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추억은 언제나 맑음

케냐 피베리

by 만델링

커피의 기원과 발견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옥신각신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는 7세기경 염소 치던 목동 칼디의 발견설이다. 20세기 이후 커피에 관한 교과서 격인 <<커피에 관한 모든 것 All about Coffee>> 책에도 칼디는 등장한다. 분명한 것은 붉은 열매를 먹은 염소가 펄떡펄떡 뛰며 힘차게 내달렸고 이상히 여긴 목동이 작고 붉은 열매를 먹어보자 피로가 씻은 듯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대중적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처음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지 여러 설이 있지만 커피 열매가 불에 탔을 때 나는 고소한 향기에 끌려 볶아서 먹게 되었을 것이라는 게 담론이다.


피베리(Peaberry)는 생두 모양이 완두콩을 닮았다. 보통 생두는 한쪽이 평평(플랫빈 이라 부르기도 한다)하고 체리 속에 2개가 들었다. 반면에 피베리는 유전적 환경적 불완전 수정의 결함으로 만들어 변종이다. 동글동글 한 알만 들었다. 처음에는 결점두라 취급받아 버려졌다. 마니아들이 피베리의 숨겨진 맛을 찾아내며 특별한 대접을 받고 높은 값에 팔리는 현상이 생겼다. 베리는 두 개의 생두에 가야 할 영양소가 한 개의 알맹이에 집약적으로 모여 맛이 월등고 향이 좋다는 평을 받는다.


쌀 씻은 처음 물은 버리고 다시 물을 받아 조물거린 뒤 세 번째 물을 그릇에 받아 멸치 한 줌 가득 집어넣고 육수를 만든다. 된장 두어 숟갈 풀어 두부 양파 애호박 깍둑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을 때 땡초 한두 개 썰어 넣는다. 만들어진 된장찌개에 잘 쪄낸 호박잎을 곁들여 저녁식사를 한다. 가족들과 눈을 맞추며 실실 웃으면서...

소슬한 바람 부는 가을이라 무생채와 자박한 된장찌개, 쪄낸 쌈이 입 맛을 돋운다. 문득 보고 싶은 친구들과 입을 활짝 벌려가며 쌈 싸 먹는 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학교 다닐 때 풍경이 떠오른다. 새로 생긴 학교라 수업은 뒷전이고 호미 들고 물통 들고 연못 파던 기억이 난다. 운동장에서 일했던 날도 떠오른다. 진분홍 나일론 끈에 하얗게 태워진 연탄 두 장을 꿰어 등교하던 일은 잊을 수 없다. 햇살 쪼이는 담벼락에서 노오란 개나리 같은 병아리를 팔던 아저씨가 지금 나보다 훨씬 앳됐을 것이라는 자각도 든다. 문구점 앞에는 알록달록 콩 뽑는 기계도 있었다. 50원을 넣으면 쑤웅~ 하는 소리와 함께 우주를 배경으로 불꽃을 뿜던 갤러그 게임기는 지금으로서는 시시하기 짝이 없지만 모든 게 불편하고 부족했던 그때는 참으로 사치스러운 물건이었지 싶다. 그 시절을 요약한다면 투박한 나무를 깐 바닥을 밟을 때 울리는 소리 같은 시간, 마냥 들이대도 유쾌하며 왠지 상쾌했던 시간이었지 싶다. 다시 갈 수 없기에 마냥 그립고 애틋한 시간이다.


오늘의 커피는 케냐 피베리. 일반 케냐 커피가 단단한 바디와 무거운 레드와인 같은 풍미를 가진다면 케냐 피베리는 달콤한 산미와 고소한 견과류, 금귤의 새콤함을 가져 아주 균형 잡힌 맛을 낸다. 버터리하며 고급스러운 쓴맛이 조그만 마들렌과 곁들여 마시면 호화스럽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유쾌한 주말 같은 분위기다. 차 마실 약속이 있다며 옷을 갈아입고 단장을 하는 설레는 기분이 든다. 막연한 기대와 살풋한 웃음이 도는 짧은 시간이다.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보잘것없는 일상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할 마음에 목소리가 떨리기도 한다.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보고 싶었던 사람의 손을 덥석 잡고 안심하는 순간을 엿본다. 냐의 디감과 진한 커피맛을 즐기기 꺼려하는 사람이라면 케냐 피베리를 마셔보자. 근사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어릴 적 추억과 작고 허름한 문방구의 소중한 기억이 소환되어 부드러운 미소가 필 것이다. 구수하고 향긋한 커피를 맛보며 고단했던 하루를 정리하자. 난해하고 모호했던 감정이 진솔하게 그려질 것이다. 나른한 잠 속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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