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슬픈 고백

마음의 감기

아버지의 죽음, 마음과 몸의 감기가 동시에 왔다

by KEIDY

그날은 몸 상태가 너무도 좋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 상태로는 회사에서 내내 기침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너무나도 큰 피로감이 엄습하여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회의가 3개나 잡혀있었기에 쉴 수는 없어 살짝 짜증이 났다.


인사팀에 양해를 구하고 근무를 재택으로 돌린 후 아이를 등원시키고 수액을 맞으러 갔다. 뭐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몸 상태가 나아지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액을 맞고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회의 3개를 줌으로 연결해 겨우겨우 끝냈다. 그래도 오늘은 엄마가 아이를 하원시켜주셔서 조금은 다행이었다. 나도 한숨 돌리고 저녁식사를 한 후, 집에 갈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아빠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는 지금 서울에 있어서 병원으로 가면 저녁이나 밤쯤에 도착할 것 같으니 다음날 일찍 찾아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가시는 엄마를 배웅하며 나는 농담으로 나도 이렇게 아픈데 아빠가 설마 지금 돌아가시겠어, 그러면 안 되지, 말했다.


그날 밤 계속되는 기침과 몸살기운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계속 뒤척이다 물도 마셔보고, 누워있으면 코가 막히니 앉아있기도 하며 갑갑한 상황에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새벽 3시경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설마, 이시간에 전화를 하는 거라면 분명 위급상황일 테다. 전화를 받으니 아빠가 방금 돌아가셔서 엄마랑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일단 엄마와 동생이 가서 상황을 확인할테니 또 연락하자는 말을 남기고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몰려오는 급격한 피로함, 긴장이 탁 풀렸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지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내 상태에 대한 짜증과 서러움이 밀려왔다. 동시에, 하필 왜 이 시기인가, 하며 살짝 억울함도 들었다.


남편을 깨워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 때문에 당장 이동할 수 없으니 우선 내일 아침 병원으로 가기로 하고 할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장례식장 예약, 인사팀 연락, 부고장 돌리기, 경조용품 등 회사지원 체크하기 등등… 몸이 아픈 와중에도 이걸 챙기고 있는 내 자신이 놀랍기도, 상황이 서럽기도 했다. 의외로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눈물이 터져나오지 않았는데 사실은 바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웠을 텐데, 오히려 후련하시지 않겠냐는 생각, 그리고 항생제내성균으로 요양병원을 가셨을 때부터 이 순간을 각오했었구나,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으며 그 와중에도 하필, 왜 지금일까, 하는 생각 또한 떨치지 못했다.


결국 그날 밤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고, 장례식장에 갈 채비를 했다. 감정이 마비된 것 같다가도 몸이 말을 안 들을 때면 불쑥불쑥 서러움이 올라왔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감기에 걸린 기분이었다. 감기몸살에 걸리면 가만히 있어도 오소소, 근육이 떨리는 것처럼 이따금씩 마음 또한 불안정하게 떨렸다. 아버지의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했다고 생각했는데 우울과 피곤함에서 회복되기까지 한달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동시에 몸과 마음이 아픈 상황을 한꺼번에 겪는 것이 두 번 아픈 것보다 나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동안 많이 미워하고, 나를 속상하게 하고 섭섭하게 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의외로 많은 심리적 소진을 가져왔다. 호불호를 떠나, 가까운 사람의 상실은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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