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는, 필요악이 필요한 시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야차>를 봤습니다. '야차'는 인도 신화 및 불교에 나오는 귀신 중 하나로, 주로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살인귀로 묘사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나찰의 일종으로 여긴다고 하는데, '나찰'은 악귀였다가 갱생한 존재로, 처음에는 사람을 매료시켜 잡아먹는 마귀였으나 나중에는 불교의 수호신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의미하는 '야차' 또한 처음에는 단순히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사람을 죽이는 무자비한 인물로 그려지다가, 뒤로 갈수록 그의 서사와 속마음이 밝혀지면서 필요악 같은 존재로 그려지게 되죠. 의미와 딱 맞습니다.
영화 <야차>의 주인공 지강인(설경구)은 국정원 중국 선양의 지부장으로, 별명이 사람 잡아먹는 '야차'입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사람을 살해하기도 하지만 내 사람(?)을 매우 아낍니다. 지강인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내 사람을 챙기고, 살리는 일이죠. 이 영화의 주된 플롯 또한 지강인의 동료들이 두더지(내부 스파이)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을 계기로 일어나게 된 사건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지강인을 따르는 블랙팀은 리더 지강인에게 대부분 목숨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강인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고, 언제든 바칠 수 있는 결심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이러한 '야차'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한지훈(박해수) 검사입니다. 한지훈은 처음 캐릭터 묘사 때부터 설명되듯이 법과 규칙을 철저히 신봉하며 이를 지키는 것만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기는 원칙주의적인 인물입니다. 초반에 대기업 총수의 비리를 파헤치다, 조사 과정에서 다소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음을 알게 되어 작은 위반도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여기는 한지훈은 그를 어쩔 수 없이 놓아줍니다. 그리고 한직으로 물러나게 되죠. 그러나 정의감에 들끓는 한지훈은 다시 일선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합니다. 바로 중국 선양 지부를 감찰하러 가는 일이었죠. 이를 기회로 삼아 다시 복귀하려는 마음에 자진해서 업무를 맡게 됩니다.
지강인과 한지훈은 계속 부딪칩니다. 현장에서 구르며 생존게임을 해 오던 지강인과 블랙팀에게는 한지훈이 우습게만 보이는데, 몇 번의 실전 테스트를 해 본 결과 한지훈이 조금은 쓸만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한지훈 입장에서는 지강인과 블랙팀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일을 주먹구구 식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불법적인 고문, 폭행, 사기 등을 밥 먹듯 하는 것을 보며 너무나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죠. 내부 감찰을 하는 도중 지강인과 한지훈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지금까지 지강인이 거짓으로 보고서를 보낸 것이 다 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되죠. 해당 사건을 계속해서 상사에게 보고하는 한지훈은, 어느 순간부터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지강인과 함께 다니면서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막무가내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는 지강인을 보며 그동안 지켜왔던 원칙들에 조금씩 의문이 생깁니다. 그리고 "정의는 정의롭게 지켜야 한다"라는 한지훈의 말에 대답하는 지강인의 결정적 한 마디. "정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지켜내야 되는 거야. 나한텐 그게 정의야". 그동안 '정의'에 대해 단 한 가지로 해석해 왔던 한지훈 검사의 마음에 파장이 일던 순간입니다.
결국 지강인과 블랙팀에 협력한 한지훈은 사건을 잘 마무리한 공로로 다시 검찰로 복귀합니다. 이 사건에 얽혀있던 대기업 총수도 다시 소환되어 철저한 조사 끝에 징역이 선고되었죠. 지금까지의 한지훈 검사 스타일과는 다른 사건 해결 방식에 너 변한 것 아니냐고 묻는 부장검사에게, 한지훈 검사는 대답합니다. "누가 그러데요. 정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지켜내는 거라고." 그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메시지였죠. 그리고 걸려온 전화 한 통. 지강인은 한지훈에게 또 법과 원칙을 우습게 아는 놈들이 있다며, 빨리 자기가 있는 쪽으로 합류하여 사건을 해결하자고 권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끝나죠.
영화를 보고 나서,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가 떠올랐습니다. 여기에서 주인공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는 FBI 요원으로, 마약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특별수사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케이트 또한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법과 정의를 준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현장 경험이 풍부하여 많은 작전에 투입된 베테랑이죠. 그러나 마약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특별수사팀에 뭔가 이상한 기류가 있음을 점차 느낍니다. 작전의 총책임자로 임명된 맷(조시 브롤린)은 국방부 소속 고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CIA 요원으로 추정되는, 미스터리에 싸인 인물이죠. 그는 일부러 케이트를 스카우트하는데, 케이트에게 작전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일부러 그녀를 주요 정보에서 배제합니다.
그리고 맷이 섭외한 작전 컨설턴트인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는 더욱 정체불명의 인물이었습니다. '사냥개'라는 별명을 가진 걸로 봐서 영화 <야차>의 '야차' 같은 역할인 것일까요? 아무튼 작전을 시작한 이후로, 케이트는 정보에서 자꾸 소외되는 것을 느끼는데 심지어 행선지조차 자신이 처음에 공유받은 곳과는 달라서 매우 당황하게 됩니다. 그녀는 엘 페소(미국령)로 간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목적지는 멕시코 영토, 후아레스였습니다.
원칙주의자 케이트는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자 폭발하는데요. 맷은 그런 그녀에게 "하기 싫으면 빠져라"라는 말까지 하는데 케이트는 진실을 알고자 작전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불법 고문, 심각한 총격전, 불법 심문 등이 이어지자 케이트와 동료 레지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면 이 작전에서 빠지겠다고 협박하는데요. 그제야 정보를 조금 제공해 주는 맷에게 불만을 품게 된 케이트는, 상관에게 이 작전에서 벌어지는 온갖 불법적인 일들에 대해 고발합니다. 그러나 상관의 대답은 비합법 수단을 동원해서 카르텔을 자극하고 조직을 일망타진하고자 한다는, 작전의 숨은 의미를 말해줍니다. 맷 또한 이 작전의 실제 목표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카르텔을 해체시키고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패권을 보유한 카르텔을 없애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다른 카르텔에게 패권을 넘기면서 마약 판매의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즉, 이 작전에서 케이트는 들러리였던 셈입니다.
마지막에 케이트에게 알레한드로는 지금까지의 작전이 모두 합법적이었다는 진술서에 서명을 요구합니다. 그들에게 케이트는 FBI 요원이고 그저 그들의 작전을 합법화할 수 있는 장치였을 뿐입니다. 케이트는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해 왔던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고, 또한 마지막에 결국은 국가가 선택한 "차악"을 받아들입니다.
이 두 영화에서 '야차'와 '사냥개'는 비슷한 존재입니다. 즉, 사회의 필요악인 것이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국가가 이러한 존재를 만들고 또 묵인하기도 합니다. '야차'와 '사냥개'의 행동은 때로는 더 큰 정의를 지키기 위함이고, 때로는 개인적 복수를 위함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 일일이 감시하고 처단하면 때로는 국가가 원하고 세계가 원하는 큰 그림, 즉 세계평화(?)와 국가 체계의 안정이 깨지는 일도 있겠죠. 그러나 필요악은 말 그대로 "필요악"입니다. 아무리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고 하더라도 "필요" 보다는 "악"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야차>에서는 비교적 평화롭게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현실은 <시카리오>처럼 씁쓸한 결말을 맺는 경우도 많죠. 필요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지속적으로 경계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