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청춘들의 이야기
(※주의!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인기 웹툰인 '청춘블라썸'을 원작으로 하는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청춘블라썸>을 보았습니다. 웹툰에서는 각 계절을 대표하는 시즌마다 주인공들과 주제가 교체되는데요, 이번 드라마에서는 봄을 주제로 하는 웹툰 시즌1, 여름을 주제로 하는 웹툰 시즌2를 하나로 합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청춘물로 새롭게 각색되었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소망'은 자신이 다녔던 고등학교로 교생 실습을 오게 됩니다. 사실 소망은, 고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남학생 '하민'을 떠나보낸 아픈 기억이 있고 이번 교생 실습을 통해 그러한 과거의 아픔을 떨쳐내고자 하죠. 실습을 위해 학교에 오자마자, '하민'과 똑 닮은 남학생 '재민'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알고보니 '재민'은 '하민'의 동생이었고, 하민의 죽음은 동생인 재민에게도 큰 트라우마가 남은 상처였던 만큼 소망과 재민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조심스러워합니다. '소망'은 '재민'에게 자신의 그림 모델을 제안하며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하민'과의 추억을 다시 되새겨보려 합니다.
'재민'과 '보미'는 학교에서 유명한 모범생, 인기폭발의 선남선녀입니다. 모두들 '재민'과 '보미'가 잘 어울린다며 언제 사귈지 궁금해하곤 했죠. 보미도 재민에게 마음이 점차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가장 친한 친구 선희가 재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친구를 잃을 수 없었던 보미는 재민의 고백을 거절하고, 선희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같은 반 친구들 중 가장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진영' 을 좋아한다고 거짓말합니다. 그 말을 듣게 된 '진영'은 보미에게 계약연애를 제안하고, 선희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보미는 진영과 계약연애를 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 드라마는 하민-소망-재민의 이야기와 재민-보미-진영-선희의 이야기로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주인공들이 현재 겪는 갈등과 스트레스 상황에 어떤 식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는지를 중심으로 드라마 캐릭터들을 분석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더라구요. 방어기제는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가 주장한 주요 개념으로,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게 되는 심리적 패턴, 행위 등을 말하는데요. 구체적인 예시를 들며 살펴보겠습니다.
조금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삼각, 아니 사각관계의 주인공 '보미'는 주로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합리화는 상황을 그럴 듯하게 꾸며 자아가 상처받지 않도록 정당화하는 방어기제를 뜻합니다. 보미는 재민에게 끌리지만 친구 선희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숨깁니다. '나는 재민이를 안 좋아해. 나에겐 사랑보다 우정이 더 중요해' 라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선희가 그 말을 믿지 않자 진영을 좋아한다며 상황에 끌어들이기까지 하죠. 사실, 평소에도 보미는 다른 사람들을 너무 배려하는 마음이 지나친 나머지 본인이 뭘 원하는지를 적극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죠.
진영은 보미의 폭탄 발언을 우연히 듣게 된 이후 계속 보미가 신경쓰이는데, 누가 봐도 재민을 좋아하는데 왜 자신을 좋아한다고 한 것일지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보미에게 계약연애를 제안하죠. 진영이 쓰는 방어기제는 행동화입니다. 행동화는 자신의 무의식적인 충동이나 욕구를 평소에는 억제하다가,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과부하의 결과로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실은, 진영은 보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을 엿듣고 나서 계속 신경이 쓰이는데요. 본인이 보미를 좋아하는 마음을 그때부터 이미 알고있었을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진영의 성격이었다면 무심히 듣고 흘리거나 관심을 갖지 않았을 텐데 내심 보미에게 계속 신경이 쓰였던 것을 계약연애를 하자는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옮긴 것이죠.
여기서부터는 조금 무거운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재민의 형 하민은 겉보기에는 엄청난 우등생에 교우관계도 좋고 인기도 많은 완벽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에는 타인에 대한 깊은 불신, 그리고 자식을 도구로 사용하려는 부모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죠. 친구들 앞에서는 서글서글하게 웃다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혼잣말로 불만을 토로하며 스트레스를 풀어내는데요. 어느 날 그러한 이중적인 모습을 소망에게 들키고 맙니다. 하민이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반동형성 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마음, 그리고 이중적이고 역겹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대하거나 더 친절하게 보이려 하고, 모든 것을 열심히 하면서 그러한 마음을 숨기려 하죠.
하민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소망에게 들켰지만 이에 당황하기는커녕 소망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허가받은 미술실을 같이 이용하자며 제안하고, 둘은 비밀친구가 되어 점차 좋은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데요. 소망은 하민을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깊어지고, 하민 또한 소망을 아끼고 좋아하지만 어느 날 하민은 스스로의 생을 마감해 버리고 맙니다. 소망은 그러한 하민의 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을 그만두고 진로 를 바꾸게 되고요. 재민 또한 그렇게 떠나보낸 형에 대한 존재를 주위 사람들에게 굳이 알리지 않고 숨깁니다. 아픈 과거를 가슴 속에 묻고자 하죠. 여기에서 재민은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형에 대한 좋은 추억, 존재에 대해 마음 한 켠에 완전히 묻고 기억하지 않으려 하죠. 그렇게 꾸역꾸역 기억을 저 밑으로 숨겼지만, 어느 날 불현듯 과거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는데요. 형을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 결국은 본인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로 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기에 그렇게 형에 대한 기억을 저 멀리 숨기려고 했었던 것이죠.
그 기억이 떠오른 재민이 학교에 오지 않고 형의 무덤으로 찾아가는데, 소망은 재민이 걱정되어 그를 찾아 나서고 결국 둘은 서로 갖고 있던 하민에 대한 죄책감을 내려놓고 앞으로의 삶을 더 의미있게 살아가기로 다짐합니다. 여기에서 소망은 가장 성숙한 방어기제인 승화를 보여주는데요. 하민의 죽음이라는 큰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여 극복하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재민과 본인 스스로를 용서하고 치유함으로서 더 나은 삶을 위한 원동력으로 승화시키게 되죠. 이제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의 상처까지 보듬을 수 있는 소망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방어기제에는 미성숙한 것도 있고 성숙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미성숙한 방어기제도 자아가 취약할 때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목적 하에서는 유효할 때도 많겠지요. 하지만 미성숙한 방어기제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점차 성숙한 방어기제를 배워가고 사용하려 노력한다면 오늘의 나보다 더욱 탄탄하고 강한 자아와 마음의 방패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