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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DY Mar 31. 2022

콘텐츠로 보는 직장인 현주소 : 워커홀릭이 답인가요?

'내일'을 위해 현재의 '내 일'에 충실하면서도, 가끔은 나에게 보상을.

(※ 이 글은 [히치하이커 vol.91호 '내일']에 기고했던 글 중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했습니다.)


 바쁨 중독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현대인들은 바쁘지 않으면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왠지 바쁘지 않으면 삶을 헛사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은 열심히 산다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라도 한다는데요. 특히 K-직장인들이라면 공감할 듯 합니다. 물론, 일이 없어서 일을 만드는 경우보다 쏟아지는 일을 다 쳐내지 못해서 야근을 하거나 주말출근을 하는 경우가 더 많겠지요. 이것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바쁘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반증하기에 더욱 바쁜척을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심심찮게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왜 사람들은 바쁜 것을 숭상할까요? 바쁘지 않으면 정말 중요한 사람이 아닐까요?


 최근 <소년심판>을 봤는데요. 주인공 심은석 판사는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FM의 정석으로 각종 사건을 냉철하고 정확하게 판단합니다. 그러한 판단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엄청난 자료 검토와 발로 뛰어서 얻는 현장의 정보들인 것으로 나옵니다. 심은석 판사는 거의 매 회마다 야근하고, 전화기에 불나도록 많은 전화를 받고, 드라마 내에서도 부장판사가 지적하듯이 매번 일을 키웁니다. 그렇게 해야 더욱 정확한 정보, 추가 정보들을 알아내어 억울한 피해자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갑자기 <지옥>이 생각났습니다. <지옥>에서는 세상 사람들 중에 랜덤으로 지옥에 갈 사람이 지정되고(선고를 받고), 그 지정된 날에 심판자들이 찾아와 그 사람을 처단하고 마지막으로는 불로 시체를 태워버립니다. 아주 끔찍한 형벌이죠. 그런데 드라마에서 보면, 지옥을 선고받으면 엄청난 패닉에 빠질 텐데도 우리의 K-직장인들은 그 와중에 출근을 합니다. 아니, 조만간 죽는다는데 출근이라니요.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만 돌아갈 텐데,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 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요.


 작년 코로나 시국에 개봉했던 영화 <기적>도 떠오릅니다. 영화에서는 기차역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두 남매가 나옵니다. 알고보니 어머니가 없던 이유는, 둘째 아들을 출산할 때 어머니가 엄청난 산고를 겪었고 아버지는 기관사라는 직업의 본분 때문에 그 날도 모든 근무를 다 마치고 돌아왔지만 이미 늦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이렇게 철저한 근무의식 덕분에 또 한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영화에서 중요한 반전이라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버지가 그날 근무만이라도 다른 사람과 교대했더라면, 어쩌면 어머니는 살아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게 된다면 이 영화 자체가 탄생하지 않았겠지만 여기에서도 K-직장인의 고지식하면서도 철두철미한 근무의식이 드러납니다.


 영화 <극한직업> 기억나세요? 마약반 형사 팀이 국제 마약 범죄조직의 밀반입을 수사하고자, 범죄조직의 아지트 앞 치킨집을 인수하여 잠복수사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형사 일을 하면서 치킨을 튀기고, 그러다가 치킨집이 예상 못 하게 맛집으로 대박을 치게 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더욱 바빠지게 됩니다. 본업보다 부업이 잘 되는 상황, 이거 좋은 거겠...죠? 마약범 잡다 닭도 잡으면서, 투잡을 열심히 하며 둘 다 성공하는 이야기. 낮에는 직장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배달알바를 뛴다는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쳐 보입니다.


 미래를 위해, 바쁘게 현재를 사는 것.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K-직장인들이 그러한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 참은 만큼 언젠가 큰 보상을 얻게 될 거라는 희망. 하지만 오늘의 만족을 계속 미루다 보면,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만족하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너무 바쁘게 사는 나머지, 현재의 즐거움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내일'을 위해 현재의 '내 일'에 충실하면서도 가끔은 나에게 오늘의 보상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도 몸이 부서저라 일 하는, 많은 K-직장인들에게 이러한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견디는 오늘 말고, 충만한 오늘이 쌓여서 더 나은 내일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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