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비로소 깨닫는 엄마의 사랑
엄마는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엄마를 안거나 손을 잡아 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나도 그다지 애교가 많은 성격은 아니지만, 어렸기에 가끔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질 때 엄마에게 백허그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완고하게 뿌리쳤다. 어느 날, 엄마가 세게 뿌리친 적이 있었고 그때 굉장히 마음의 상처를 받은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엄마에게 스킨십을 시도하지 않았다. 더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엄마와의 관계는 커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집이 센 성격 때문에 학생 때까지 엄마에게 혼나는 일도 많았다. 엄마에게 실컷 혼나고 나서(가끔은 체벌도 받았다) 따로 위로해주는 일도 없었다. 가끔은 나는 정말 친딸이 맞을까, 다른 집에서는 다들 애정을 듬뿍 받고 자라는 것 같은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게다가 아빠는 우리 자매에게 아예 무관심했기 때문에 그쪽에 애정을 바랄 수도 없었다. 사실, 굉장히 애정이 고팠지만 우리 집에서는 요원한 일로 느껴졌다.
오히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나는 부모님에게 관심을 끊었다. 물론, 같이 살기 때문에 아예 연을 끊었다거나 대화를 안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저 나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생활리듬이 바뀌었기 때문에 거기에 쏟을 정신이 없었다.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입사했기 때문에 쉴 틈 없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고, 업무를 파악하는 데에 정신을 쏟았다. 콘텐츠 관련 업무는 9-6로 딱 끝나지 않고, 회사도 집에서 멀었기 때문에 평일에 대부분의 시간은 회사에서 보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과 관심이 자연스럽게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는 제법 일찍 결혼했다. 요새 결혼연령이 늦어지는 것 치고는 빨랐다는 의미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덕분에 넉넉하진 않지만 돈도 조금 모아뒀었기 때문에 결혼은 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 있었다. 결혼할 때도 집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내가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맺고 싶지만 결혼 초기에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한 고집하는 나의 성격 때문에 싸움은 크게 번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건, 정말 친한 친구에게 전화할 때도 있었지만 거의 항상 엄마였다. 친구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로를 해 줄 수는 있었지만 매번 나쁜 일로 전화하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데 자꾸 전화하기도 미안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싸우고 나면 항상 엄마가 먼저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그다지 애정을 받지 못했고, 딱히 고민상담을 하거나 위로를 받았던 적도 거의 없던지라 왜 엄마가 떠오를까, 의문이었지만 그러한 상황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 그냥 화났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기가 막히게 나의 마음과 상황을 잘 알았다. 별 얘기를 해준 것 같지도 않은데 통화를 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곤 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엄마가 나에게 애정을 주지 않는구나,라고 인지한 이후로 엄마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대학교 입학 이후로 어려운 일이 있거나 갑자기 큰돈이 필요해도 항상 내가 해결해야지, 라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진로를 정할 때도, 교환학생을 준비할 때도, 외부 장학금을 받기 위해 준비할 때도 모든 것이 거의 다 결정된 이후에야 엄마에게 말하곤 했다. 대학교 입학금도 수시에 합격한 이후 입학 때까지 과외 알바를 해서 모았고, 성적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으며, 외부 장학금에 합격하여 2학년 때부터의 등록금을 전부 면제받았다. 엄마에게 이런 것을 해달라고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주지 않는 애정처럼, 모든 걸 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나는 결혼은 일찍 한 편이지만, 아이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가졌다. 이는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는데, 회사에서의 승진과 업무 등 여러 타이밍을 재다 보니 결혼한 시기 대비하여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한 시기가 늦어졌다. 시댁에서는 첫 손주였고, 우리 집에서는 언니가 아기를 먼저 낳아서 첫 손주는 아니었지만 같은 해 2달 차이로 낳았기 때문에 손자 손녀가 한꺼번에 생겨 북적북적해진 상황이었다.
언니가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물어보며 육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첫아기를 낳고 나니 모든 것이 멘붕이었다. 이론으로만 접했던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밥 아저씨의 그림처럼 "참 쉽죠?"라고 얘기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적용이 안 됐다. 특히 아기를 낳고 나서 처음으로 수유를 할 때 생각만큼 자세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진땀을 뺐으며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도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몰라서 남편이랑 허둥지둥 대며 조리원 직원분을 불러 도움을 받았었다. 조리원 생활을 끝내고 집에 처음 온 날, 낮에는 천사 같았지만 밤에는 계속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며 이미 감각이 없어진 팔을 흔들흔들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하루, 이틀, 일주일 넘게 지속되며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좀비같이 퀭한 내 모습을 거울로 바라봤을 때, 아, 이게 바로 육아의 시작이로구나, 하고 실감이 났었다.
엄마는 출산하는 날부터 3일간 입원한 나를 빠짐없이 보러 왔었고(코로나19 이전 일이기에 가능했다.) 내가 있었던 조리원은 남편 외에는 출입이 안 되었기에 조리원에서 퇴소하는 날부터 근 한 달간 이틀 간격으로 집에 와서 산후조리와 아기 돌보는 것을 도와주었다. 초짜 엄마인 나에게 아기 돌봄의 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컸지만 그보다는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내가 낮에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게 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있던 조리원에는 산후마사지가 없어서 조리원 퇴소 이후에 마사지를 받기 시작했는데, 마사지를 받으러 가는 시간 동안 아기를 봐주셔서 10회권을 무리 없이 다 사용할 수 있었다. 아기가 직수에 익숙해져서 젖병으로는 절대 먹지 않았는데, 내가 잠을 자거나 마사지를 받으러 집을 비우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젖병으로 먹여야 했기 때문에 엄마는 안 먹겠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아기를 달래어 몇 모금이라도 먹게 했다. 나로서는 불가능한 인내심이었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의심한 순간들이 많았다. 엄마는 애정을 크게 표현한 적이 없었고 사랑한다는 말도 해 준 적이 없다. 그러나, 아기를 낳고 나서는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알았다.(물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등 정신적인 문제가 있거나 아이를 학대하는 등 비정상적인 사람은 예외이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 기준이다.) 초보 엄마인 나만 해도 아이가 딱히 뭘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벅차고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 자매를, 그 좁은 옛날 시골집 골방에서 왔다 갔다 하며 안고 있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무도, 엄마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같이 살던 고모도, 할머니도, 아빠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엄마 혼자 외로이 그 껌껌한 방에서 아기가 잘 때까지 아픈 팔을 주물러가며 달랬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그 첫날밤을 기억한다. 건너편에 보이는 아파트의 불빛이 한 개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하고 늦은 밤까지 아이를 안고 흔들었던 그 기억... 나는 힘들면 남편과 엄마에게 투정이라도 부릴 수 있지만, 엄마는 과연 누구에게 하소연을 했었을까.
엄마는 애정표현을 살갑게 하는 성격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내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우리 가족을 잘 아는 사람들 말로는 나와 엄마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쏙 빼닮았다고 한다. 나도 사실 애정표현을 하는 것을 낯간지러워하고 쑥스러워하는 성격이다. 엄마와 내가 닮았다고 한다면, 어렸을 때의 엄마도 필경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요새는 엄마에게 슬쩍 다가가 가끔 스킨십을 시도해 본다. 여전히 어색해하시지만, 이제는 그 표정이 싫어하는 게 아니고 단지 부끄러워서, 낯설기 때문에 나오는 표정임을 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다. 사랑은 말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라, 묵묵히 뒤에서 받쳐주고 앞에서 몰래 끌어주는 행동으로도 표현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