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열 개였으면 좋겠다는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엄마, 직장인, 그리고 대학원생.
현재 내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몫이다. 회사에서는 5명의 팀원들을 건사해야 하는 팀장에, 이제 곧 만 4세가 되는 활달한 남자아이의 엄마고, 현재 업무나 학부 전공과 전혀 무관한 학과의 특수대학원을 다니는 대학원생이다. 모든 사람에게 24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고, 평일 5일과 주말 2일은 동일하게 주어지는데 내가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려면 사실 이렇게 주어지는 시간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일단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출근 준비를 서둘러하고, 아이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틈틈이 아이를 깨운다. 보통 맞벌이 부부의 아이는 늦게 잠드는 편이라는데 우리 아이도 예외가 아니고, 출근 때문에 졸려하는 아이를 억지로 깨우는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운이 좋으면 아이는 투정 몇 번 하다가 그래도 식탁에 겨우 앉아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아침을 먹지만, 운이 나쁘면 아이는 크게 울음을 터뜨리며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싶다고 떼쓴다. 운이 더 나쁘면, 엄마가 옆에서 같이 뒹굴뒹굴해주지 않으면 더욱 큰 소리로 울면서 난리를 치게 되는데 이 상태까지 안 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처음에는 아이가 혼자 먹는 것을 격려하면서 지켜보다가, 결국은 뒤로 갈수록 아이 입에 음식을 넣어주느라 내 손이 더욱 바빠진다. 먹는 속도를 가늠하며 아이의 옷을 꺼내두고, 마스크를 챙기고, 신발까지 미리 꺼내둔다. 틈틈이 화장실로 가서 칫솔에 치약을 묻혀두고 물도 받아둔다. 이 모든 일을 아이가 음식을 한 입 먹고 다음 한 입을 먹기 전까지 하나씩 해놔야 효율적으로 시간을 썼다고 할 수 있겠다. 아침식사를 서둘러 마치면, 도망가려는 아이를 붙잡고 옷을 갈아입히고 세수를 시킨다. 윗도리를 갈아입히는데, 아이가 옷의 촉감이 마음에 안 드는지 다시 벗어던진다. 시간이 좀 있으면 새로운 옷을 재빨리 가져오고, 시간이 정말 없으면 그냥 내복차림 그대로 위에 카디건이나 얇은 잠바를 덧입히는 수밖에 없다. 옷 하나 입고 도망가면 다시 붙잡아 양말 한 짝, 장갑 한 짝씩 서둘러 입힌다.
아이의 옷을 다 입히고 세수를 시키고 이를 닦이고 나면, 내 겉옷을 대충 챙겨 현관문을 나선다. 35층이나 되는 아파트인데, 도대체 설계를 누가 했는지 엘리베이터가 달랑 1대라 한번 놓치면 5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운 좋으면 한방에 엘리베이터를 타지만 또 정말 운이 나쁘면 방금 내려간 엘리베이터가 35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회사로 출근.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나 지하철은 없고, 심지어 지하철은 2번 갈아타야 한다. 게다가 회사는 4호선 라인에 위치하고 있어서 출근길 시위 시간에 걸리면 또 시간을 잡아먹힌다. 환승하는 역에서 헐레벌떡 뛰어서 아슬아슬 지하철에 탑승하지만 현재 시위 중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허탈함에 몸에 힘이 쭉 빠진다.
겨우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출근 버튼을 누르고, 일을 시작한다. 올해는 이상하게 우리 팀에 변동이 많아서, 하반기 들어 관리할 업무가 크게 두 번 추가되었고 그만큼 내가 참석할 회의 또한 많아졌다. 외근 갔다가, 회의를 연달아 두세 개 하고 나면 그날은 이미 체력적으로 탈탈 털린 기분이다.
팀원들에게 업무를 배당할 때도 고심해서 해야 하는데, 특정한 팀원에게만 일이 몰려서도 안 되고 어떤 팀원이 이 업무를 잘할지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이 많을 것 같으면 팀원들의 사기도 미리 진작시켜줘야 하고, 팀 업무가 계속 추가되는 것에 대해서도 어떨 때는 방어하고 어떨 때는 팀원들에게 다 같이 양해를 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며, 쓴소리를 해야 할 때면 말을 어떻게 전할지 한번 더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 보고, 적절한 타이밍을 봐서 업무 칭찬도 해줘야 한다. 그렇게 또 하루가 뭐 했는지 모르게 후루룩 지나간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대학원 수업이 있다. 원래는 학기당 3개 과목을 신청할 수 있는데, 두 번 정도는 4개 과목까지 신청할 수 있다고 하여 이번 학기에는 욕심나어 4개 과목을 신청했다. 물론, 특수대학원은 직장인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일반대학원보다는 시험이나 과제에 대한 압박이 다소 덜한 편이지만... 과제가 몰리는 기말쯤이 되니 4개 과목을 신청한 내 자신이 싫어질 뻔했다.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학기가 언제 끝날 지를 카운트다운하기 시작했는데, 과제 제출 기한이 다가오자 잠을 줄여 과제를 하느라 입 안에 혓바늘이 돋아서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기말과제를 제출하는 주에는 좀비가 된 기분이었고, 넉넉하게 과제에 시간을 쏟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제출하기 직전 과제를 읽어보자 이보다 더 엉망일 순 없어서 스스로 너무나 창피했다. 이 모든 시련을 끝내고 마지막 과제를 제출했을 때는 그냥 내용은 됐고 제출하는 것에 의의를 두자며 목표를 하향조정하기도 했다.
내 몸은 한 개인데,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 내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다. 몸이 열 개, 아니 최소 한 개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한창 바쁜 시기에는 힘든 상황에 대해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자잘한 상황에 대해 후회한 적은 있어도 인생의 큰 목표 차원에 있어서는 후회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를 낳고 키우겠다는 결정, 팀장으로서 팀을 책임지겠다는 결정, 배워보고 싶던 새로운 학문에 도전하겠다는 결정. 이 세 개의 목표는 다름 아닌 나 스스로가 정한 것이고, 이 결정이 가져오는 행복 또한 내 몫인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상황을 ‘스불재’가 아닌 ‘스불행’으로 받아들이는 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역할을 동등하게, 완벽히 잘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애당초 “완벽하게”, “잘”이라는 기준이 모호하기 도 하거니와, 때로는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마무리하기보다는 조금은 부족한 상태로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더 좋은 조각으로 채워 넣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것이다. 나의 꾸준함과 확고한 목표는, 스스로 불러온 행운을 붙잡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