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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DY Dec 16. 2022

있는 그대로 너를 좋아해,<피노키오>(feat.아들러)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를 보고

(※주의!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를 보았습니다. 보기 전부터 워낙 극찬이 많아서 살짝 기대하고 봤는데, 기대하고 봐도 좋더군요. 누구나 잘 아는 동화를 가지고 1차 세계대전의 비극, 무한한 삶과 대조되는 유한한 삶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가치, 부모의 사랑과 접목하여 재해석한 부분이 너무나 신선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뻔한 피노키오를 생각하고 봤다가 감동까지 덤으로 얻고 가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리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다소 어둡고 기괴한 비주얼이 조금 순화된 버전으로 제작되어, 어른도 아이도 누구나 부담 없이 볼 수 있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들러 심리학(개인심리학)의 주요 개념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들러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열등감'과 '우월감' 콤플렉스와 아들러 심리치료에서 주로 사용하는 '직면'과 '격려'까지도요. 이에 대해 영화의 내용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흔히 알려져 있는 피노키오 동화와 달리, 이 영화에서 제페토 할아버지는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아들 카를로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행복이자, 사랑이자, 희망이었죠. 그러나 교회에 떨어진 폭탄으로 아들의 시체조차 찾지 못했고, 빈 무덤에 아들이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솔방울을 묻으며 제페토 할아버지는 삶의 모든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매일 절망으로 가득 차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지내오던 어느 날, 제페토 할아버지는 슬픔에 취해 술을 잔뜩 먹고 아들과 닮은 목각인형을 조각합니다. 그날 밤, 신비한 능력을 지닌 요정이 등장해 빈 목각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죠.


 다음 날, 살아 움직이는 목각인형 피노키오를 발견한 제페토 할아버지는 매우 놀랍니다. 피노키오는 제페토 할아버지를 파파(아버지)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죠. 피노키오를 보는 제페토 할아버지는 카를로가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지지만, 그래도 마지못해 존재를 인정하고 같이 살게 되고요. 그러나 움직이는 목각인형을 본 사람들은 피노키오의 존재에 대해 배척하거나, 이용하려는 생각을 가집니다. 특히 서커스단 주인 볼페 남작은 피노키오의 존재를 알고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피노키오에게 접근하죠. 제페토 할아버지는 카를로가 쓰려던 교과서를 피노키오에게 건네며 학교에 가라고 신신당부하지만, 볼페 남작은 피노키오를 꼬드겨 학교에 가는 대신 서커스 공연을 하게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피노키오에게 계약서 사인까지 받아내죠.


 그 사실을 알게 된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를 되찾으려 실랑이를 벌이고, 그 와중에 트럭에 치인 피노키오는 놀랍게도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잠시나마 망자의 세계에 가게 된 피노키오는, 피노키오는 진짜 소년이 아니기 때문에 죽을 수 없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다시 부활한 피노키오의 모습을 본 마을 시장 포데스타는 그를 군사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품게 되고요.


 여기에서 피노키오는, 아직은 존재 자체로 사랑받기보다는 조건부로 사랑받는(실은 사랑보다는 이용당하는 것에 가깝지만요) 존재입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어릴 때 몸이 많이 약해서 학교에 제대로 갈 수 없었다고 해요. 그런 아들러에게 학교 선생님은 그냥 자퇴나 해서 구두를 만드는 단순한 일을 하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아들러의 아버지는, 선생님의 의견에 반대하며 아들러를 끝까지 믿어주었다고 합니다. 아들러는 그러한 아버지에게 감동을 받아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덕분에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합니다. 누군가 본인을 전적으로 믿어주고 사랑한다면, 없던 힘까지 낼 수 있겠죠. 이게 바로 격려의 힘입니다. 그러나 피노키오는, 당시에는 이러한 격려를 받지 못했습니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온갖 소동을 일으키는 피노키오에게 그만 말실수로 "너는 '짐'(burden)'이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피노키오는 그 말을 듣고 밤새 잠 못 들고 뒤척이다 본인은 카를로를 대체할 수 없으며, 제페토 할아버지에게 짐이 되는 대신 도움이 되고자 서커스단으로 다시 돈을 벌러 떠납니다. 다음 날, 자신의 말실수를 사과하려던 제페토 할아버지는 귀뚜라미로부터 피노키오가 서커스단으로 자진해서 합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시 피노키오를 찾으러 갑니다. 그러나, 이미 서커스단은 떠나버렸습니다.


