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계급 사회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아마 정답은 “없다”일 것이다. 고대의 노예제 사회, 중세의 봉건제 사회, 근대의 자본주의 사회까지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구조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심지어 계급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선사시대의 원시 공동체 사회조차 집단 간의 힘의 차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생겨나면서 결국 계급사회로 이행되었다.
대표적인 신분 계급 제도로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들 수 있다. BC 1500년경, 아리안족이 인더스 강 유역에 정착하며 토착민을 지배하고 4계급으로 나눈 것이 그 시작이다.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족·군인), 바이샤(서민), 수드라(노예)라는 구조는 힌두 경전 리그베다에서 “우주 신 푸르샤의 몸에서 각 계급이 태어났다”는 신화적 서사로 정당화되었다.
푸르샤의 입은 브라만이 되었고 팔은 크샤트리아가 되었으며 허벅지는 바이샤가 되고 두 발은 수드라가 되었다 한다. 이 제도는 오늘날 법으로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혼인, 이름, 사회적 관습 속에 카스트의 잔재가 남아 있다.
우리 민족 역시 조선시대에는 왕족·양반·평민·노비로 계급이 나뉘었고, 현대에는 수저계급론이라는 새로운 신분 담론이 등장했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나뉘며, 또한 주거하는 지역 별로 1 급지, 2 급지, 3 급지의 계급이 부여되는 웃지 못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고 심지어는 사는 지역과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계급이 황족, 왕족, 중앙 호족, 지방 호족, 중인, 평민, 노비, 가축 등으로 분류된다고 하니 우리도 새로운 형태의 현대판 대한민국 카스트제도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평등할 것만 같은 디지털 사회에서도 과연 계급은 존재할까? 세상에 예외 없는 법칙은 없듯이 당연히 디지털 사회에서도 계급은 존재한다. 봉건주의 사회에서는 신분과 권력에 의해 계급이 정해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의 크기에 따라 계급이 정해지지만 디지털 사회에서는 디지털 기기와 첨단 기술의 숙련도에 따라 계급이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계급은 연령별 세대와는 반비례한다.
디지털 사회의 최고 계급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다. 주로 MZ세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다음은 적응 과정을 거쳐 디지털에 정착한 디지털 정착민(Digital Settler)으로 Y세대와 늦은 X세대가 여기에 속한다. 5060 세대는 대체로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이며, 그 이전 세대는 디지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디지털 외계인(Digital Foreigner)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외계인 같이 디지털 계급이 낮으면 현실에서 많은 불편과 불이익을 겪는다. 카카오택시 앱을 모르면 길에 서서 택시를 잡아야 하고, 모바일 뱅킹을 모르면 매번 은행 창구를 찾아야 한다. 배달 앱을 모르면 다양한 메뉴를 고르지 못하고 전화로 짜장면만 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급격히 비대면화되면서 이런 불이익은 더욱 커졌다.
따라서 낮은 디지털 계급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디지털 신분 상승을 추구해야 한다.
다행히도 디지털 사회의 계급은 카스트 제도와 달리 고정되지 않는다. 누구나 노력과 의지만 있다면 디지털 사비(Digital Savvy), 즉 디지털 기기와 기술에 능숙한 최상위 계급으로 올라설 수 있다. 실제로 80대, 90대 유튜버나 노년의 디지털 고수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디지털 원주민보다 더 능숙하게 기술을 다루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갈수록 더 모바일화, 자동화, 인공지능화될 수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나이나 귀찮음을 핑계로 낮은 디지털 계급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 디지털 사회에서의 자유 또한 공짜가 아니다.
(As freedom is not free, digital freedom is not free as well.)
디지털 신분 상승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며, 노력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