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사람에게는 예의를 차리고 서비스직에는 컴플레인하는 나는 위선자이다
얼마 전, 아이가 다쳐서 서류를 준비해 실손보험을 청구했다. 요새 실손보험은 그래도 처리가 빠른 편이라, 접수하고 이틀쯤 지나니 지급내역을 안내하는 문자가 왔다. 그런데 어라,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 4세대로 보험이 바뀌어서 그런가 생각하며 나중에 상세 내용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 전 회사에서 가입된 단체 상해보험이 아직 유지 중이라서 그 보험이랑 중복이라 이쪽 보험사에서는 일부만 지급되었다고 했다. 그 회사를 퇴사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고 하니, 해당 보험사에 전화해서 해지를 신청하고 그 내용을 이쪽 보험사에서 확인이 되면 나머지 비용을 다시 지급해 준다는 안내를 받았다.
아니, 퇴사를 한지 두 달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처리가 안 되다니. 전 회사 인사팀에 전화하고, 보험을 해지하고, 다시 보험사에 전화해서 또 청구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짜증이 났다. 우선 전 회사 인사팀에 연락하니 확인해서 처리하겠단다. 그리고 또 이틀쯤이 지났다. 전 회사 보험사 담당자가 전화를 했는데, 아직 인사팀에서 연락이 안 왔단다. 아니, 두 달 전에 처리를 안 한 것도 화가 나는데 아직까지 연락을 안 하다니? 볼멘소리로 어떻게 된 거냐며 담당자에게 따졌다. 그 담당자는 인사팀에서 연락이 안 오면 해지할 수 없고, 지금 가입으로 유지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내가 금액을 청구해도 재직 기준으로 검토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설명했다. 짜증이 확 치솟았다. 내 목소리가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는지 그 담당자는 자기가 직접 인사팀에 전화하겠다고 했다. 나는 화가 너무 나서, 왜 퇴사할 때 자동으로 해지 처리가 안 되는지, 그리고 내가 전화를 한지 며칠이 되었는데 왜 이렇게 늦게 연락을 준거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자기가 이 일만 하는 게 아니지 않냐, 고 답변하여 내 목소리는 좀 더 격양되었다. 어쨌든 빨리 처리를 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후회가 밀려왔다. 아니, 생각해보면 잘못한 것은 전 회사 인사팀인데, 난 왜 엄한 보험사 담당자에게 따지고 있는 것인가? 전 회사 담당자가 내 퇴사 서류를 처리할 때 보험까지 빨리 정리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정작 전 회사 인사팀에는 보험을 해지해달라는 요청을 정중히 해 놓고선 보험 담당자에게는 온갖 짜증을 부린 것이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전 회사 사람에게는 예의를 차리느라 정작 해야 할 컴플레인을 안 한 것이고 보험 담당자에게는 서비스업의 특성상 컴플레인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강한 자 앞에서 약하고, 약한 자 앞에서 강하게 구는, 위선자와 다를 게 무엇인가? 전 인사팀에는 앞으로 서류 등 부탁할 일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또한 회사를 옮겼어도 업계 평판이라는 게 있기에 나쁜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보험 담당자에게 화를 낸 것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고, 보험은 해지할 것이기에 앞으로 나와 관련이 없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 생각에 미치자마자, 그 담당자에게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가 왔던 번호로 다시 걸어보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기에 내 번호가 떠서 일부러 받지 않았을 수도, 발신전용번호라서 원래 전화연결이 안 되는 번호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내 사과의 의지는 공허한 혼자만의 결심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동안 콜센터에 연결할 때마다 안내멘트로 흘러나왔던 말을 곱씹어 보며,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사람 또는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사람이 내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지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간 내가 했던 컴플레인 중 상당수가 그냥 내 자신의 화를 분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을 수도 있으며 과연 내가 정확한 책임자를 콕 집어서 항의한 게 맞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대부분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 온 몸으로 컴플레인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동안 강한 자에게 제대로 컴플레인하고 약한 자를 감싸고 포용해 왔던가? 아닌 것 같다. 나 자신의 이중성을 직면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