한 커피를 마신다.
오늘의 커피는 뭔지 모를 불안감을 없애는데 효과가 있다. 밤이 깊었지만 잠이 오지 않을 때, 반복되는 악몽에 시달릴 때, 자다가 꾼 꿈에 훌쩍거릴 때, 그럴 때 마시지 말고 향기만 맡아보자. 달콤한 향이 잔뜩 날 선 신경을 느슨하게 해 준다. 꿈에 본 위협적이던 사람도 물리쳐준다.
그라인더에서 커피를 갈아 필터에 넣고, 주둥이가 좁고 긴 황동 주전자로 약 85도의 더운물을 조금씩 붓자. 둥글게 둥글게 안으로 원을 그리자. 골고루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물을 부어야 한다. 자잘한 거품이 보글거리며 빵빵하게 부푼다. 맛있는 커피가 만들어진다. 코로 향기가 스며든다. 얼른 마시고 싶어 진다. 달고 산뜻한 향기가 좋다. 묵직하고 풍성하다. 쌉쌀하게 깊은 쓴맛이 일품이다. 조화로움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커피다. 불면의 밤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으면 우아하게 마셔도 된다. 너울처럼 퍼지는 향기에 마음이 따뜻해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마트에 가고,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는 안전하고 예사로운 틀은 달갑게 받아 들이고 내 안위와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좀 미루기로 했다. 애매한 쓰임새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주부라는 직업에 딴지 걸기도 멈춘다. 겉보기에 잔잔한 일상을 이어간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일도 덜 하기로 한다. 부지런하지도 한가하지도 않게 일상을 꾸리겠다고 다짐한다. 부족하거나 약하지 않고 담담하고 유연하게 살기로 한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도 일단 멈춤하기로 한다. 곁에 있어 당연할 줄 알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시시하게 서글프게 고단함을 앓는다. 아, 가을! 오늘의 커피는 진짜 가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