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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IDY Jan 10. 2023

사랑의 배터리

휴가 없이 주말 두 탕을 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아이의 즐거움 때문이다

 아이를 갖기 전에 주말은 휴식이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는 날이었다. 그러나 워킹맘에게 주말은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기쁨이자 때로는 쉴틈없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고난의 시간이기도 하다. 평일에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미안함으로 가능한 주말 중 하루 정도는 특별한 활동을 하려 한다. 봄이나 가을처럼 기온이 적당할 때는 나들이를 가거나 하다못해 놀이터라도 데리고 가서 놀아주려 하고, 여름이나 겨울에는 날씨 특성 상 실내활동 위주로 알아보곤 한다. 


 이번 주 주말은 평소보다 조금 힘들었다. 원래 언니네 조카들과 함께 키즈풀을 대관하기로 해서 이미 일요일 일정을 잡아둔 참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전 회사 동료 가족과 함께 눈썰매장을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내향적인 성향에 가까운 남편은 인간관계가 넓지는 않아서, 이러한 권유를 받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아서 바로 거절하기엔 좀 미안했다. 보통 주말 일정은 내가 주도하여 장소를 찾고 주변 사람들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하거나 제안받는 편인데, 마침 그 회사 동료 가족은 나도 잘 아는 분이어서 살짝 고민이 되었다. 두 일정 다 소화하기엔 좀 빡빡하지만, 매번 있는 일도 아니고 제안해주신 전 회사 동료분의 성의도 있고 하여 큰 결심을 하고 수락했다. 


 심지어 썰매장은 강원도 홍천에 있는 곳이어서 토요일날 가기엔 길이 막히고 애매할 것 같았다. 남편과 시간을 맞춰 전날인 금요일 오후에 출발, 도착하여 짐을 풀자마자 저녁을 바로 먹었다. 세 가족이 모였기에 복작복작했고, 이제 겨우 유치원에 갈 예정인 우리 아이를 제외하곤 다들 초등학생 아이들로 나이차가 꽤 나서 같이 놀아달라고 하기엔 민망했다. 아이는 개의치 않고 누나들을 따라다녔지만... 다들 오랜만에 모이는 자리라 저녁엔 술을 과하게 마셨고, 그 다음날 다들 숙취에 머리가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창 밖을 보니, 새하얀 눈이 밤새 소복히 쌓여있었다. 눈썰매장을 가기에는 최적의 눈 상태였지만, 하필이면 숙소가 눈썰매장이랑은 조금 떨어진 곳에 독채로 있는 곳이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국에서 약을 사오려고 눈썰매장이 있는 곳 근처로 차를 몰고 다녀온 분이 곤란한 표정으로 지금 눈썰매장 가는 길에 차가 꽉 막혀있고, 평소면 5분이면 다녀올 이 짧은 거리를 왔다갔다 하는 데도 1시간이 걸렸단다. 


 빠르게 눈썰매장을 포기하고,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니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어 여기에서 놀리면 되겠다 싶었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눈에서 뒹굴뒹굴 한 시간 정도 놀리니 아이 이마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오는 길, 아이는 엄마 아빠 얼굴을 번갈아 보며 "엄마, 아빠, 근데 썰매는요?" 묻는다. 아차, 여기까지 올 때 눈썰매장에 간다고 실컷 공지해 뒀는데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다음에는 꼭 눈썰매장에 데리고 가야지, 생각하며 토요일 일정을 마무리한다.


 일요일은 키즈풀을 대관해서 조카들과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전 날 빡세게 논 덕분에 몸의 근육이 뭉쳐서 아우성이라 느지막히 일어나고 싶은데... 아이는 아직 아침 7시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일어나 나를 깨운다. 움직일 때마다 허리가 쑤셔서 파스를 붙이고, 아이의 아침밥을 챙겨준다. 이따 수영장에 갈 짐들과 간식을 차곡차곡 챙기고, 어질러진 거실과 아이방을 후다닥 치우니 꽤 시간이 흘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간이 넉넉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저것 하다보니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이른 점심을 먹이고 서둘러 차를 탄다.


 차가 막힐 수도 있을 것 같아 조금 여유있게 출발했더니, 정말 여유있게 도착했다. 아이는 거의 도착 시간을 20여분밖에 안 남기고 잠들어버린다. 키즈풀 건물에 우선 차를 대고, 대관시간까지 30~40분이 남아 커피를 사서 차 안에서 마신다. 카페인을 충전했더니 조금 살 것 같다. 아이를 좀 더 재우고, 시간 맞추어 조심스레 안고 건물로 올라간다.


 들어가자마자 아이는 바로 깼다. 요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대관을 하는 공간에 작은 수영장과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어 반나절도 모자를 만큼 시설이 만족스럽다. 언니네 가족도 금방 도착해서 수영복으로 갈아입히고 애들을 놀린다. 수영장이 크지는 않아서 모든 보호자가 들어가기엔 비좁아서 엄마와 아빠 중 누구랑 놀고싶냐고 물었더니, 물어보는 의미도 없이 엄마 당첨. 허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따뜻한 온수 풀에서 둥둥 떠다니니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 한 시간 조금 넘게 놀고 나니 배가 고파서 음식을 주문했다. 나도 씻고 아이도 씻겨야 해서 진땀을 좀 뺐는데, 언니가 도와줘서 다행이었다. 주문한 음식을 먹고 여러 장난감으로 또 한번 놀고 나니 대관한 4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집에 오는 길도 막히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고, 아이는 수영도 하고 실컷 놀고 왔더니 피곤한지 금새 잠들었다. 


 이틀 동안 실제로 나를 위한 시간은 전혀 없어서(이건 남편도 마찬가지) 지치고 힘들었지만, 덕분에 주말 이틀을 온전히 아이를 위한 시간으로 보낼 수 있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마치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 깜박거리듯 지금 내 몸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힘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진 배터리가 아이를 위한 '사랑의 배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 없는 힘도 생긴다고 하지 않던가. 이렇게 이틀을 완전히 아이에게 몰두하는 경험 또한 소중하고 값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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