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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DY Feb 25. 2022

바쁨결심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혹시, OOO대학원 ㅁㅁㅁㅁ학과 다닐 거예요?"


 갑자기, 전 회사의 한 선배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회사를 꽤 오래 다녀서,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는 정도의 사이인데 개인적인 교류가 있지는 않았다. 사실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어서 카톡을 받고는 꽤 당황스러웠다. 나와 그 선배님 사이에 공통분모로 친한 회사분이 한 명 있긴 한데, 그분에게조차 대학원 입학은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 아시는 걸까?


 바로 답을 하니, 지금 그분이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다니고 있으며 카톡방에 내가 초대된 것을 보고 설마 하는 마음에 연락하셨다고 한다. 대학원 OT 이후에 동기뿐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 그 학과를 다니고 있는 사람을 모두 초대하여 운영되는 카톡방이 있는데, 어제 올라온 공지사항을 보고 궁금한 점을 질문했더니 그분이 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 연락하신 거다.


 원래 나의 2022년 계획 안에 이직은 없었고, 대학원 입학은 있었다. 그러나 작년 대학원을 준비하던 시기에 이직의 기회가 왔고, 잘 풀렸으며, 대학원 또한 합격했다. 그런데 둘 다 붙고 나자 드는 생각이 '이직한 지 얼마 안 돼서 대학원 가는 게 가능할까?'였다. 재빨리 대학교 학칙을 찾아보니 원칙적으로 1학 차는 휴학이 안 되지만 예외로 육아휴학은 기간과 횟수 제한 없이, 1학 차부터 가능하다는 조항을 발견했다. 그래서 휴학에 대한 처리 절차에 대해 문의했고, 휴학계를 제출하기 위해 작성도 해 두었다. 2년간 휴학을 해서 2년 뒤 대학원과 회사를 병행한다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대학원 OT(시기가 이래서 비대면으로 진행했다)를 참석해서 동기들을 만나고, 수업과 학교생활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동기는 아니지만, 어떤 한 분은 내가 지금 계획한 것과 비슷하게 1학차부터 휴학하여 2년 뒤 복학했는데 자신의 동기들은 벌써 대부분 졸업하고 없단다. 그래서 너무 외롭다고, 자신을 꼭 이번 신입생 모임에 끼워줬으면 좋겠다고 수시로 말씀하셨다. 거의 말끝마다 말씀하셔서 동기들도 저분을 같은 동기방에 초대하고 같이 어울리자는 것에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분의 모습을 보니 어쩌면 나도 바로 휴학하고 나중에 복학하면 저런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동기장을 뽑을 때, 누군가 나를 추천했지만 나는 내가 지금 바로 학교를 다닐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그 자리를 고사하고 다른 분을 추천했다. 휴학하고 2년 뒤 복학하겠다는 계획을 완전히 짜고서 OT에 참석한 것이지만,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다.


 OT를 끝내고 집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그냥, 대학원 바로 가는게 어때?"라고 물었다. 흔들리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했지만, 남편에게 매우 고마웠다. 사실, 남편도 2~3년 전쯤 MBA 또는 대학원을 진학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가 마침 내가 임신하고 그다음 해에 출산을 예정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남편에게 첫 아이를 낳을 때이고, 우리 둘 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으니 얼마나 힘들지 가늠이 안 돼서 그 해에는 어려울 것 같다, 라며 반대한 적이 있다. 예전에 나는 남편이 공부를 하고 싶을 때 반대했으면서, 이제 아이가 3살쯤이 되니 나는 대학원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괜히 미안하고 눈치가 보였다. 게다가 나는 이직을 하면서, 회사가 집에서 멀어져서 출퇴근 시간이 예전에 비해 30~40분씩 늘어났다. 남편과 합의한 것은 내가 다니는 회사가 완전 자율출근제도를 하고 있으니 내가 아이 등원을 시키고 늦게 출근하고, 남편이 일찍 출근해서 가능한 딱 맞춰 퇴근하여 아이 하원을 시켜주시는 시부모님과 교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대학원을 가게 되면, 최소 일주일에 2번은 집에 밤 11시쯤이나 돼야 도착하게 된다. 주 2일은 남편이 아이도 씻기고 놀아주고 잠도 재워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선뜻 바로 대학원을 가겠다고 말하기 어려웠고 2년간의 유예기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논리는, "어차피 해야 할 거라면 지금 빨리 해두는 게 낫다"였다. 나중에 안 할게 아니라면, 지금처럼 오히려 생활 루틴이 어느 정도 잡혔을 때 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2년 뒤라면 아이는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된다. 아이도 환경이 변할 것이고, 나도 그때 대학원을 시작하게 되면 아이는 엄마를 더 찾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 아이에게 매일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며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남편에게 무한 감사를 느끼며 기왕 마음을 먹은 거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대학원을 나중에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 공부를 또 손 놓을 수는 없어서, 그 시간에 자격증을 하나 따려고 시험 신청을 해뒀었다. 이렇게 대학원에 다닐 줄 알았다면 자격증을 좀 미루는 건데... 사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던 건데, 생각보다 시험 범위가 어마어마했다. 시험 한 달을 남겨두고 그때서야 공부를 시작했는데 조금 후회가 되었다. 게다가 자격증을 따려면 시험을 두 번이나 치러야 하고, 첫 번째 시험은 객관식이라 어찌어찌 합격한다고 쳐도(?) 두 번째 시험은 주관식이라 더 많은 반복학습이 필요하다. 만약 1차를 붙으면(?) 2차 시험은 좀 미뤄서 대학원 방학 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꺼번에 해야 할 일이 많으니 골치가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쁨결심을 했다. 이직한 회사에서도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일 해야 할 것이고, 기왕 마음먹은 대학원 공부도 잘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에게는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어 놀아주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에도 많이 데려갈 것이다. 지금을 충만하게 사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 바쁨결심은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 길을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고,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준 남편과 가족에게 항상 고맙다고 표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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