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또 떠나는가.
공항은 존재의 이유가 참으로 슬픈 곳이다. 공항의 주된 목적은 기존의 익숙했던 것들과의 이별을 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군을 전역하고 지난 6년간 참 많은 공항을 다녔고 수많은 감정들이 일렁였다. 비행기를 놓쳐 증오의 감정도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와야 하는 이별의 슬픔도 있었으며 앞으로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지난 6년의 시간을 긴 비행으로 본다면,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는 난기류에 갇힌 비행기 같았다. 기장과 부기장은 아무리 짧은 거리를 비행하더라도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목적지가 없는 프리 비행이라면? 내가 가고 있는 목적지가 잘 가고 있는지 모른다면. 아니 그보다 기장이 목적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 든다면 기체는 어떻게 될까? 방향을 잃고 끊임없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해외에 살고 있는 지난 시간들이 비행에는 관심 없고 파일럿이라는 겉멋만 좋아하는 꼴이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나에게 유학한다고 유세 떨고 싶은 거지 진정으로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냐고 물으셨다. 솔직히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학벌에 대한 컴플랙스 때문에 남에 눈에 보이기 좋아 보이려고 위세만 떨고 있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목적지도 모르고 혼란스러웠는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코로나 시국은 나에게는 또 다른 쉼표가 되어 지금 나의 위치가 어디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는 위치도 방향도 분명해진 것이다. 28 적지 않은 시국이다. 내가 해외에서 살기로 시작했을 때 이미 남들과는 다른 방향을 걷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시간은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과 없는 추측은 몽상에 불과하니까.
위기가 닥쳤을 때 누군가는 절망하지만 누군가는 기회로 삼아 도약하기도 한다. 나에게 코로나는 위대한 여정으로 가는 하나의 작은 발걸음이 될 것임을 나는 안다.
21.09.13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