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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안단테

스웨덴의 세계적인 그룹 아바의 히트곡 중에 <Andante, Andant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의 첫 소절 가사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Take it easy with me, please 나와 있을 때는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Touch me gently like a summer evening breeze여름 저녁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나를 대해주세요.

Take your time, make it slow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하세요. 

Andante, Andante just let the feeling grow 안단테 안단테 마음을 가라 앉히세요. 

여기에서 안단테는 음악에서 빠르기를 나타내는 용어로써 “걸음걸이 정도의 느리게”의 속도를 말합니다. 이런 용어를 템포라고 말하는데 템포에는 가장 빠른 프레스티시모(Prestissimo : 매우 빠르고 다급하게)부터 프레스토(Presto : 매우 빠르게), 비바체(Vivache : 빠르고 생기 있게), 비보(Vivo : 힘차고 빠르게), 알레그로(Allegro : 빠르게), 모데라토 (Moderato : 보통 빠르게)의 순으로 경쾌하고 빠른 음악을 표기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에는 안단테(Andante : 걸음걸이 정도의 느리게), 아다지오(Adagio : 천천히 여유롭게 느리게), 렌토(Lento : 천천히 무겁게), 라르고(Largo : 매우 느리고 폭넓게) 순으로 표기합니다. 따라서 안단테는 10단계의 빠르기 중에서 7번째 정도 말 그대로 보통보다는 좀 더 느린 정도의 빠르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악보로 쓴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속도로 연주를 하고 있을 까요?

우리네 한민족의 기본적인 정서는 “빨리빨리”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70-80년대 초고속 경제 성장시대를 거치면서 뭐든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현실 때문에 광복 세대는 물론 이를 그대로 보고 배운 베이비 부머 세대, X세대, Y세대, 밀레니얼 세대도 이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한국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조차도 “빨리빨리”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이 빨리빨리 문화 덕분에 대한민국이 인터넷 최강국이 되었고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초단기 초고속 성장을 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단기 실적을 위한 부실 공사로 와우 아파트 붕괴,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엄청난 재난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최소한 프레스토 이상의 빠르기로 인생을 연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 몇 가지 사례 중 하나라도 해당이 되지 않는 사람은 그나마 한국인으로서 모데라토급의 삶을 향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웹사이트가 3초 안에 열리지 않을 때 F5를 3 연타 이상하거나 아예 닫는다. 삼겹살이 익지 않았는데 계속 뒤집는다. 엘리베이터가 열렸을 때 닫힘 버튼을 숨 가쁘게 연타한다.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가 나오는 도중에 컵을 쥐고 기다린다. 3 분 컵라면을 3분이 되기 전에 열어 젓가락으로 휘젓는다. 버스에서 버스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문 앞에 서서 기다린다. 상대방에 전화 걸어 통화 중일 때 끊고 바로 다시 건다. 마트에서 계산할 때 줄 서있다가 다른 줄 덜 서있는 계산대 발견하면 즉시 이동한다. 전자레인지 동작 버튼 누르고 고개 숙여 돌아가는 접시 쳐다본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속도로 여러분의 삶을 연주하고 있습니까?

만일 프레스티시모나 프레스토의 속도로 연주한다면 이젠 잠시 쉬었다가 천천히 가면 어떨까요? 라르고나 렌트의 속도가 너무 느리고 답답하다면 아바의 노래처럼 안단테의 속도로 조율하면 어떨까요? 운명이란 표제로 더 유명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1악장은 너무도 유명한 “따다다 단!”으로 시작합니다. 이를 두고 베토벤은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제자인 쉰틀러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운명이니 뭐니 알 바 아니다. 이것은 그저 알레그로 콘 브리오 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알레그로의 체감 속도를 잘 모르면 운명의 “따다다 단!”을 상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교향곡 2악장의 빠르기가 안단테 콘모토이라고 하니 운명교향곡 2악장을 들어보면 알레그로 보다 두 단계 느린 안단테의 속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젠 나도 그 속도로 한번 살아 보아야겠습니다. 어느 여행사의 광고 카피가 문득 떠오릅니다. “세상이 원하는 빠르기에 맞추려 너무 애쓰지 말자. 나만의 속도로 내 삶을 연주해보자. 너무 빠르지 않게 안단테 안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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