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X8회기 진행하는 집단상담과 2일X8시간 진행하는 집단상담의 차이
대학원 수업 중 '집단상담'이 있었다. 아는 선배는 물론, 주변 모든 사람들이 이 수업은 정말 강력 추천한다고 해서 알아보니 보통 정원에 크게 제한을 두지 않는 일반적인 대학원 수업과 달리 실제 집단상담을 체험하는 시간이 있어서 정원이 15명밖에 되지 않아 경쟁률이 매우 치열하다고 했다. 정원이 있다고 하니 수강과목 중 가장 먼저 신청하긴 했는데, 나중에 수업을 같이 듣게 된 사람들의 자기소개를 들어보니 '3번째 수강 실패했는데 드디어 참석하게 되었다', '수강신청 날 알람맞춰 두고 신청했다' 등 이 수업을 듣기 위해 열성적으로 준비하신 것 같아서 약간은 놀랐다.
이 수업의 묘미는 총 16주 중 앞선 8주는 이론 수업과 집단상담 프로그램 발표로 진행하고, 뒤에 8주를 교수님께서 직접 집단리더로 참여하는 비구조화 집단상담을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수강신청을 한 것이라 모두 배경이 다르고, 관심사가 달라서 집단상담 프로그램의 대상과 주제가 다르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교수님은 역시 집단상담의 대가 답게 프로그램의 개선점에 대해 촌철살인의 피드백을 해 주셨다. 교수님 말고도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 모두 피드백을 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좋았는데, 알고보니 이러한 피드백을 힘겨워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신나서 매번 프로그램 발표자들에게 이것저것 피드백을 하곤 했는데, 집단상담을 시작하고 나서 이 부분이 크게 화두에 올랐었고 나는 괜시리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2시간씩, 8주간 진행된 비구조화 집단상담은 내 감정 상태로만 따지면 롤러코스터 타기의 연속이었다. 집단상담이라는 개념도 안 지 얼마 안된 데다가 참여도 처음 하는거라서 뭔가 엄청난 기대가 있었나 보다. 한 회기를 마친 다음에는 집단상담 소감문을 과제로 제출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소감문만 읽어봐도 미친년 널 뛰듯 어느 회기는 최악이고, 어느 회기는 좀 괜찮아졌다가도 어느 회기는 좋았다가 나빴다가 감정이 오락가락 했다. 사실 첫 회기를 마치자마자 '이게 뭐지?' 하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 자기개방을 많이 할수록 얻어가는 것이 많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서두른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 것 같았다.
오랜 사회생활로 단련된 나의 자아는, 마가 뜨는 것을 잘 참지 못한다. 뭔가 뻘쭘하거나 조용해지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나설 때도 많은 편이다. 집단상담 첫 회기에 자꾸만 마가 뜨는 것에 대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말하면 어떻게든 피드백하려고 노력했고, 이야기가 뚝 끊길 무렵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환기도 시켰다. 그러나 내가 집단리더에개 들은 피드백은 "너는 재미가 없다" 여서 굉장히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몇 회기에 걸쳐 마음을 닫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맥락을 간단하게 말 하자면, 누군가 어려운 개인사를 꺼냈고 나 또한 유사한 경험이 있어 그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는데 나의 이야기에는 감정표현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 지루하고 집중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했다. 그때는 내 나름대로 용기내어 자기개방을 하고 있었던 순간이어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그 이후부터 집단리더에게 드는 감정이 좋을 수가 없어서 나머지 회차에는 이전만큼 열성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물론, 뒤로 갈수록 집단상담의 분위기에 익숙해졌고 참여자들과도 친해져서 솔직하지만 상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피드백들이 자유롭게 오고 갔지만, 아무래도 처음의 피드백이 너무 강력해서 뭔가 찜찜하게 회기를 마쳤던 것 같다. 회기를 마칠 무렵에 내가 자진해서 참여자들을 메신저 방에 모으고 뒷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왠지 모르게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적은 것은 아마 내 마음이 아직 낫지 않아서일 것이다.
