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 명랑한 그때, 화양연화

케냐 루키라 골드 오타야

by 만델링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으나 언어 영역에 약하고, 석사학위를 가졌으나 취업하고 돈 버는 일에 활용한 적이 없다. 발 빠르게 움직이며 부지런했으나 도출된 결과가 없는 삶이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가까이서 보니 개털 같은 인생을 살았다. 나의 20대는 혼동, 카오스였음에 틀림없다. 도대체 무엇을 하며 그 긴 시기를 보냈는지 기억을 꺼내보려 해도 연결되는 이야기가 없다.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공식적으로 수업을 빼도 되는 날의 환호성만 이미지로 남았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기대하며 꽤나 기뻐했던 장면도 생각난다. 에이스 크래커와 끈적끈적 달달한 자판기 커피를 아껴 먹던 기억이 행복감으로 남은 건 덤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근성 있게 중앙도서관 열람실을 들락거렸던 이유는 생생하다. 그곳에 꽤 멋진 선배가 있었다. 학내에서 집중력으로 1등, 겸허히 오직 토플과 수험서만 보던 귀여운 사람이 공부만 하고 있었다. 열심히 꾸준히 지속적으로 입사 공부를 하던 선배는 참 예쁜 후배가 드문드문 다가와 밥을 먹자 해도 굴하지 않고 공부만 하다가 덜컥 합격을 하고 한양으로 가버렸다. 내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편지를 썼고 전화를 받았다. 흩어졌다가 달라붙는 초파리처럼 우리의 인연도 그랬다. 그럼에도 그 선배의 마음을 사로잡았던가, 기억에 없지만 지금 우리는 같은 집에 산다.


오늘의 커피는 타는 목마름을 해갈하는 음료다. 홀짝홀짝 마신다. 추억을 곱씹어 배를 채우는 기분이 든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고 이어 줄 것 같은 분위기가 녹아있다. 호수가 보이는 물가에 다정한 연인이 앉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가 했더니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하염없이 말하고 또 말하는 풍경이 보인다. 꽃단장을 한 여인이 울고 있다. 심오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남자는 쉽게 참아내고 있다. 가만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속내까지 들여다볼 수 없지만 기지를 발휘해 참견한다. 괜히 마음이 급해지고 부담감이 엄습한다. 측은하고 고단한 삶의 이력이 읽힌다. 사람 하고만 래 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신속하고 정확하게 두 연인에게 처방을 던진다. 일정한 목소리 톤으로 귀에 쏙쏙 꽂히게 말한다.


두 사람 참 아름다워. 따뜻한 도시 남자로 보이는데 맞니? 살짝 놀란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다. 금세 울음을 그쳤다. 가슴 시릴 만큼 온전한 사랑을 하면 좋겠다는 말에 하얀 물보라 같은 가지런한 이가 드러난다. 로 같이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심성이 따뜻하고 마음에 꼭 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도 했다. 이거 괜찮은 생각이 아닐 수 있음을 안다. 그래도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지 말길. 바라보는 눈빛이 흐뭇하고 따뜻하고 순한 마음, 부지런한 행동력이 갖춰졌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고 성실히 걷다 보면 원하는 길에 닿는다. 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을 등지고 지은 집이 없어도 된다. 대저택이 연달아 있는 평창동, 연희동에 사는 친구가 있어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꽃과 나무를 멋지게 가꿔놓은 정원이 없는 집에 살아도 행복하다. 좁아서 무릎이 부딪히고 낮에는 거실이었다 밤에는 방이 되는 작디작은 집이어도 온몸이 짜릿한 감동으로 채워지는 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음을 느낀다. 장난치고 깔깔대며 아무 말이나 주고받는 시간을 보내는 한때가 두 사람의 가장 젊은 시절임을 알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진담을 나누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케냐 루키라는 주저하는 연인들의 갈증을 해결한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변덕스러운 마음을 잡아준다. 시각과 미각이 동시에 만족되는 커피다. 찰랑거리는 갈색빛, 부드러운 향기로 그득하다. 서로의 매력에 푹 빠진 연인을 위해 깊고 쓴맛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단맛과 바디감이 좋아 수다스럽고 깔끔하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짧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한다. 읽어버린 마음을 잃지 않게 꼭 붙잡으라고 한다. 참고 견디는 헐렁한 시간이 오기 전에 단단히 달달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말하는 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