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론으로 보는 내 천직 찾기
(※주의!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을 보았습니다. 원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그동안 작품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원래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주제의식이 상당히 강했고, 그러한 주제를 다루며 냉철하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시종일관 몽글몽글한 감성으로 꿈을 쫓아가는 아이들의 감성이 담겨있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전통을 잇는다는 명분 아래 아직 미성년자인 '마이코'의 삶에 대해 조금은 과하게 미화된 것 같아서 다소 아쉽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줄거리와 캐릭터를 뜯어보면, 상당히 많은 이야깃거리를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극적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며, 흔한 빌런이 있지도 않고, 이야기는 예측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이야기를 통해 "꿈"을 찾고 "우정"을 지켜나가는 과정을 따스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 대해 상담치료의 기법 중 하나인 <현실치료>의 '선택이론'과 연결하여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인공 "키요"와 "스미레"는 '마이코'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교토에 옵니다. '마이코'는 일본 전통문화를 계승하며 춤과 노래, 각종 기예에 능한 '게이샤'가 되기 위한 입문 과정인데요. 마이코가 되기 위해서는 여자기숙사 같은 곳에서 다른 마이코들과 함께 생활하고, 선배 게이샤를 따라다니면서 여러 기술들을 눈과 몸으로 체득하며, 전통 춤과 노래 및 악기 연주 등을 별도로 배워야 합니다. 이 숙소를 총괄하는 사람을 '어머니'(오카상)라고 부르게 되고요. "키요"와 "스미레"는 어릴 때부터 단짝으로 힘든 단체 숙소 생활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키요"에게는 마이코로서의 재능이 없었습니다. 반면 "스미레"는 예쁜 외모뿐만이 아니라 춤과 노래에도 재능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냅니다. 숙소의 어머니는 마이코들에게 기예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통해 "키요"의 상황을 전해 듣고, "키요"에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합니다. 그러나 마침, 마이코 숙소에서 요리를 해 주시던 이모님이 허리를 다쳐 못 나오게 되고 "키요"는 본인이 요리를 해도 되겠느냐며 허락을 구합니다. 알고 보니 "키요"는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소소하지만 맛있게 요리를 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다양한 지역에서 마이코가 되기 위해 교토로 온 다른 마이코들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평범하면서도 왠지 맛있는(손맛이라고 하죠?) 요리를 만들어냅니다. "스미레" 또한 원래 가진 재능에 더해 꾸준하고 성실하게 연습하는 좋은 습관이 있었고, 스미레는 그러한 노력이 빛을 발하여 최단기간으로 연습생을 끝내고 '마이코'로 데뷔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두 소녀, 두 친구는 웃으며 서로를 응원해 줍니다.
여기에서 현실치료의 골격을 이루는 주요한 이론인, '선택이론'(choice theory)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선택이론'은 자신의 삶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론인데요. 사람은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고 이 선택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나오는 동기화의 결과라고 보는 겁니다. 즉, 인간의 욕구(need)로부터 동기가 시작되는 것이죠. 현실치료의 창시자인 윌리엄 글래서(W.Glasser)는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WDEP 상담모형을 발전시켰는데요. 이는 각각 WANT(원하는 것), DOING(행동하는 것), EVALUATING(평가하는 것), PLANNING(계획하는 것)의 약자입니다. 이 상담모형을 응용하여 키요가 어떻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새로이 갖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키요가 아즈사로부터 고향에 돌아갈 것을 권유받았을 때, 키요는 곧바로 절망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했죠. 스스로에게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의 삶을 어떻게 바꾸길 원하나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키요가 원하는 것은 단짝친구 스미레와 함께 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장래희망을 다시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다음 단계인 '행동하는 것'은 '현재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는 것입니다. 키요는 지금까지 스미레와 함께 마이코가 되기 위한 여러 기예 수업을 같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숙소 공동생활을 하면서 요리를 해 주러 오시던 이모님을 도우며 재미를 깨달아가고 있었죠. 세 번째 단계는 '평가하는 것'인데 '지금의 행동이 당신이 원하는 것이 비추어 봤을 때 도움이 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인데요. 키요는 요리를 하며 재미를 느꼈고, 만약 숙소에서 요리를 하게 된다면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스미레와 함께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죠. 마지막으로, '계획하는 것'에는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최종적으로 답해야 하는데요. 키요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숙소에서 요리를 하는 것을 허락받고 요리사의 꿈을 향해 다가가는 계획을 세웁니다.
물론 이 일련의 과정에는 키요가 가진 재능, 키요의 재능을 함께 키워준 할머니, 키요와 함께 꿈을 이루기로 약속한 스미레, 키요의 좋은 심성을 알아봐 준 아즈사 등 여러 사람들의 도움도 있었죠.(타이밍 맞게 허리를 다쳐 요리를 그만둔 이모님도 계십니다만...)
어릴 때,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하면 대부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우선순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는 주변에 친한 친구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고, 부모님의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죠. 물론 그때 정한 장래희망이나 꿈이 그대로 이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어릴 때의 꿈과 지금 현실이 다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구분이 명확지 않으며 정보도 한정되어 있거니와 기껏 얻은 정보도 부정확할 때도 많죠. 점점 성장해 가면서 나 자신과 환경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면서 진정으로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천천히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키요와 스미레는 16세, 중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나이에 마이코를 동경하여 마이코가 되고자 합니다. 즉 '하고 싶은' 일을 기준으로 장래희망을 정한 것이죠. 그러나 두 친구가 가진 선천적인 재능은 달랐고 이 둘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아즈사(마이코 숙소의 어머니)는 키요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계속 키요의 앞날을 걱정했는데요. 진지하게 만남을 갖던 타나베 씨와의 대화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얻습니다.
타나베 씨는 건축사로, 자신 또한 회사에 어떤 신입이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이 일에 안 맞는구나', '적응을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생기가 돌 때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어떤 계기로 변하게 되는지를 묻자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것은 장소, 결국에는 사람들'이라고 답하죠. 즉, 사람마다 생기를 얻는 장소가 따로 있다는 말이고 이는 본인에게 맞는 일과 직업, 장소가 각각 따로 있음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와 현실은 다릅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욱 냉혹할 때가 많죠. 때로는 재능이 있어도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고, 좋은 환경이 주어지고 재능이 있어도 그 일에 재미를 못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민하고 도전하는 과정이 있어야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알아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능이 없다고 바로 좌절하기보다는, WDEP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