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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거룩한 동전

어느 구청의 사회복지과 직원에게 새로운 생활 지원 신청자의 신청서가 접수되었습니다. 사회 복지사는 신청자가 생활 지원 대상자의 자격이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접 방문을 하게 되어 있어서 신청자의 집으로 방문을 하였습니다.  신청자의 신상명세를 미리 보고 방문을 했기에 예상은 했지만 사회복지사는 신청자의 얼굴을 보고 흠짓 놀랐습니다. 신청자는 40대 아주머니였는데 얼굴이 화상으로 인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코는 형체도 없이 구멍만 두 개 뚫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순간 할 말을 잃은 사회복지사는 정신을 차리고 “구청 사회복지과에서 나왔습니다”라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방으로 들어가세요” 하며 방으로 안내하였습니다. 방안은 자그마한 밥상 하나와 허름한 장롱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사회 복지사가 안쓰러워하며 “얼굴은 어쩌다 그러셨어요” 하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녀는 힘들게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어렸을 적에 집에 불이나 집은 다 타고 엄마와 오빠는 죽고 아빠와 단 둘이 살아남은 아주머니는 그때 화상으로 얼굴은 물론 온몸이 다 화상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당했다 합니다. 아빠 역시 심한 화상으로 경제 활동이 어려워 주변 사람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갈 수 있었는데 절망에 빠진 아빠가 매일 술주정을 하며 아주머니를 구타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가출을 하게 되었답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 때문에 직업을 구할 수도 없어서 아주머니는 부랑자 시설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때 남편을 만났다 합니다. “이 얼굴로 어떻게 결혼까지 할 수 있었나 궁금하시죠? 사실 남편은 시각 장애인이었어요. 그래서 결혼할 수 있었죠. 

그 사람은 앞을 보지 못 했지만 나를 정말 사랑해주었고 이렇게 예쁜 딸도 낳을 수 있었어요” 하며 아직 어린 딸을 가리켰습니다. 그녀는 그때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그녀에게 또 모진 시련을 주었답니다. 딸을 나은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은 병으로 죽게 되고 아주머니는 또다시 어린 딸과 힘든 삶을 시작해야 했답니다.

다행히 복지기관의 도움으로 몇 차례 성형 수술을 받았지만 워낙 화상이 심하고 오래되어서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기는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녀가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전철역 앞에서 구걸을 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든 스스로의 힘으로 딸을 키워 보려고 하였으나 딸도 아빠를 닮아서인지 시력을 점점 잃게 되어 아주머니는 더욱 절망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주변에서 생활 보호 신청을 해보라고 해서 신청을 하게 되었답니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복지사는 가슴이 아파 아주머니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주머니, 쌀 지원은 바로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보조금 지원은 조금 기다리시면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부디 절망하지 마시고 힘내서 따님 돌보셔야죠” 하며 자기의 눈에 고인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일어서는데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하면서 다 쓰러져 가는 장롱 속에서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꺼냈습니다. “비록 구걸을 했지만 나 스스로 한 약속이 있어요. 구걸하면서 1000원짜리가 들어오면 생활비로 쓰고 500원짜리가 들어오면 딸애 수술비로 저금하고 100원짜리가 들어오면 저같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모아 두기로요. 이제 저는 생활 지원을 받게 되었으니 이 100원짜리 동전은 저같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선생님께서 써주세요” 하며 제법 무거워 보이는 비닐봉지를 내밀었습니다. 복지사는 한사코 거절하였지만 아주머니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동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하나하나 세었습니다. 동전의 개수는 1986개, 채 20만 원이 안 되는 그 동전을 모으는데 과연 아주머니는 그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길거리에서 앉아 있었을까? 동전을 세느라 온통 시 커머 진 손을 복지사는 밤새 씻지 못하고 거룩한 동전 1986개를 쳐다보면서 하얗게 밤을 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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