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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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달 전에 '컴포트 존을 벗어난 개구리'라는 글을 썼다. 코로나 시국에서 다시 유학을 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나중에도 읽고 싶어서 남겨 둔 글이다. 그 당시에는 분명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정말 혁명적인 변화가 하고 싶어서 환경을 벗어나 다시 도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지금 그 개구리는 어떻게 됐을까?
2021년의 마지막 주를 시작하며 개구리의 지난 3개월을 결산해보자.
글을 다시 읽어보면 대망을 품고 네덜란드로 돌아오게 된다. 마치 엄청난 업적을 쌓기 전까지 뒤돌아 보지 않겠다며 자신의 뒤에 불을 지를 것처럼 말한다.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안정감이 주어졌을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이 시기부터 성장은 둔화된다. 공부에서든 비즈니스에서든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던 자기 계발을 하려는 사람이건 고착화되어있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자신은 중간이라는 안도감과 임계점을 넘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그저 그런 삶을 살게 된다. - 21.09.18
9월은 살기 위해서 발버둥쳤다. 오랜만에 오는 네덜란드는 내가 아는 것과는 너무나 달랐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자 발버둥쳤다. 아무도 모르는 도시에서 나의 공간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차가운 도시에 그냥 덩그러니 버려진 것이다. 이 시기에 나는 당장 오늘 밤 누울 침대도 없었다.
준비하지 않은 자의 당연한 결과였다. 항상 있을 것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결과다. 매일같이 부동산 중개사이트를 찾아도 내가 원하는 가격과 옵션은 나오지 않았다. 남들이 방학 동안 열심히 집 알아보고 컨택할 때 게으름 부렸고 술 마셨고 놀았으니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참 간사한게 내가 한 잘못이라도 막상 벌을 받으면 억울하고 받아들이기 싫다. 분명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신의 잘못인데도 말이다.
그다음은 탓을 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게 아니다. 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아니 학생들을 위한 방도 없으면 어쩌라는 것인가? 하면서 남 탓을 한다. 그리고 괜한 중개인이나 나를 도우려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부린다.
막상 살 집도 먹을 음식도 없는데 공부라고 눈에 들어오겠나? 물론 핑계지만. 당연히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고 그저 그렇게 1달이 지났다.
아마 남 탓하는 대회가 있다면, 당연 1등 했을 것이다.
아직도 방을 알아보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한 그때. 과거에 잠깐 알고 지냈던 친구를 만났다. 친구를 만난 날은 그나마 단기로 얻은 방도 3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친구는 내가 알지 못한 방법 나에게 설명해주었고 결국 집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렇게 어렵게 찾은 방을 내 실수로 놓치고 말았다. 너무 좋은 조건임에도 불고하고 내 실수로 놓치게 되었다.
‘조급하면 당연한 것도 눈에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조상님들은 말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라고’
운이 좋게도 나는 다른 집을 금방 구할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화려한 계획을 세웠다. 아마 저것을 다 지켰다면 지금은 위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안 변할까?
답은 변화라는 것은 기존의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물에 이치가 그렇듯 모든 것은 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려는 것을 계속하려 하지 새로운 것을 하려 하지 않는다. 항상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쉽게 변할 수 없다.
나도 그렇다. 막상 계획은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저렇게 광고를 하면서 막상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몇 개나 지켰나 싶다.
기본적인 의식주도 지키지 못해 빌빌 거리며 6주간을 살았다. 그리고 좋은 집도 구했고 안정이 찾아왔다면 본래의 목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목적 : 하루라도 젊은 날에 머리 잘 돌아갈 때 실컷 공부해보자.
그러나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말 다르다고 기본적인 것이 안정되자 나에게 게으름이라는 또 다른 악마가 찾아왔다. 그러고 마치 자기 대가리가 무지하게 좋은 거처럼 효율성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아 이 정도면 이만큼만 하면 되겠다.”
예상대로 시간이 다가와도 행동하지 않았고 시간이 가까워서 허접한 결과만 만들기 시작하였다. 매일 성장하는 기쁨을 알지 못하고 그저 자기 대라기가 잘난 냥 설치다가 최악의 수를 두게 되었다. 이는 내가 아니더라도 모든 이들이 알았고 결과는 처참했다.
나는 유튜브를 정말 많이보는데 유투버 장사의 신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닌거 같은데 되게 잘난냥 효율을 계산하고 게으름을 부린다. 행동하지 않으니 실력은 쌓이지 않았고 결국 허섭한 결과만 만들어낸다. 뭐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 자업자득이었고 오만하고 게을렀기 때문에.
연말이 다가왔다. 막상 한것도 없는데 슬럼프가 왔다. 정말 미친듯이 노력했을 때 퀀텀점프를 위해 벽이 느껴졌을 때 와야 할 슬럼프가 아무것도 안 한 나에게 온것이다. 왜 왔을까? 한 것도 없는데. 물론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지금까지 노력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번 글의 소제목은 ‘가치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다.’이다.
가치를 만드는 것은 쉽다. 계획을 세우고 마치 가치가 있는 것처럼 떠들고 다니면 된다. 하지만 증명은 다른 문제다. 증명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인정을 전제로 한다. 즉 내가 아무리 떠들고 다녀도 남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증명되지 않은 것이다.
크리스마스 방학이 왔고 유럽은 락다운을 선택했다. 내가 원하는 업적을 이루기 전까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나섰던 한국을 다시 돌아간다. 락다운이 된 시점에서 한국에서 조금 이라도 더 있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나를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랑 이 문제에서 논의하던 중 친구는 말했다.
"바뀌고 싶다며 근데 왜 예전같이 행동해? 그럼 뭐가 바뀌겠어"
가슴속 깊숙히 수치심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 나는 입벌구(입만 벌리면 구라)가 되어있었다. 당연히 증명한 것이 없었기에 남들이 보기엔 그냥 뻥쟁이처럼 보였겠지.
내년에 연말 결산을 하는 글에 오늘과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