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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일당

90년대 후반 IMF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직장에서 밀려난 많은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지 못해 길거리를 전전하였습니다. 이들 중에서 그나마 도배나 미장 기술을 가진 사람은 조금 더 많은 일당을 받으며 일을 할 수 있었으나 아무런 기술 없이 그저 가진 것은 몸 하나뿐인 사람은 세칭 '노가다'로 불리는 막노동판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막노동에 익숙한 사람은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겨 육체가 많이 아프지 않게 일을 하는 법을 알고 있지만 처음 이런 일을 접하는 사람은 몸을 상해 오히려 하루 일당보다 더 많은 치료비가 들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러면 요즘은 이런 막노동의 일당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2019년 기준 개별 직종 노임 단가를 보면 가장 높은 단가는 잠수부로서 일당 249,770원입니다. 직종 기술의 난이도와 위험도를 감안하여 높은 단가가 책정되어있습니다. 이외에 기술이 필요한 건축 목공은 20만 원, 콘크리트공, 용접공은 19만 8천 원 정도입니다. 미장공도 20만 9천 원으로 막노동 단가표에서는 높은 축에 속합니다. 그러면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막노동일의 하루 단가는 얼마일까요? 막노동일도 경험이 있는 특별 인부는 15만 2천 원, 이 마저도 미숙한 보통 인부는 12만 5천 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마저도 다 주는 것이 아니라 90% 정도만 지급된다고 하니 하루 종일 막노동한 대가는 약 11만 2천5백 원 정도입니다. 이는 시간당 약 1,400원에 해당하는 막노동의 대가입니다. 


어느 막노동일을 하는 가장이 있었습니다. 하루 10만 원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여유 없이 그저 죽어라 일만 해야만 했습니다. 온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가면 밥 먹자마자 바로 피곤해서 쓰러져 자는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따라서 아이와 다정하게 놀아주는 일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삶이었습니다.  오늘도 저녁을 먹자마자 잠에 들려고 하는데 아들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아빠, 뭐 하나 물어봐도 돼?” 하고 묻자 너무 피곤하여 대답할 힘도 없었지만 아빠는 오랜만에 아들과 대화하는 것이라 “음 그럼, 뭔데?” 하고 되물었습니다. “응 아빠는 한 시간에 얼마나 벌어?”  뜬금없는 아들의 질문에 아빠는 당황했습니다.  “그게 왜 궁금한데?” 하고 묻자 아이는 “그냥 알고 싶어서 아빠는 대답만 해주면 돼”. 아빠는 아들이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도 10만 원 밖에 못 버는 일을 하는 걸 알고 묻는지 생각하자 슬며시 화가 났습니다. “아빠는 한 시간에 십만 원 번다 왜?” 하고 자존심이 상해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그러면 나 5만 원만 줘”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소리를 듣자 몸도 피곤한 데다 하루 종일 번 돈의 반이나 되는 돈을 아들이 철없이 용돈으로 달라고 하니 아빠는 더욱 화가 났습니다. “너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어디다 돈을 쓰려고 5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달라고 하니? 장난감 사게? 아빠가 이런 꼴 보려고 하루 종일 추운데 나가 고생하는 줄 알아? 어서 올라가서 잠이나 자!” 아빠는 자기도 모르게 어린 아들에게 화를 내버렸습니다. 아들은 풀이 죽어 자기 방으로 갔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아빠는 어린 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화가 난 것이지 아들은 아무 잘못을 한 게 없었습니다. 게다가 평소에 아빠에게 용돈을 달라고 한 적도 없는 아이였습니다. 아빠는 아들 방으로 가서 “아들 자니?” 하고 묻자 아이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아니 안 자요” “아까는 아빠가 너무 피곤해서 괜히 아들에게 화낸 것 같아 미안해 아들이 정말 필요한 것이 있어서 말했을 텐데. 자! 여기 오 만원 받아라” 하며 아빠는 오늘 번 돈의 반을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아들은 벌떡 일어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베개 밑에 감춰진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지폐를 펴더니 아빠가 준 돈을 합하여 다시 얼마인가 세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아빠는 “아니 돈이 많이 있는데 또 달라고 한 거야? 대체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쓸려고 하니?” 하고 다시 언성을 높였습니다.

“응 아빠 내가 필요한 돈이 모자랐었는데 이제 됐어. 나 이제 십만 원 있어. 나 이 돈으로 아빠 시간 내일 한 시간 살 거야. 아빠 내일은 한 시간 일하지 말고 일찍 들어와. 엄마랑 아빠랑 셋이 같이 저녁 먹자”. 아빠는 말없이 아들을 안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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