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메의 문단속>과 집단트라우마에 대한 고찰
(※주의!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았습니다. <너의 이름은>으로 엄청난 관객을 동원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이번 작품도 좋은 입소문을 내며 흥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예고편만 봐서는 도저히 어떤 내용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작품을 보고 나니 예전 작품들보다는 한결 더 깊어진 주제의식과 개연성 높은 스토리 전개로 꽤 만족스러운 감상을 했습니다.
이 작품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일본'이라는 나라의 역사, 지리적 환경, 국민성 등에 대해 알고 본다면 감독의 연출의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배경지식이 없이도 작품을 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으나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라면 작품을 보기 전이나 후에 관련 정보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너의 이름은>에서도 언급된 동일본 지진에 대한 사전 지식입니다. 동일본 지진은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에게 집단 트라우마를 남긴 자연재해로 일본 역사상 최고 규모의 지진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지리적 태생 자체가 지진이 워낙 자주 일어나는 곳이라 대비가 상당히 잘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재난 사태에 많은 사망자가 나왔고 전례 없는 재산 피해를 겪었다고 합니다. 워낙 큰 사건이었기에 그 당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물론, 간접적으로 그 사건을 접한 사람들에게도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고 하죠. 전작 <너의 이름은>에서는 직접적인 지진 묘사는 없으나 '혜성 충돌'로 마을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는 은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동일본 지진을 떠올리게 하죠.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지진이 언급되는데요. 땅 속에서 꿈틀대는 일종의 에너지 덩어리가 문 밖으로 나오게 되면 큰 지진이 일어나기에, 소타라는 인물은 집안 대대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문을 잠그는 역할을 한다고 언급됩니다. 스즈메는 어쩌다 문을 열게 되고, 에너지를 누르는 역할을 하던 요석을 뽑아버리는데 이러한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느껴 소타의 이러한 여행에 동참하게 됩니다. 작품에서 소타와 스즈메는 도망쳐버린 요석을 찾아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는데 이렇게 돌아다니는 지역이 동일본 지진이 일어난 곳과 거의 일치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 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강의를 들을 일이 있었습니다. 강의에서 언급된 집단 트라우마의 특징 중 하나가, '시공간적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충격적인 사건은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살아남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미디어나 가까운 친인척들의 피해를 통해 간접적으로 재난을 접한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며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특정 사건이 그저 역사책에 한 줄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되고, 오랜 세월이 지나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의미를 계속 획득하게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집단 트라우마는 어쩌면 개인 트라우마보다 극복이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의 역사는 개인적으로 내면에 간직하게 되지만 집단의 역사는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전수되기 때문에 잊히기 어렵고 원치 않게 자꾸 상처가 들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주인공 '스즈메'는 동일본 대지진의 직접적인 피해자입니다. 큰 지진으로 엄마를 잃고, 폐허가 된 고향에서 떠나 이모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죠. 어느 날 스즈메가 꾸게 된 꿈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밤하늘 반짝이는 별빛 아래 폐허가 된 마을, 어린 스즈메는 폐허 속에서 엄마를 찾아 헤맵니다. 그렇게 한참 헤매다 어떤 여자를 만나는데, 그 순간 잠에서 깨게 됩니다. 이 꿈을 꾼 날, 스즈메는 등굣길에 낯선 남자를 만나고 왠지 모를 이끌림에 따라갔다가 우연히 '재난의 문'을 열어버립니다. 앞서 언급된 '소타'라는 인물과 문을 가까스로 닫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뽑힌 요석은 고양이로 변해서 소타를 스즈메의 집에 있던 낡은 의자로 바꿔버립니다. 문을 닫는 것은 재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고 임시방편이며, 요석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놔야 큰 재난을 막을 수 있기에 의자로 변한 소타와 스즈메는 고양이를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되죠.
스즈메와 소타의 짧은 여행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우연히 스즈메와 비슷한 나이의 여고생을 만나 도움을 주고 그 답례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하고요. 또 도망쳐버린 고양이를 찾아 멀리까지 가야 했을 때 히치하이킹을 도와준 아주머니 집에서도 답례로 아이들을 돌보고 가게의 일을 돕게 됩니다.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소타의 집에 방문했을 때, 소타의 친구를 우연히 만나 결정적인 순간에 차를 얻어 타기도 합니다. 원래의 요석을 대신해 본인이 요석이 되어버린 소타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소타의 할아버지도 만나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갑자기 가출(?)한 스즈메를 찾아 도쿄로 올라온 이모와도 동행하게 되고요. 중간에 스즈메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자신의 세계를 넓혀 나갑니다.
스즈메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큰 아픔을 갖고 있지만 그러한 마음을 특별히 표출하거나 의식하며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밝고 건강하게 자랐죠. 그러나 예전에 살던 집에 방문하여 옛날 일기장을 찾아보니 엄마를 잃은 이후 스즈메의 일기장은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습니다. 그만큼 아프고, 슬펐지만 자신의 젊음까지 반납하며 스즈메를 키우겠다고 결심한 이모가 있었기에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며 일상생활을 잘 영위하며 성숙하게 대처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은 이모도 스즈메를 키우면서 결혼 기회가 있었어도 스즈메 때문에 성사되지 않는 등 많은 희생이 있었고, 스즈메 또한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이모의 이런 마음을 '무겁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의 도움으로) 이러한 속마음을 서로 솔직하게 말하며 크게 다투기도 하지만 그 솔직한 마음으로 인해 금방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류를 위해 희생한 소타를 다시 구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하며, 저 세계로 갈 수 있는 뒷문을 스스로 발견하고 소타를 구해냅니다.
초반에 스즈메가 꾼 꿈은 영화 결말쯤 가게 되면 비로소 어떤 의미인지 밝혀지는데요. 그것은 사실 꿈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엄마를 찾아 지진으로 황폐화된 폐허를 방황하던 작고 약한 어린아이. 이모는 폐허 속에서 스즈메를 찾아내어 엄마를 대신하여 키워주겠다고 결심합니다. 꿈속 장면에서 어린 스즈메가 만났던 어떤 여자는 바로 지금의 '스즈메' 자신이었습니다. 스즈메는 울고 있는 어린 스즈메에게 '나는 스즈메의 내일'이라고 밝히며, 희망을 전해줍니다.
작품을 다 보고 나서 조금 먹먹해졌습니다. 결국, 나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바로 강해진 '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강의에서, 집단 트라우마가 반드시 인생에 해악만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유'라는 나름의 긍정적 기능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큰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들에게 온기 어린 정서적 지지를 해 주는 주변인들도 많이 생기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던 여러 다양한 생각들에 대해 인지적 보완과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 또한 거칠 수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통합하는 기능도 있다고 하는데요. 이는 현재의 스즈메가 고통받고 있던 어린 스즈메에게 전해 준 단어인 '나는 너의 내일', 즉, 슬픔과 고난 또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단단한 스즈메가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며 <너의 이름은>보다 한 단계 더 깊어진 주제의식을 느꼈고,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집단의 역사로 확장시켜 그 주제의식을 나름대로 개연성 있게 잘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이것저것 넘쳐나는 많은 정보보다 좋은 작품 한 편이 더욱 뇌리에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