최근, 다른 집단상담에 참여할 일이 있었다. 앞서 진행했던 수업은 특별한 이론적 배경은 없이 2시간씩 8주간 진행한 비구조화 집단이었지만, 이번 집단상담은 정신분석적 이론을 바탕으로 7~8시간씩 2일에 걸쳐 진행한 비구조화 집단상담이었다. 집단리더로 참여한 교수님은 예전에 공개사례발표에서 수퍼바이저로 참여하신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수퍼비전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서 수퍼비전을 받는 사람이었었다면 집에 가서 울었거나 밤새 이불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드백 자체는 하나 하나 너무 도움이 되고 머릿속에 딱 꽂힐 만큼 정리를 잘 해 주셔서 언젠가는 이 분께 수퍼비전을 받아보고 싶다, 는 생각을 했었다. (공개적으로 받는 것은 좀 생각해 볼 것 같다...) 그래서 이미 나는 이 집단상담에 참여하기 전부터 순살치킨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이틀간 진행된 집단상담은, 정신적으로,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상당했지만 상당히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좋은 피드백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내가 믿어온 것을 송두리째 부정해야 하는 수준의 피드백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마음가짐이 달랐다. 나는 여기서 지지와 위로를 받으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왜 이럴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에 대해 집단지성을 통해 해결하고 싶었다.
저번 집단상담에서처럼 이번에도 나는 참지 못하고 상당히 앞선 회기에(쉬는 시간을 기준으로 대략 시간을 나눴을 때, 두 번째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자기개방을 시도했고, 저번 집단상담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주제를 다시 꺼냈다. 많은 사람들이 피드백을 해 줬고 때로는 공감, 때로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세밀히 물어보시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피드백이 오가는 도중, 어떤 분이 그렇게 심각해보이지 않는데 내 스스로가 그 문제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말을 하셨다. 그 말을 계기로, 내가 본인의 것이 아닌 감정까지 끌어안고 포함해서 그러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집단리더 교수님은 모든 회기에 자기개방을 한 사람에 대해 다른 집단구성원들의 피드백을 다 듣고 나서, 비로소 교수님의 통찰을 짧고 임팩트 있게 제시해 주셨다. 나에 대해서도, 내가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감싸고 보호하려는 대상이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일 수도 있음을 지적해 주셨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주제였고, 지금까지의 내 분노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계가 흔들릴 것을 각오하고 진실을 파헤치려 다가가야 한다. 아직은 그럴 용기가 없고 시기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시도해보지는 못했으나 내 마음 속 작은 씨앗이 새롭게 하나 심겨져 있는 느낌이다.
어떤 사람의 인생에 대해 논하자면 1~2시간은 매우 부족하다. 그러나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내가,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이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너무나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보통은 내 문제를 털어놓고, 피드백을 듣고 나면 내가 주인공이 아닌 회기에는 지루해하거나 참여가 적어질 수 있는데 이번 집단상담 때는 내 스스로가 모든 회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단상담이 모두 끝난 다음에, 집단구성원 중 한 분이 내가 적절한 타이밍에 피드백을 해 줘서 좋았고 피드백이 너무 무겁지도, 상처되지도 않게 가벼우면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 것 같다며 칭찬을 해 주셨다. 나는 나에게 이야기해준 그 분이야말로 어쩜 저렇게 말을 예쁘게, 그리고 도움될 만큼 솔직하게 하실까, 하면서 감탄하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이 집단에서 크진 않아도 나름 도움이 되었고, 그 노력을 알아봐준 것 같아서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었다.
최근 경험한 두 개의 집단상담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첫 집단상담에서는 아무래도 처음 참여하는 것이다 보니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보다 의욕만 앞서서, 노력한 것에 비해 뭔가 나에게 남겨진 것이 없다고 느꼈다. 이는 2시간씩 쪼개서 하는 방식에서 오는 차이일 수도 있고, 집단상담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 수도 있으며, 초반에 가졌던 의욕이 뒤로 갈수록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교수님도, 구성원도 다 좋았지만 첫 피드백에서 받은 충격과 상처가 낫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 데 있는 것 같다.
그에 비해 두 번째 집단상담은, 오히려 '이 집단상담이 잘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했는데 많은 것을 얻어왔다고 생각한다. 이틀 동안 7~8시간씩 집중적으로 했기 때문에 자기개방을 한 사람마다 충분히 조명을 받고, 피드백을 해 줄 수 있었다. 또한 이전보다 구구절절히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느껴지는 감정, 그리고 제일 해결하고 싶은 것 위주로 짧게 설명했던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듣기에 좀 더 편안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구성원들과 집단리더 교수님의 솔직한 피드백이 기분나쁘기보다는 정말 저 사람들은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이해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내가 그동안 외면하고 들춰보지 않으려던 문제의 이면까지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최소한 이 문제에는 한쪽 면만 있는 게 아니라 뒷면도 있구나, 라고 인지하게 된 것 같다.
두 집단상담 모두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었고, 각각의 장단점도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집단상담에서 좀 더 편안했던 것을 보니 나 스스로도 집단상담에 참여하며 조금이나마 성장했던 것은 아닐까, 하며 살짝은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그동안 나는 이 길이 맞을까, 하며 고민한 적이 많았는데 아직도 멀긴 했지만 조금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아서 기분 좋았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