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길모퉁이에 새로 생긴 카모메 식당. 사치에라는 일본인 여성이 경영하는 작은 일식당이다. 일본의 소울푸드인 주먹밥을 주메뉴로 한다. 매콤한 곤약 조림, 토돔한 돈가스, 연어 튀김, 닭튀김도 있다. 환하고 깨끗한 가게가 사람을 부를 것 같다. 사치에는 주방에서 식기를 씻고 닦으며 손님을 기다리지만 한 달이 되도록 손님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꿋꿋이 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음식 준비를 하며 활기차게 손님을 기다린다. 언제쯤 그녀에게 손님이 찾아올까?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찾아와 사치에에게 커피를 내려준다. 곱게 갈린 원두를 코피 루왁~ 하며 손가락으로 살짝 누른다. 입구가 가늘고 긴 드립 포터로 동심원을 그리며 물을 붓는다. 새하얀 도자기 잔에 담긴 까만 커피를 두 배우가 맑은 웃음을 띠며 마신다. 잔잔하고 씩씩한 영화 <카모메 식당> 이야기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영화의 줄거리가 아니고 코피 루왁 하며 낮게 읊조리던 마법의 주문 같은 그 커피에 대해서다. 인도네시아 코피 루왁은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자바 술라웨시 섬에서만 생산된다. 품종은 로부스타와 아라비카다. 루왁은 말레이 사향고양이가 빨갛게 잘 익은 커피 체리를 먹고 배설한 것을 세척하고 볶아서 만든 것이다. 자연산 루왁은 체리가 익는 시기에만 소량 채집되어 거래되기 때문에 비싸다. 반면에 국제 동물권 단체 페타 아시아(PETA Asia)는 사향고양이 사육 실태를 고발하며 루왁커피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입맛을 채우기 위해 스트레스로 죽어가는 개체들의 입장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커피 애호가지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맛과 향이 월등한 멋진 스페셜티 커피가 다양하게 있으니 꼭 동물의 힘을 빌린 아픈 커피를 취할 이유는 없다고 여긴다. 여하튼 어려운 이야기는 이쯤 하고 그냥 루왁커피 품평만 해본다.
트램펠린에서 통통통 튀듯 음악이 흐른다. Don't worry Be happy 하면서... 몹시 지치고 매일 하는 일에도 서투른 사람에게 살짝 기운을 주는 노래다. 인도네시아 만델링, 자바 프링거와 달리 맑고 가볍다. 발효될 때 나는 시큼한 산미와 후추 같은 매운 향도 없다. 흰색에 가까운 은색 같은 건조한 단맛이 있다. 사향의 독특한 향이 단맛에 휘감겨 세련된 맛을 낸다. 무채색이지만 잘 가꾼 몸매의 모델이 차려입은 슈트 같다. 메탈 톤의 원단에 더블 버튼이 달린 고급스러운 옷이다. 오랫동안 함께한 여인 같은 느낌의 옷이다. 섬세하게 직조된 원단에서 삶에 수반되는 수많은 일들이 읽힌다. 그래서 거부감이 없다. 사람의 정성과 인내가 녹아 있음이다. 오늘의 커피는 인도네시아 코피 루왁. 고소한 메밀의 맛이 난다. 마시고 난 뒤의 향이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래 남는다. 입안에서 향이 오래 핀다.외롭고 무거운 삶의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표 나지 않게 섞여 움직이는 것이 인생임을 알려주는 커피다. 조금은 책임에서 자유롭게 인간의 신의를 배반하지 않고 산다면 괜찮다고 말하는 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