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아이보다 엄마가 더 불안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벌써 두 번째 기관에 간다. 첫 번째는 만 1세부터 3년간 다닌 어린이집이고, 올해 3월부터는 유치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영어유치원을 알아보고 선착순 입금도 여러 번 성공했으나 혹시 몰라 넣어볼까 했던 사립유치원에 덜컥 붙어서, 게다가 합격한 유치원이 나름 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유치원이라는 얘기에 이 곳으로 꼭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유치원을 보내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아직 엄마 눈에는 어리고 미숙해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매일매일 고민에 빠졌다. 특히 배변훈련이 지지부진해서 거의 40개월이 넘어서야 겨우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소변은 쉽게 끝낸 반면 대변은 거의 어린이집 수료 기간이 다 되어서야 끝낼 수 있어 이 또한 새로운 기관에 보내도 되는지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요소 중 하나였다. 게다가 집에서는 매일 밥을 거의 떠먹여주는 수준으로 줘야 한 그릇을 비우기에, 유치원에 가서는 제대로 밥을 먹을지도 의문이었다. 여러 고민 중 가장 걱정된 것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우리 부부가 퇴근이 늦지 않는 편이라고는 해도 집에 와서 아이를 씻기고, 놀아주고, 집안을 치우다 보면 거의 밤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드는 것이 일상이어서 늦게 자는만큼 아이는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했다. 지금까지는 회사의 자율출퇴근제도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는데, 이제 유치원에 가게 되면 이와는 상관 없이 정해진 시간에 셔틀을 태워 보내야 하기에 지금처럼 아이의 아침 투정을 다 받아주기에는 촉박해진다. 어떻게 하면 일찍 재울 수 있을까, 쉽지 않아보이는 일이었다.
고민을 시작한 이후로 해결된 고민 반, 해결되지 않은 고민 반을 끌어안고 있다 보니 어느덧 훌쩍 시간이 지나 3월이 되었다. 당연히 삼일절 휴일 이후인 3월 2일에 유치원을 보내는 줄 알았는데, 왠걸, 입학식은 3월 6일이란다. 유치원에서는 2일, 3일도 아이를 보낼 수 있다고는 안내를 했지만 정규 과정이 아닌 방과후 보육과정이라 이 기관에 처음 가는 아이에게는 두렵고 낯선 이미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아 일단은 그 이틀은 어떻게든 막아보기로 했다. 고민에 빠진 나를 보더니, 친정엄마가 이틀 간 아이를 친정집으로 보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솔깃한 제안이긴 한데...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엄마 또는 아빠 둘 중 한 명이 집을 비운 적은 있었지만 둘 다 없이 다른 공간에서 자는 것은 처음이었다.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정말 괜찮을지 머릿속에서 여러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으나, 현실적으로 그 주에는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 제일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 3월 1일은 휴일이니 그 날 친정에 미리 가서 시간을 보냈고, 친정에야 자주 놀러왔었기 때문에 아이는 아주 신나게 방문을 열어젖히며 집 안을 누볐다.
친정집에 오기 며칠 전부터 아이에게는 수시로 "엄마 아빠가 없이 할머니집에서 이틀밤을 보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줬고, 그 때마다 아이는 알아듣는 듯 못알아듣는 듯 애매모호하게 답하곤 했다. 어떨 때는 알겠다며 씩씩하게 대답할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싫다고, 엄마랑 자면 안되냐고 물어볼 때도 있었다. 일단 아이가 이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지에 대한 문제보다는 당장 기술적으로 그날 밤에 어떻게 작별인사를 하느냐가 더 걱정이 되었다.
실은, 친정집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이미 나는 회사 컴퓨터를 챙겨두었고 어디서든 출근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 둔 상태였다. 아이가 울거나 떼를 부리면 남아있어야 할 것 같고, 그 다음날 친정집에서 출발하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짐을 챙겨온 나를 보고 친정엄마는 "아이보다 니가 더 불안한 것 아니냐"며 일침을 놓으셨다. 헛,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지금까지 '내가 없으면 아이가 불안하지 않을까'하며 전전긍긍했는데 막상 친정집에 오니 아이는 신났고 나만 아이를 두고 어떻게 떠날지 싶어 호들갑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날 밤, 나는 아이를 두고 집에 갈 수 없었고 엄마가 깔아 준 이불 위에서 아이를 품에 안으며 잠이 들었다. 아이는 잠자리에 같이 눕자마자 엄마가 안아달라며 칭얼거렸지만 막상 잠이 들기 직전에는 나의 품을 불편해하며 스르륵 떨어져 나갔다. 언젠간 아이도 내가 없이 잠이 들 수 있겠지,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서운했다. 분리불안은 정작 아이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엄마의 말이 더욱 사무치게 공감되는 밤이었다.
아이는 걱정과는 달리 처음 타는 유치원 셔틀에도 씩씩하게 잘 적응했다. 물론, 타기 전에는 꼭 안아달라고 조르곤 한다. 이 정도면 귀여운 수준 아닐까. 오히려 유치원을 다니며 낮잠시간이 없어지다 보니 잠도 일찍 자고, 일찍 자니 아침에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알아서 깬다. 유치원에서 점심을 얼마나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원해서 집에 오면 간식을 먼저 찾고 저녁도 스스로 달라고 해서 싹싹 비운다. 내가 걱정하던 것보다 아이는 그새 한뼘, 쑤욱 자랐나 보다. 하원을 직접 시킨 어제, 셔틀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묻지도 않았는데 "오늘 너무 재밌었다"고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니 그동안 나의 쓸데없는 불안이 아이에게 투사된 것 같아서 미안했다. 엄마는, 이제 불안해하지 않고 우리 아이를 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