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fort Zone을 벗어난 개구리

by 이야기 제작소

Comfort zone, 안전지대. 이 용어는 인간이 편안함을 느끼는 구역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이불속이라던가 자신의 방에 있는 소파라던가.. 인류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편안함에 집착해왔다. 수렵 사회에 서는 고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해 농경사회가 되었고 농경사회에서는 대량생산을 통해 물질적 풍요를 누려왔다. 이런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편안하길 원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나타난다.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안정감이 주어졌을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이 시기부터 성장은 둔화된다. 공부에서든 비즈니스에서든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던 자기 계발을 하려는 사람이건 고착화되어있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자신은 중간이라는 안도감과 임계점을 넘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그저 그런 삶을 살게 된다.


크림캔.jpg 나는 내가 크림통에 빠진 개구리라는 것을 안다.


크림통에 빠진 개구리 이야기를 해보자. 여기 크림통에 빠진 두 마리의 개구리가 있다. 크림은 밑에서부터 가열하는 중이다. 한 마리는 온도가 오르는지도 모르는 체 가만히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크림통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결국 가만히 있었던 개구리는 크림 속에서 익어죽었고 발버둥치던 개구리는 크림이 굳어져 크림통을 빠져나가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다. 위기는 서서히 다가온다는 것과 개구리 처럼 해엄 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익어 죽는다는 것.


유재석 위기.jpg 유재석이 말하는 위기란?


위기는 절대 한 번에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자연재해나 불가피한 상황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위기는 서서히 다가온다. 나보다 못했거나 비슷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어느날 퀀텀 점프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 사람은 변했고 나는 그대로인데 이유가 무엇일까? 그 친구는 작게나마 개구리처럼 크림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물어보겠다. 나는 지금 크림통속에서 해엄치고 있는가?


네덜란드.jpg 내가 처음 이곳에 오기로 했을때와 지금은 변한게 없다.


이번에 다시 유학을 준비하면서 생각이 참 많았다. 다시 가야 하나? 그곳에서 이룰 것이 있을까? 한국에서 있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생겼다고 내가 꿈꿨던 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나는 또 크림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개구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서 자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다른 세상이 더 좋음을 자각하더라도 노력이라는 고통을 수반하고 싶지 않기에 '저것은 신 포도야.'라고 치부해 버린다.


나는 내가 한국에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편안해서 두려웠다. 가장 열심히 해엄칠 수 있는 시간과 육체가 있는데 크림통이 끓고 있는데 나만 자각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고. 포도가 신지 안 신지는 먹어봐야 아는 것이고 나는 내가 바라본 세상밖에 알 수 없기에 다시 한번 유학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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