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시험에 떨어졌다. 이것은, 전략의 실패다.
54점. 아, 망했다...
지난 토요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자격증 필기시험을 쳤다. 중학교 이후로 자격증 시험은 처음 보는 거라 괜스레 긴장이 되었고, 컴퓨터 사인펜을 구하러 회사 점심시간을 틈타 조금 멀리 떨어진 문구점까지 다녀왔었다. 원래는 대학원을 휴학할 생각이었기에 그 대신 관련 있는 자격증이라도 미리 공부해둘까 싶어서 급히 신청했던 시험이라, 자격증을 알아보고 접수하고 나니 나에게는 약 한 달 하고도 2주의 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격증 준비 후기들을 살펴보니, 1차 시험에 최소 3~4개월은 준비해야 한다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왠지 모를 자신감에 차 있었다. 대학원 준비를 할 때 미리 훑어봤던 과목이 자격증 과목에 포함이 되었던 이유도 있고, 그동안 웬만한 필기시험에는 큰 어려움 없이 붙었던 경험도 많아서 조금 빠듯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우선, 범위가 너무 많았다. 총 5과목을 보는데, 그중 1,2과목은 내가 대학원 때 준비한 과목과 얼추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하더라도 3,4과목은 그동안 접해본 적이 없던 내용이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나는 현재 온전히 시험에만 몰두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회사를 다니고 있는 데다가 퇴근을 한 이후에도 아이를 돌보느라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를 재운 이후만 가능한데, 게다가 최근에는 아이가 점점 더 잠드는 시간이 늦어져서 밤 10시 반에서 11시가 다 되어 잠드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하루에 시간을 아무리 쪼개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30분~1시간이 전부였고 주말 또한 아이가 낮잠을 자는 1~2시간 정도를 더할 수 있을 뿐 충분히 공부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시험 전까지 전체 과목을 훑어볼까 말까 할 정도로 시간은 부족했고, 그렇기에 아이가 평소보다 더 늦게 잠들 때에는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기도 했었다. 게다가 내가 남편의 배려로 첫 학기 휴학을 하지 않고 대학원을 가겠다고 결정한 이후,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느라 그 부족한 시간에서 몇 시간을 또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보게 된 시험. 그래도 웬만큼은 맞추겠거니, 하고 시험에 임했는데 웬걸, 너무 어려웠다. 4지선다형 시험이었는데 아닌 보기부터 제외하며 문제를 풀어가는데 꼭 보기를 2개쯤 남기고 헷갈렸다. 확실하게 맞았다, 라는 느낌이 드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 한창 풀다 보니, 나중에는 내가 이 문제를 더 붙들고 있어 봤자 그저 운의 문제이고 내 머릿속에서 더 나올 지식이 없다고 판단되어 종료시간을 1시간 남기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헷갈렸던 문제를 재빨리 교재를 뒤져서 찾아봤지만, 이 문제가 어느 카테고리에 있는지조차 헷갈릴 만큼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사이트에 가답안이 올라오고, 채점 중간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지만, 뒤로 갈수록 빗줄기가 내리는 시험지를 보며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이렇게 불합격되는 결말을 보려고 1달 반 동안 시간을 쪼개어가며 공부한 게 아닌데... 남편은 시험 결과를 듣더니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이건, "전략의 실패"라는 것이다.
즉, 나는 이 자격증에 임할 때 충분한 공부 시간을 확보하고 시험 신청을 했었어야 했고 한꺼번에 여러 일을 벌이면서 여기에도 조금, 저기에도 조금 이렇게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조율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어차피 아이의 육아 때문에 많은 자유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점을 미리 고려했어야 했다. 최소 3~4개월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이는 일반인 기준이고, 시간이 부족한 나는 오히려 5~6개월을 준비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소스의 합리적인 배분, 그리고 최적의 결과를 도출한다는 관점에서 나는 이미 계획부터 잘못 짠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시험을 준비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도 가채점 결과 합격 커트라인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다음 시험 접수일이 언제쯤이라는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대학원을 다니기로 정했고 이 시험을 또 준비하려면 대학원 수업과 병행해야 한다. 아직 정신 못 차린 것일 수도 있지만 한번 더 보면 붙지 않을까, 라는 아쉬움이 사실 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필승의 전략이다. 1달 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 그리고 특별한 자격요건이 없으면 좀 쉽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편견.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기다. 자격증 시험에 쏟았던 1달 반의 자투리 시간을 아이와 좀 더 놀아주는 데에 보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차라리 6개월 정도로 넉넉한 시간을 잡고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더라면 초조한 마음보다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준비할 수도 있었을 거다. 남편의 정확한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다음 시험은 접수하지 않고 우선은 대학원 수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가장 효율적인 시간 배분은, 여러 일에 조금씩 시간을 쪼개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한 개의 일을 집중하여 좀 더 완성도 있게 끝내는 것에 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