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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DY Feb 10. 2023

비상, 비상! 육아 비상사태 발생!

양가 부모님이 일이 있을 때, 워킹맘에게는 참사가 일어난다...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후부터, 복직과 동시에 양가 부모님이 번갈아서 아이의 하원을 담당해주고 계신다. 아이 1명으로는 국공립 어린이집 선발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아이가 태어나고 거의 3일 내에 바로 출생신고를 하고 대기를 걸었지만 첫 해에 입소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가 부모님께 1년만 혹시 집에서 아이를 봐주실 수 있는지를 여쭙고 대비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마침 운 좋게 국공립 어린이집에 입소가 확정되어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행복했다. 그 이후, 염치없게도 부모님들의 아이 돌봄은 4살이 된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다.


 아이가 2살쯤 되었을 때 갑자기 아빠의 건강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서 엄마가 아이를 봐주러 오실 수 없게 되었고, 시부모님께 5일 내내 아이를 맡기기에는 죄송해서 이모님을 고용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모님 집이 우리 집과 너무 가까웠고(같은 아파트 단지에, 무려 5분 거리!) 걱정과는 달리 아이도 나름 잘 적응한 것 같았으나 한 달 만에 이모님이 그만두셨다. 아이가 다쳐서 이마를 꿰맨 적이 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이를 맡기기엔 너무 죄송스러워서 며칠 쉬시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모님들마다 다들 사정은 다르겠지만, 대부분 이모님들은 안정적인 수입을 원하신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후 시부모님께서 주 3~4일 정도를 봐주시기로 했고 나머지 1일은 남편의 재택이나 나의 연차 등으로 근근이 메꾸며 또 1년을 버텼다. 이러한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서 5살까지는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려 했으나, 아이가 갑자기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 또 유치원을 알아보느라 작년 4분기는 온통 설명회와 신청 접수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던 와중에 괜찮은 사립 유치원에 당첨되었고, 아침에 셔틀버스를 태워 보내는 것이 살짝 걱정은 되었으나 어떻게든 적응하겠지 라는 생각에 조금은 긴장의 끈을 놓았다.


 그러나 갑자기 이번엔 시아버님의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 작년 말부터 건강검진에서 뭔가 이상한 조짐이 보이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아버님의 건강도 건강인데, 갑자기 아이의 하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되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게다가 아빠 건강은 더욱 안 좋아져서, 엄마가 더 이상 혼자 힘으로 돌볼 수 없는 상황이라 요양병원에 가시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의 건강문제가 터지고 나니, 내 멘탈도 같이 터졌고 엄청난 걱정이 몰려왔다. 그러나 일단 급한 불은 꺼야겠기에 엄마에게 S.O.S를 쳤고, 아버님 수술 일정이 아빠의 요양병원 입원 이후라서 엄마가 오실 수 있게 되어 또 한시름을 덜었다.


 그런데 아버님이 수술하는 날 전후로 엄마가 계속 와주시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입원해 있는 아빠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요양병원에서 응급실로 가야 할 것 같다는 전화가 토요일 저녁에 걸려왔고, 엄마는 급히 응급실로 가셨다. 아빠가 그대로 대학병원에 입원할 경우 엄마는 보호자로서 계속 같이 계셔야 한다. 남편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스케줄을 논의했는데, 둘 다 월요일 오후에 중요한 회의가 잡혀 있었고 양쪽 다 회의를 취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동생에게 S.O.S를 쳐 볼까? 했으나 동생 또한 마침 월요일에 중요한 건이 있어 야근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에게 부탁할까? 했으나 남의 집에서 아이가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괜히 사이가 어색해지겠다 싶어서 대안에서 지웠다. 그냥 그날만 어린이집에 양해를 구하고 늦게 데리러 가겠다고 하자, 로 결론을 모았다.


 거의 3년간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늦어도 5시 전까지는 아이를 항상 하원시켜 왔는데, 이렇게까지 비상상황으로 몰린 적은 처음이라 처음으로 늦은 하원이 될 것 같아서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어린이집 알림장에 월요일만 늦게 데리러 갈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는 내용을 예약전송으로 걸어두었다. 일요일 밤, 온갖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출근준비를 위해 일어나서 핸드폰을 보니 엄마로부터 새벽에 문자가 와 있었다. 아빠의 상태가 호전돼서 다시 요양병원으로 가셨고, 응급상황은 면했다는 내용이었다. 밤새 내내 걱정하며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너무 다행이다, 생각하며 긴장이 탁 풀렸다. 엄마는 아이 픽업을 해 주시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순간, 아이를 키우기 위해 내 부모님, 그리고 남편의 부모님까지 다 같이 너무나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동안은 어느 정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비상상황에 놓이고 나서야 그 고마움이 더욱 느껴지는 것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당연히" 손주를 돌볼 의무는 없는데 그동안 별말 없이, 아니 먼저 나서서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해 주시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맙고 죄송스러운 일임을 크게 깨달았다. 부모님들의 희생으로 아이를 키우는 삶. 이 고마움은 평생 갚아도 모자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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