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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찰리 채플린

중절모, 콧수염 그리고 지팡이 하면 연상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는 바로 영국의 유명한 희극 배우인 찰리 채플린을 떠 올리게 됩니다. 찰리 채플린은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표정으로 많은 사람을 웃게 했으나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작 그는 어딘지 모르게 매우 슬퍼 보입니다.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코미디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아마도 그가 성공한 코미디언, 감독, 음악인으로서 멀리서 보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만 받았을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난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많은 슬픔을 내재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또한 누구에게나 인생은 희극과 비극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진리 이기도 합니다. 1889년 런던의 빈민가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정신병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찰리 채플린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0살 때부터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시작했으며 신문팔이, 양초 팔이는 물론 잘 집도 없어서 노숙을 하면서 성장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년 시절을 극복하고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한 그는 그가 생각하는 인생관에 대해  많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불행하면 인생이 너를 비웃을 것이고 행복하면 인생이 네게 웃음 지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면 인생은 너에게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봐요. 내려다보기만 하면 절대 무지개를 찾지 못합니다.”  “과거? 지나고 나면 결국 모두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다”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삶은 정말 멋진 것이다. 삶에 필요한 것은 용기와 상상력 그리고 약간의 돈이다.” 그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희망을 잃지 않고 성공을 위해 노력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말들입니다.


유년 시절 영국에서 극단 생활을 하던 찰리 채플린은 1912년 미국 공연을 갔을 때 키스턴 영화사의 전속 계약을 제의받고 코미디 배우로 진로를 바꾸게 됩니다. 1914년 헨리 레만이 감독한 “생활비 벌기”라는 영화로 공식 데뷔를 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콧수염에 외알 안경 그리고 중절모에 코트를 입은 사기꾼 캐릭터를 고안했으나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자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웃겨 보고자 사기꾼 캐릭터를 변형하여 헐렁한 바지, 꽉 끼는 윗도리, 작은 중절모자 칫솔 모양의 콧수염 그리고 지팡이를 가진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탄생시켰는데 이 캐릭터가 바로 그 유명한 떠돌이(The Tramp) 캐릭터입니다. 이 캐릭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수십 년간 자리 잡게 하였고 현재도 찰리 채플린은 이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다른 성공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채플린의 성공 뒤에는 그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한 번을 웃기기 위해 100번을 연습한다는 사실입니다.”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을 죽을 것처럼 살아라” 그의 이러한 생각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기자가  채플린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은 무엇입니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는 말했습니다. “나의 최고의 작품은 언제나 다음(Next) 작품입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노년이 되어 건강이 쇠약 해지기 시작한 채플린은 그동안의 영화계에 공헌한 업적으로 영국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아 채플린 경이되었습니다. 1972년에는 미국 아카데미가 그에게 아카데미 명예상을 제안 하자 시상식 참석을 위해 20년 만에 미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는 참석자 전원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명예상을 수상하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수상 소감조차 제대로 발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1977년 크리스마스에 그는 스위스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는 아직 역대 최고의 희극인으로 기억되고 있고 그가 남긴 슬픔과 기쁨 그리고 인생에 대한 많은 명언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

“왜 굳이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가? 인생은 욕망이지 의미가 아니다” 

“나는 비 맞으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우는 것을 누구도 볼 수 없으니까” 

“언제든 몸을 굽혀 아무것도 줍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거울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내가 울고 있을 때 절대 웃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 말이 어쩌면 가장 찰리 채플린 다운 말인 것 같습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고, 거기에서 예술이 나왔다. 사람들이 이 사실에 환멸을 느껴도 할 수 없다. 그것이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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