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하게 태어나 덧없이 사라진 혁명의 희생양
마리 앙투아네트. 오스트리아의 공주로 태어나, 프랑스 황태자와 결혼하여 10대에 이미 프랑스 왕비가 된 고귀한 존재. 그러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무개념 발언과 재정난에 허덕이는 프랑스 왕실에 큰 타격을 입힌 목걸이 사건으로 유명한, 희대의 악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비교적 최근에 그녀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희대의 악녀 이미지는 어느 정도 상쇄되었다. 오히려 가장 고귀하게 태어나 가장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그녀의 극적인 삶을 재조명하며 영화, 뮤지컬, 소설 등 여러 콘텐츠에서 다루었기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혁명과 그녀의 삶을 연관 지을 수 있을 정도이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며, 혁명의 의미와 지도자로서의 책임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뮤지컬은 화려한 궁중 연회로부터 시작된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족들 사이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마리 앙투아네트. 고위 성직자인 추기경도 그녀의 환심을 사려 하지만, 한 때 그녀를 맹비난한 사람이기에 매몰차게 내치는 등 엄청난 권력도 가지고 있다. 갑자기 한 가난한 여인이 파티에 난입하여 자신들은 굶고 있는데 귀족들은 이렇게 화려한 파티를 여는 것을 비난하고, 호기심을 가진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가서자 샴페인을 얼굴에 뿌려버린다. 그 여인을 붙잡아 벌하려는 사람들을 말리고, 자비를 베푸는 마리 앙투아네트. 음식을 훔쳐 달아나는 그 여인은 나중에 시민들을 부추겨 혁명을 주도하는 마그리드 아르노였다.
뮤지컬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려하지만 공허한 삶과, 마그리드 아르노의 누추하고 힘들지만 의지를 갖는 삶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상한 남편과 귀여운 아들 딸이 있으며 부와 권력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진정한 사랑인 페르젠 백작만은 손에 넣을 수 없다. 그녀는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온 페르젠 백작이 자신의 개인 호위가 돼줄 것을 요청하지만, 그녀를 멀리 해야 하는 페르젠 백작은 그 요청은 거절하고, 대신 시민혁명의 조짐이 보인다며 조심할 것을 경고한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존 삶의 방식을 바꾸진 않지만, 왕실 재정이 바닥난 것을 걱정하는 국왕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고 아름다운 목걸이를 팔러 온 상인의 제안을 거절한다.
한 편 프랑스 시민들은 혁명을 준비한다. 왕실의 권력을 탈취하려는 오를레앙 공작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다. 억압된 삶을 살던 프랑스 시민들은 본인들은 굶어 죽는데 화려한 왕실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사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비난한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추기경을 이용해 마리 앙투아네트가 구매를 거절했던 목걸이를 전달하게 한다.
물론 목걸이를 받은 사람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혁명 세력의 주동자 마그리드 아르노였고 오를레앙 공작과 결탁하여 이 일을 같이 꾸민 것이었다. 목걸이 값을 받지 못한 상인이 궁에 찾아오게 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소문은 더욱 나쁜 길로 치닫고, 그녀는 자신과 프랑스 국왕을 사지로 몰아세우는 반동 세력들에게 강경히 대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모습은 프랑스 국민들의 반발을 산다.
여자에게는 발포하지 않을 거라는 마그리드 아르노의 주장과 설득을 바탕으로, 시민들은 마침내 바스티유 감옥을 탈취한다. 그리고 마침내 왕실까지 쳐들어가서 왕과 마리 앙투아네트를 끌어낸다. 그들은 시민 재판을 명목으로 왕실 가족들을 가두고 감시하기 시작하는데,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와중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마그리드 아르노는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그 노래를 어렸을 때 들은 적이 있다며 의아해하는데... 그녀를 맹목적으로 싫어하며 사사건건 대립했던 마그리드 아르노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부탁 하나를 꼭 들어달라며, 페르젠 백작에게 몰래 편지를 건네줄 것을 요청한다.
사실, 페르젠 백작은 마그리드 아르노가 예전에 빵을 훔쳐 체포될 뻔한 상황에서 구해 준 적이 있었다. 편지를 읽어본 마그리드 아르노는 그 편지가 굉장히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아채게 되지만, 일단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페르젠 백작은 왕실 가족이 갇힌 곳에 몰래 찾아와 그녀의 가족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돕지만, 탈출을 감행하던 도중 발각당하여 다시 갇히는 신세가 된다.
자신을 끝까지 도왔던 유모가 시민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모욕적으로 그 머리를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보며 마리 앙투아네트는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왕인 루이가 먼저 재판을 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는 소식 또한 전해 듣는다. 그리고 왕이 죽었기에 그다음 왕권을 이어받을 아들마저도 시민 세력의 손에 빼앗기게 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절망하는 마리 앙투아네트.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리고 만다. 페르젠 백작은 지금이라도 같이 도망가자며 설득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 상황에서 도망가지 않겠다며, 자신이 만약 죽더라도 아들과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허울뿐인 재판을 받는다. 물론, 재판은 그녀에 대한 허무맹랑한 죄목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아들마저 탐하는 비상식적인 어미라는 비난에는 무너져버리고 만다. 마그리드 아르노도 이러한 억지 주장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기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그리고 마그리드 아르노에게 마리 앙투아네트의 반역 내용이 담긴 편지를 증거로 제출하라고 강요하지만 마그리드 아르노는 그런 내용은 없었다며 마리 앙투아네트의 편을 들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로 올라가게 된다. 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마리 앙투아네트 사후에, 마그리드 아르노는 오를레앙 공작이 지금껏 순수한 의도가 아닌
그들을 이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을 폭로하고 그녀는 혁명의 아이콘으로 추앙받게 된다. 그리고 마그리드 아르노는 그동안 무조건적으로 미워했던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알려진 것처럼 크게 사치를 하지도 않았고, 외려 심성이 착하고 자비심이 있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민의식이 성장하고 혁명이 태동하던 그 시기에 사람들이 원하는 지도자는 단지 착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마리 앙투아네트가 좀 더 현실감각 있고 영악했더라면, 이러한 파국으로까지 치닫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혁명을 제압하거나 시민을 설득하려는 정책을 펼치기에는 루이 왕을 비롯한 두 부부가 심성이 약하고 모질지 못했으며, 정치를 너무 몰랐던 것이다. 그들의 잘못은,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책임을 갖고는 있었지만 이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일 거다.
물론,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녀가 한 일에 비해서는 굉장히 역사상으로 나쁜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강인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역사의 희생양으로 사라진 그녀가 이제라도 가치중립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