 여기에서 피노키오는, 아마도 처음으로 열등감을 느꼈을 겁니다. 본인은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에게서 죽은 자식인 '카를로'의 모습만을 찾으려 합니다. 피노키오는 카를로가 아니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피노키오를 처음에 만들게 된 계기가 카를로를 대체하기 위해서였으며, 여러 사건을 일으키는 피노키오에게 '짐(burden)'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죠. 피노키오는 처음엔 카를로라는 존재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자꾸 자신에게서 카를로의 그림자만을 찾으려 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지 않으며 자신을 키우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고민에 빠집니다. 나는 왜 카를로를 대체할 수 없을까, 열등감도 느끼게 되죠. 그렇기에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 즉 돈을 벌어서 아버지에게 보탬이 되겠다는 다소 기특한(?) 생각을 하며 아버지의 곁을 떠납니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서커스단의 행적을 쫓으며 피노키오를 찾아다니고, 피노키오는 볼페 남작의 말에 속아 열심히 공연을 뛰지만, 사실 그에게 남는 것은 없었습니다. 볼페 남작은 벌어들인 돈의 반을 제페토 할아버지에게 보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데요. 실은 전혀 아니었고 그에 대해 항의하는 피노키오를 오히려 협박합니다. 피노키오는 원숭이와 짜고 무솔리니 총통 앞에서의 공연을 완전히 망쳐버리죠. 무솔리니는 독재자라는 칭호에 걸맞게(?) 자신을 모욕하는 공연을 보고 피노키오를 총으로 쏴버립니다. 물론, 피노키오는 다시 살아날 수 있죠. 다시 저 세계로 간 피노키오는, 비록 피노키오는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지만 피노키오가 사랑하는 제페토 할아버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유한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언젠가는 피노키오를 다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됩니다.


 피노키오는 그동안 본인이 무한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저 만족했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서커스단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면 제페토 할아버지가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피노키오를 제외한 다른 생명체들은 유한한 삶을 살 아기며, 그 유한한 삶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아들러 심리치료에서는 '사회적 존재'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공동체 안에서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기여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회적 관심이 건강한 삶의 조건이라고 보았습니다. 피노키오는 비로소 본인뿐만이 아니라 주위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죠.


 다시 되살아난 피노키오는 마을 시장 포데스타와 다른 소년병들과 함께 전쟁 훈련을 받으러 이동하게 됩니다. 포데스타의 아들 켄드윅은 비록 첫 만남에서는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같은 숙소에서 생활하며 점차 친해지게 되죠. 피노키오는 불사신이기 때문에 전쟁에서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지만, 유한한 삶을 사는 켄드윅은 그럴 수 없기에 실은 전쟁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켄드윅은 본인의 속마음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죠.


 다음 날, 피노키오와 켄드윅은 모의 훈련에서 각각 다른 팀에 배정되어 마지막에 승부를 겨루게 되는데요. 둘은 승부를 내기보다는 같이 승리한 것으로 합의하고 훈련을 총괄하는 포데스타 시장에게 보고하러 가죠. 그러나 포데스타 시장은 아들 켄드윅에게 정확하게 승부를 내라며 피노키오를 총으로 쏠 것을 강요하고, 켄드윅은 아버지에게 반항하는데 그 순간 적군의 공습이 시작되어 포데스타는 사망합니다. 피노키오는 폭격으로 인해 멀리 날아가고, 살아남은 켄드윅은 피노키오를 찾습니다.


