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IDY Jan 03. 2023

첫 지하철 나들이 (A.K.A. 지옥철 나들이)

아이 3명과 어른 3명의 외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전시회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딱 지금 우리 아이 나이라면, 정말 좋아하겠다는 생각에 검색을 했는데 주차가 어려워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는 공지가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 본 적은 있는데 겨우 3~4정거장 왔다갔다 한 게 전부라,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도전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마침 50% 할인도 하고 있어서 우리 아이와 동갑내기로 만 4세 조카와 아직 만 2세가 채 되지 못한 조카, 그리고 언니, 엄마와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다. 


 '아이 3명과 어른 3명의 대중교통으로 전시회 가기' 미션을 위해 전날에는 친정에 미리 모여 하룻밤 잘 계획도 세웠다. 각자 따로 출발하면 도착시간이 제각각일 것 같아서 동시에 출발하는 것이 낫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가능한 빨리 출발하는 것을 목표로 아이들을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재웠다. 그 다음날 아침, 예상했던 기상시간보다 다들 일찍 일어나 생각보다 빨리 출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아이 3명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나니 준비시간이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려 예상출발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일단 전시회를 가려면 지하철역까지 마을버스로 대여섯 정거장을 가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17개역을 가서 도보로 5분 정도 가야 한다. 우선 마을버스를 타는 것부터 고난의 시작이었다. 만 4세 아이들은 이제는 그럭저럭 걸어갈 수 있다고 쳐도, 만 2세가 안된 조카는 유모차에 태워가야 했다. 알다시피, 유모차는 매우 기동성이 떨어지는데 버스를 태우려면 한 명은 유모차를 접고 다른 한 명은 아이를 안고 있어야 되서 어른 한 명이 4살짜리 아이 두명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4살 조카가 얌전한 여자아이였기에 망정이지 우리 아들 같은 남자애 2명이었다면 헐레벌떡 잡으러 뛰어다녔을 것이다. 의자에 앉아도 자꾸만 앞으로 튀어나오려는 아들을 계속 손으로 제지하면서 겨우 버스에서 하차했다.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내려갔는데, 지하철 도착을 알리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자마자 미친듯이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재빨리 버튼을 눌러 언니와 유모차를 태우고 아이 두명을 안아 계단을 헐레벌떡 뛰어내려갔다. 평일 오전 10시 30분. 다행히도 지하철엔 사람이 많이 없었고 갈아탈 필요도 없어서 한시름 놓고 아이들을 앉혔다. 물론, 가는 길 내내 평안했던 것은 아니다. 한창 호기심 많고 지루함을 못 견디는 우리 아들은 지하철이 역에 설 때마다 지하철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내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2살 조카는 처음에는 얌전하게 잘 가는가 싶더니, 유모차에 앉아있는 게 지루한지 울먹울먹 울음을 터뜨리려고 해서 가방을 뒤져 과자를 겨우 발견해 손에 쥐어주었다. 


 약 40분간 지하철을 타고 내리니 체력이 급 방전되었고, 전시회를 보기 전에 재정비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근처 카페를 찾아 아이들도 간식을 먹이고, 어른들도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이제는 정말 전시회를 보러 갈 시간. 전시회는 아이들의 수준에 딱이었고 너무나 즐거워해서 다행이었다. 전시회를 나오는 순간까지 아이들은 또 전시회에 오고 싶다며 노래를 부를 정도. 그렇게 전시회를 다 보고 나니 오후 1시가 되었고, 아이들의 호불호가 없을 만한 근처 한식당을 찾아 아기의자 유무를 확인하고 들어갔다. 


 아뿔싸,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먹고싶은 대로 주문하다 보니 철판에 고기를 구워야 했다. 자꾸만 들썩거리는 아이를 앉히랴, 고기를 굽느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하필 양념갈비를 시켜서, 자꾸만 의자에서 빠져나가는 아이를 붙들고 나면 고기 한 쪽은 시커멓게 타 있었다. 밥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헤깔릴 무렵, 그래도 아이들의 밥그릇이 다 비어있는 것을 보고는 그래도 나쁜 선택지가 아니었음에 안도했다.


 이제 슬슬 집에 가려고 할 무렵, 아이들에게 잠 신호가 왔다. 행동이 느려지고, 별거 아닌것에 짜증을 내고, 손을 잡는데 자꾸만 스르륵 빠져나간다. 큰일이다 싶어서 빨리 지하철로 이동하려 하는데, 우리 아들과 2살 조카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버린다. 2살 조카야 유모차를 타서 괜찮지만 우리 아들은 아니다. 이젠 제법 무거워진 아들을 안고 또 근처 카페를 찾는다. 


 한쪽 팔로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쪽으로 커피를 마시며 벌써 커피 두 잔으로 카페인을 넘치게 충전한다. 한파가 계속되어 추운 날씨지만 아이를 데리고 갈 때는 커피는 왠만하면 아이스로 마시는데, 아이가 뜨거운 커피를 쏟을까봐 걱정되는 것도 있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목이 말라서 시원한게 당기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칭얼대면 금방 쭉 들이켜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아이스를 선호하는 것도 있다. 


 전시회장과 가까운 곳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동생이 오늘 회사가 일찍 끝났다며, 이쪽으로 오겠다고 한다. 동생이 합류하여 어른 4명, 아이 3명이 되었다. 연말이라 이제 더 지체되면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질 것 같아 아이를 안고 출발한다. 그래도 어른이 한명 더 있어서 한결 수월한데, 나는 아이를 안고 있느라 다른 손을 쓸 겨를이 없다. 


 지하철은 이미 사람이 꽉 찼지만 더 늦으면 답이 없을 것 같아 선택의 여지 없이 지하철을 탄다. 졸음을 한껏 참고 있던 4살 조카도 결국은 잠들어버려서 언니와 나는 아이를 안고, 엄마와 동생은 2살 조카의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타니 언니와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잠든 아이들을 안고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언니가 갑자기 내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고 한다. 핸드폰 거울로 요리조리 살펴보니 왼쪽 눈에 실핏줄이 터졌고, 쌍꺼풀이 두터워져있다. 오늘 하루가 상당히 힘들었던 모양이다.


 지하철을 내릴 때쯤, 아이들이 깼다. 비몽사몽한 아이들의 걸음을 재촉해서 택시를 탔다. 집으로 돌아가며 느낀 건, 첫 지하철 나들이는 나름 성공적이었으나 그 과정이 거의 고행 수준으로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 이렇게는 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 가면서 아이가 "엄마, 전시회 재밌었어요. 또 가고 싶어요" 라고 하는 말을 듣자, 고생한 것이 조금은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들었다.(100% 사라졌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하하...) 그래도 오늘 외출이 아이 기억에는 즐겁게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뿌듯했고, 아이의 중요한 시기에 많은 것들을 함께하고 즐겁게 해 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불재? 아니, 스불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