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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우연과 필연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인연(因緣)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인(因)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緣)은 인(因)을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입니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옷깃만 스치는 인연을 갖는 데도 전생에 3천 번의 인연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현세에서 인연이 얼마나 소중 한지를 빗대어 표현한 말이겠지만 역으로 현재 내가 알고 있는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도 될 것입니다. 지금의 부모 자식 형제의 인연, 친구 친척의 인연, 학교 직장 선후배의 인연 등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인연이 그만큼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연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 된다는데 얼마나 우연이 반복되어야 필연이 될까요? 

촘촘한 어망은 가로 실과 세로실을 얽어서 만듭니다. 가로 실과 세로실이 서로 겹쳐지면 서로 각자의 사연을 담은 공간이 생겨나고 이 공간들은 또 같은 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연과 필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각각의 사연을 담은 틀에 있다가 서로 모르는 사이에 인연이 되고 인연이 인연에 묶여 필연이 되고 맙니다. 필연으로 묶이지 않으면 그냥 우연으로 남게 됩니다. 


매년 5월은 대학 축제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일반적으로 대학 축제에 초대되는 가수는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가 섭외 대상이 되고 몇 년 전부터는 아이돌 가수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2년 전인 2018년 5월 축제를 기획하던 부산대 총학생회는 당시 아이돌 가수를 초청하려고 몇몇 인기 그룹을 섭외하였으나 예산 사정이 여의치 않자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았던 트로트 가수 김연자에게 형편과 사정을 설명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출연료로 초대가수 출연을 요청하자 그녀는 학생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중장년 층에게 인기가 있는 그녀는 44년 차 트로트 가수로서 젊은이 들의 축제인 대학교 행사에는 평생 처음으로 초대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이 즐기는 축제에 김연자가 초대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학생들의 반응은 싸늘해졌고 이를 주관한 총학생회 측은 안팎으로 비난의 눈총을 받으며 난감한 상황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자 서로 좋은 마음으로 시작된 인연이 악연으로 끝날 것 같았는데 막상 축제가 시작되자 대반전이 일어나면서 김연자 공연은 초대박을 쳤습니다. 지역주민까지 합세한 부산대 축제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고 그녀와 부산대 학생들의 열창 모습이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끌자 뉴스에서도 연일 화제성으로 다루어져 김연자는 중년 스타가 아닌 청춘스타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3년에 발표되어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아모르파티’는 5년이 지나서 말 그대로 역주행의 신화를 쓴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 인연을 계기로  9월에 김연자는 어느 방송사의 떼창 경연대회에 부산대 학생 150명을 초대했고 이들은 버스 3대를 나누어 타고 2번이나 서울로 올라와 ‘아모르파티’를 열창해 김연자가 경쟁 가수를 이길 수 있게 해서 김연자가 그들에게 감사의 큰절을 올려 보는 이로 하여금 큰 감동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 후 10월에 부산대가 가을 축제인 시월제를 개최한다고 하자 김연자는 무료 공연을 먼저 제안하고 또한 부산대 학생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공연 도중 열광하는 학생들에게 감동을 받아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반드시 부산대학교를 다니고 싶습니다. 제가 힘들 때 저를 받아 주시고, 서울까지 와서 도와주시고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하자 학생들도 김연자를 연호하며 공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어 가을밤을 아름다운 축제로 물들였습니다. 이에 부산대 총장도 “우리 학생들의 넉넉하지 못한 형편과 사정으로 시작된 김연자 씨와의 우연한 인연이 이제는 천만금보다 더 가치로운 아름다운 필연으로 꽃피게 되어 너무도 감격스럽습니다.” 라며 그녀와 부산대와의 소중한 인연이 계속 이어지길 기원하였습니다. 이들은 우연이 인연으로 묶여 필연이 되었습니다. 

김연자의 ‘아모르파티’가 빅히트를 친 이후 트로트가 대중의 인기를 끌면서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로트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이들이 메가 히트를 치면서 요즘은 말 그대로 트로트가 대세 중의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 또한 우연이 반복되어 필연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노사연이라는 가수는 만남이라는 노래에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우리의 만남은 과연 우연이 아닌 필연일까요? 45억 년의 기나긴 지구 역사 중에서 이 시간대에 같이 태어나, 5대양 6대주의 드넓은 지구 공간 중에서 이 공간대에 같이 존재하는 우리의 이 인연은 우연일까요? 아니면 이미 정해진 필연일까요? 이 글을 지금 읽는 여러분은 나와 우연의 만남인가요? 필연의 만남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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