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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DY Mar 30. 2022

한국영화에서 찾는 "정의로움"의 정의

윌 스미스의 크리스 록 폭행 사건에서 찾는 한국 콘텐츠의 특성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우 윌 스미스가 사회자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린 일을 두고, 아카데미 수상 작품들 조명보다 이 사건이 더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누가 옳은지에 대해 각종 커뮤니티와 언론 등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갔는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의 반응과 미국에서의 반응이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언론을 제외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커뮤니티의 반응들 대부분은 "윌 스미스도 잘못했지만, 가족을 모욕한 크리스 록이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에 더 나쁘다", 심한 경우에는 "크리스 록은 맞아도 싸다", "뺨을 때리는 게 아니라 주먹으로 더 세게 쳤어야 했다"는 반응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어떤가요. 이 일이 터진 이후로 윌 스미스는 그다음 날 크리스 록에게 공개 사과문을 썼고, 윌 스미스의 수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합니다. 또한, 같은 배우들 및 아카데미 관계자들에게도 비난을 받고 있고요.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여기서 잠시,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려 봅시다. 혹시 <범죄도시> 기억나시나요? 마석도 형사(마동석)는 나쁜 놈을 때려잡는 형사입니다. 영화 초반에 마석도 형사는 범죄자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뜻대로 되지 않자, 잠시 "진실의 방"으로 데려갑니다. CCTV까지 돌려놓은 그곳에서, 과연 어떤 진실이 새어 나왔을까요? 직접 영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 범죄자가 진실의 방에서 어떤 일을 당했을지에 대해서요. 이건 좀 예전 영화이긴 하지만, <베테랑> 기억나세요? 여기에서도 형사가 등장하죠. 서도철 형사(황정민)는 뇌물로 회유하는 재벌 앞에서도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것은 아니"라며 쪽팔리게 살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죠. 마지막, 재벌 3세와의 한 판 싸움에서 서도철 형사는 판을 뒤집고 조태오(유아인)를 말 그대로 개 패듯 팹니다. 물론, 그 와중에 본인도 맞았지만요. 2020년 코로나19 유행에도 깜짝 흥행했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는, 자신의 형제가 암살자 인남(황정민)에게 살해당한 것을 알게 된 레이(이정재)가 무자비한 복수를 하러 그를 추격하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둘 다 나쁜 놈(?)이긴 하지만, 복수를 위해 서로를 쫓고 쫓으며 잔혹한 폭력이 난무하죠.


 한국 콘텐츠에서 그려지는 경찰, 형사(때로는 전직 경찰이기도 하죠)들을 자세히 보면, 그들 캐릭터가 마냥 좋은 사람만은 아닙니다. 그래도 명색이 주연인데 캐릭터의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츤데레 같지만 알고 보면 정이 많고 따뜻하다거나, 평소에는 가족에 대해 무관심하다가도 특정 기념일이 되면 세상 좋은 아빠가 되거나, 이런 식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그러나 좀 더 큰 그림에서 살펴보면, 더 큰 정의를 위해 사소한 위반을 밥 먹듯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캐릭터의 특징을 세세히 보여주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많은 경우 더 큰 정의를 위해 작은 범죄를 저지른다던지, 허가되지 않은 일을 벌인다던지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당연히 현실 속 사람은 매번 정의롭게 살아가기도 힘들고 꼿꼿한 대나무 같은 사람보다는 상황에 따라 갈대같이 흔들리는 사람이 더 많죠. 하지만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그러한 캐릭터 묘사를 보며 "사이다 마신 것 같다", "정말 통쾌하다"라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러한 캐릭터를 더 인간적으로 여겨서 큰 호감을 갖게 되죠.


 그러고 보면 이번 윌 스미스와 크리스 록 폭행사건을 해석하는 데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가족을 건드리는 데 어떻게 참을 수 있느냐는 반응과, 언어적 폭력이 먼저 있었기에 신체적 폭력이  있던 것이고 이를 동일선상으로 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같은 동양 문화권에서는 공통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윌 스미스가 크리스 록을 때린 것에 대해 "더 큰 정의(이 경우에는 사랑하는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소한 위반(이 경우에는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린 것)을 한 것이기에 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콘텐츠들의 특징과도 매우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윌 스미스의 행동은 가족을 위해 때로는 희생도 불사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한국 콘텐츠의 주인공의 모습인 것이죠. 그렇기에 윌 스미스가 잘못은 했어도, 정당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아닐까요?


 물론 제 해석 또한 모든 콘텐츠에 대해 분석한 것이 아니기에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정의로움의 정의는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두고, 한국과 미국처럼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점은 저에게도 매우 신선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는, 윌 스미스의 심정이 이해되면서 이 쪽으로 여론이 기울 것이라고 생각했죠.(역시 저도 한국인인가 봅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는 의견 또한 존중합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렇게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얼룩진 것은 안타깝지만, 앞으로 아카데미 시상식도 고도의 농담이나 비꼬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지 말고 더욱 세련된 방법으로 진행하는 방법을 생각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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