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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CG와 실사의 절묘한 조화, 연출력의 힘

SF에 강한 드니 빌뇌브 감독, 후속작이 더 기대된다

by KEIDY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꼽으라고 하면 항상 선두에 언급할 만큼, 그 감독의 신작 소식에는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편이다. 이번 영화 <듄>의 경우에도, 이 작품이 영화화된다는 첫 소식을 접한 이후로 계속 관련 정보를 찾아보며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부러 예고편을 보지 않았고, 원작 소설을 먼저 볼까 싶었지만 무려 권당 1,000페이지 이상의 6권짜리라는 것을 알고는 우선 영화를 보고 재미있으면 원작을 찾아보자고(?) 마음을 바꿨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유행으로 할리우드 대형 작품들이 개봉을 많이 미루게 되었고, 심지어 <듄>이 OTT로 공개될 수도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이에 대해 드니 빌뇌브 감독이 <듄>을 OTT로 공개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비판을 가하며 이 작품이 극장에서 보기에 최적화된 작품이고 이를 위해 영상과 사운드에 엄청난 공을 들였음을 강조하여 기존대로 극장 개봉을 진행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나처럼 아이를 키우고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으로서 2시간 35분의 러닝타임 작품을 보러 가는 것이 참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개봉 이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서야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영화의 평이 좋아서 오랫동안 상영했기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보게 된 영화 <듄>은, 역시나, 매우 만족스러웠다.


드니 빌뇌브 감독 작품은 뛰어난 연출력으로 호평을 받는데, 특히 SF 장르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컨택트>(원제 : Arrival)와 <블레이드 러너 2049>, 그리고 <듄> 세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원작 소설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원작 소설이 있으면 영상으로 연출 시 소설 속 묘사를 그대로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너무 그대로 가져오게 되면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거나 원작 대비 비주얼적으로 구현이 잘 안 될 경우에는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장르 연출은 성공적이었다.


<컨택트>의 원작 소설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테드 창)에서는 사실 외계인과 우주선에 대한 비주얼 묘사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데, 이러한 단편 소설을 가지고 뛰어난 상상력으로 영상을 구현해 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는 "외계인의 언어"를 비주얼로 구현한다는 점이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도 몽환적이면서도 신비하게, 마치 먹물을 뿜어내듯 글자를 표현하는 점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소설 자체는 짧기도 하거니와 주인공의 독백 내지는 회상 위주로 되어있어서 주변 상황에 대한 설명이 그리 많지 않은데 영화에서는 주인공 루이스, 그의 연인 이안, 루이스의 딸 한나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히고 그 얽힌 이야기가 결국은 루이스가 외계인으로부터 새롭게 배우는 언어와 관련이 있음이 밝혀지면서 굉장한 반전을 자아내게 된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뒤에 반전을 알게 된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아서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뭉클한 감동을 느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비주얼, 연출력, 반전 모두가 충격적인 영화였다.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작품 자체로서는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 예전에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소설인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필립 K. 딕)를 읽은 적이 있는데, 복제인간 리플리컨트와 궤도에서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추격하는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이야기로 복제인간의 정체성 혼란, 그리고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곱씹게 하는 작품이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고뇌하는 블레이드 러너인 K(라이언 고슬링)를 통해 그 주제의식을 이어가는데, 일련의 사건을 조사하는 중 리플리컨트를 추격해서 제거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기 자신이 리플리컨트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화려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인공적인 도시의 모습과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황량한 사막 같은 배경이 대조가 되며 진실이 은폐되고 아무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도시와 자기 자신의 의미와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고통스럽고 쉽지 않다는 점을 훌륭하게 묘사해 낸다. 그리고 K가 진실을 마주하며 씁쓸하게 웃는 장면이 그 캐릭터의 심정을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아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듄>은 아직 원작 소설을 보지 못해서 얼마나 원작 소설을 충실하게 재현해 냈는지, 상상력의 나래가 얼만큼 펼쳐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길고 복잡한 소설을 압축해서 영화만 보더라도 그 소설의 세계관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보통 긴 소설을 원작으로 하거나 여러 시리즈로 구상된 콘텐츠의 첫 작품은 소위 말하는 설명충, 즉 세계관과 캐릭터를 장황한 설명으로(주로 캐릭터 간 지루한 대화나 독백 풍의 내레이션으로) 묘사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듄>에서는 그러한 세계관 설명이 너무 어렵다거나 지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완급 조절이 훌륭한 영화로 느껴졌다. 캐릭터 간 대화에서도 뜬금없는 설명이 아닌, 특정 개념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언급하고 그에 대해 대화하는 상대방이 그 개념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제삼자가 봐도 내용이 쉽게 이해되도록 대화 내용, 캐릭터가 만나는 시점 등에 대해 구성을 짠 것 같았다. 이 얼마나 훌륭한 연출력인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영화 제작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보니, 배우들이 소위 말하는 그린 매트(CG를 입힐 것을 가정해서 초록 색 배경의 세트 안에서 촬영하는 것을 말함)에서 연기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했다고 한다. 드니 빌뇌브의 연출 의도에 따르면,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내고 또한 다소 현실감 없는 CG의 최소화를 위해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구현하기 어려운 것은 쉽게 CG로 만들어 내려는 다른 몇몇 연출가들과는 상당히 다른 궤도이다. 꼼꼼하게 계획된, 확실한 기획이 없다면 이루어내기 어려운 성취이다.


그렇기에, 다음 영화가 너무나 기대된다. 그동안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작품은 실망스러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하고, 본인이 상상한 것을 실제로 구현해 낼 수 있는 미친 연출력이야말로 드니 빌뇌브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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