 여기에서 켄드윅은, 겁쟁이처럼 굴지 말고 전쟁에 출전하라는 아버지의 강요를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켄드윅의 아버지, 포데스타 시장은 아직 어린 나이의 학생들을 전쟁에 내몰면서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켄드윅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서 아버지의 비정상적인 강요에도 묵묵히 따라왔지만, 무조건 승리를 강요하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친구 피노키오에게 상처를 주려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반항합니다. 켄드윅은, 그동안 뭔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저 아버지가 강요하는 가치관에 순종하며 살았는데, 위기의 순간 본인이 원하는 바와 마음을 깨닫고 현실을 "직면"하게 됩니다. 직면은 자신의 잘못된 목표와 신념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자각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아들러 심리치료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기법입니다.


 먼 곳으로 날아간 피노키오는 다시 볼페 남작에게 붙잡혀 불태워질 위기에 처하는데요. 볼페 남작이 피노키오를 망가뜨리려는 과정에서 그를 돕는 원숭이(스파자투라)조차 학대하는 것을 보고, 피노키오는 스파자투라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에 감명한 스파자투라는 피노키오를 구하고 볼페 남작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피노키오와 스파자투라는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에게 삼켜지는데요, 정말 운 좋게도 고래 뱃속에는 피노키오를 찾으러 다니다 고래에게 먼저 삼켜진 제페토 할아버지가 있었죠.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점에 착안하여, 고래 뱃속에서 탈출을 감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피노키오와 제페토 할아버지는 위기에 처합니다. 어뢰의 폭발로 피노키오는 또 망자의 세계로 가게 되고, 세계의 규칙에 따라 일정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자신과 달리 제페토 할아버지의 생명은 유한하므로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다시 현실세계로 가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피노키오는, 무한한 삶을 포기하는 대신 빠르게 현실세계로 가는 것을 택합니다. 늦지 않게 도착하여 목숨을 바쳐 제페토 할아버지를 구한 피노키오는, 이제는 무한한 목숨이 아니기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제야 피노키오의 희생과 사랑을 알게 된 제페토 할아버지는, 그동안 피노키오의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 카를로의 대체품으로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후회합니다.


 다시 나타난 요정이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인간 아이가 되었고 인간 아이는 무한한 존재가 아님을 설명해줍니다. 그 과정에서 귀뚜라미는 요정이 피노키오를 좋은 길로 이끄는 대가로 소원을 하나 들어주기로 한 것 아니었냐며 자신의 소중한 소원을 피노키오가 다시 살아나는 것에 바칩니다. 피노키오는 다시 살아나고, 제페토 할아버지는 그러한 피노키오를 보며 이제는 카를로가 되지도, 다른 누군가가 되지도 말라며 있는 그 자체로 사랑해 줄 것을 약속합니다. 피노키오 또한 본인은 피노키오로 살겠다고 하죠. 원작 동화에서는 요정이 피노키오를 인간 아이로 만들어 주지만, 영화에서는 피노키오가 살아있는 목각인형 자체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것이 차별화된 점이었습니다.


 아들러의 심리치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 중 하나가 '격려'인데요, 격려는 "나는 있는 그대로 너를 좋아한다"는 태도를 반영한다고 합니다. 식물이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인간에게는 격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하죠. 이는 이 영화의 결론과도 일치합니다. 피노키오가 카를로가 되어 사랑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피노키오' 자체로서 제페토 할아버지로부터 사랑받게 되었으니까요. 이러한 격려는 영원을 살아가는 피노키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겁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한 편의 아름다운 어른 동화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피노키오라는 동화 자체의 교훈도 좋았지만, 저는 영화의 결말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어요. 피노키오라는 존재가 대체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구나,라고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 힐링이 필요한 콘텐츠를 찾으신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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