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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DY Oct 24. 2022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의 힘, <하트스토퍼>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어!

 잘생기고 운동도 잘 해서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남학생과 사랑에 빠지는 소심하고 조용한 주인공. 여느 하이틴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재죠. 그러나, 여기에서 인기남과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이 남자라면 어떨까요? 이렇게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도 신선함이 확 더해집니다. 


 <하트스토퍼>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청소년들의 성 정체성에 대해 그리 무겁지 않게 다룬 콘텐츠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LGBT(성 소수자)에 대해 다룬 콘텐츠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외국에서는 이러한 소재의 콘텐츠들이 원체 많이 나오고 있었죠. 보통 성 소수자나 성 정체성 혼란을 겪는 등장인물을 다룰 때, 그 인물 주위에는 그러한 성향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거나 정체성을 밝히면 지금까지의 모든 관계가 무너지는 위기에 처하는 상황으로 많이 그려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콘텐츠 내에서 그러한 감정을 다룰 때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기도 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감내하거나, 때로는 아주 자극적이고 야릇하게 그리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하트스토퍼>는 이러한 콘텐츠들과 상당히 결이 다릅니다. 금기시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지던 성 정체성 소재에 대해 이렇게 귀엽고 유쾌하게 다룬 콘텐츠는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요. 주인공 뿐만이 아니라 주인공 주위의 등장인물들도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소재를 아주 자연스럽게 녹이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사춘기 학생들로, 흔히 사춘기 시절은 질풍노도의 시기로 묘사되는 만큼 정체성에 대한 탐색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인데요. 이미 동성애자로 아웃팅한 주인공 찰리 스프링을 비롯해 주인공과 미묘한 관계에 빠지는 닉, 예전에 닉과 썸 타는 관계였으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레즈비언으로 아웃팅하는 타라, 타라와 사귀는 달시, 그리고 친한 친구 타오를 좋아하는 성 전환자 엘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룹니다. 


 앞서 말했듯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사랑이 싹트는 시기의 몽글몽글하고 달달한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는데요. 물론, 그 안에서도 위기는 존재합니다. 주인공 찰리는 닉과 만나기 전, 살짝 썸을 타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찰리와의 모든 관계를 비밀로 부치며 대외적으로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등 찰리를 기만하는 행동을 보입니다. 찰리는 그러한 관계에 휘둘리며 가뜩이나 낮은 자존감이 더 낮아지게 되고요. 닉은 원래 친하게 지내던 무리의 친구들이 찰리를 함부로 대하고 무시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 사귀었던 친구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찰리에게 느끼는 새로운 감정에 혼란스러워합니다. 타라는 달시와 사귀는 것을 SNS에 공개하는데, 용기내어 아웃팅했지만 자신의 선택에 대해 함부로 평가절하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봐 주지 않는 댓글들을 보며 상처를 받습니다. 엘은 타오를 좋아한다는 자신의 마음을 깨닫지만 타오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데다가 자신이 잘못 고백했다가 원래의 친구관계마저 잃을까봐 노심초사 하죠. 


 하지만 이 드라마를 다른 드라마들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좋은 지점이 있었는데, 이렇게 주인공들의 다양한 고민, 특히 성 정체성이 포함된 인생의 위기 속에서 이들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관계들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혹시 칼 로저스를 아시나요? 칼 로저스는 상담심리학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으로, 인간중심치료의 창시자인데요. 인간중심치료는 인본주의적 접근을 택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로 봅니다. 


 칼 로저스는 이러한 인간중심상담을 몸소 실천하며 상담자가 가져야 할 3가지 주요한 핵심조건을 강조했습니다. 첫 번째는 진실성(일치성, congruence)으로 상담자 본인이 가식 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며 상담자의 진솔한 자기개방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공감적 이해(enpathic understanding)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사람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하며 경청해야 한다는 점인데요.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동감"이 아닌 "공감", 즉 상대방과 무조건 동일한 감정으로 100% 동화되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조건으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regard)이 있는데요. 이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본인의 잣대로 판단해가며 듣는 것이 아니라 개인 대 개인으로서 상대방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무비판적으로 상대방을 수용하고 인정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함을 뜻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 주위에 이러한 인간중심치료의 핵심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이들의 감정과 행동을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데요. 찰리에게는 누나와 미술 선생님이, 닉에게는 엄마가 있었죠. 찰리의 누나는 찰리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에 부딪칠 수 있도록 격려를 해 주고, 미술 선생님은 아웃팅을 한 찰리가 친구들 사이에서 겉돌 때 미술실 공간을 내어주며 찰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경청해 줍니다. 

 특히, 닉의 엄마는 정말 인상적이었는데요. 찰리에 대한 감정을 정의내리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닉에게 "찰리는 다른 친구들보다 좀 더 특별한 것 같다"며 닉 조차 먼저 눈치채지 못한 감정을 먼저 들여봐주기도 하고, 닉이 용기내어 찰리와 서로 좋은 감정에 있고 더 알아가는 관계라며 고백할 때, 아들을 안아주며 "말해줘서 고맙고, 이에 대해 엄마에게 말 꺼내기 어려웠다면 미안하다"며 용기내어 말해 준 아들을 격려해줍니다.

 아무리 외국(?)이라지만, 아들이 양성애자이고 현재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다고 고백할 때 이렇게 수용해 주는 부모님이 어디 흔할까요? 만약 닉이 어렵사리 고백했는데, 그러한 감정에 대해 돌봐주지 않고 비난하거나 회유하는 말을 듣게 된다면 닉은 앞으로 부모님에게 비밀을 털어놓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거나 부정적인 자아정체성을 형성할지도 모릅니다. 닉 어머니의 대처는, 정말 완벽한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의 대표적인 태도이며 이러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는 닉은 앞으로도 얼마나 훌륭하고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날지, 기대가 되더군요.


 앞서 언급한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치료는, 이제는 단순히 치료방안 중 하나가 아니라 상담자로서 꼭 가져야 할 기본값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내 주위에도 어쩌면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용기내어 본인의 정체성을 밝힐 때, "진실성"과 "공감적 이해"의 자세로, 특히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의 자세로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한다면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할 수 있는 더욱 풍요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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