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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죄인가요? <청담국제고등학교>

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가난을 핑계로 삼는 것은 죄다

by KEIDY

(※주의!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담국제고등학교>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마지막화를 볼때까지 첫 화에서 벌어진 사건이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완결이 아니고 시즌1만 먼저 올라온 것이더라고요. 오히려 마지막 화에서 추가적인 미스터리를 던져주며 시즌1을 마무리했고, 시즌2에서는 여럿 던져진 떡밥을 해결하는 데에 집중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사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몇 가지 불편한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드라마는 나름의 재미와 흡입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가수 레드벨벳으로 인지도가 높은 '예리'가 그동안의 밝고 예쁜 모습을 넘어 히스테릭하고 거만한, 그러나 나름의 신념을 가진 재벌2세 '제나'를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신예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펼쳤고요. 그리고 요즘 학생들의 학교생활이나 관심사 등에 대해 잘 녹여내어 상당히 트렌디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계속 강조하는 특정 신념이나 주제의식에 크게 공감을 할 수 없어서 더욱 불편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에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부모의 재력에 따라 계급이 나눠져 있으며, 그 계급을 당연시하고 공고히 하는 공간으로서 '청담국제고등학교'라는 가상의 학교를 설정하고 여기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학생들은 '청담국제고등학교'에 가고 싶어하고, 여기에 입학한다면 앞날이 탄탄히 보장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이 학교는 기본적으로 부유한 학생들의 진학률이 높기 때문에 이 안에서 또 추가적인 계급이 나눠지게 됩니다. 입학하고 끝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더 부유한 사람과 덜 부유한 사람이 나눠지는 것이죠. 그리고 이 학교는 형평성을 위해 부유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따로 TO를 배정해서 진학의 길을 열어놓는데요, 이들에게는 각종 장학금과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고 졸업하고 나서도 지원금과 채용 연계를 보장한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혜인'은 부유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났지만 공부를 잘했고, 열정만은 남 못지않게 부자인 학생인데요. 저는 이 주인공의 캐릭터가 아쉬웠던 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소 이기적인 행동들을 하게 되는데 그게 도덕적인 기준 안에서 많이 어긋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혜인은 자신이 현재 놓인 상황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데 그 노력의 방향이 어긋났다고 생각합니다. 예시로, 혜인은 친한 언니의 대학교 학생증을 빌려 대학생이라고 속이고 고등학생 과외를 합니다. 그리고 과외 학생 집에서 몰래 과외 학생의 명품옷을 입거나 가방을 들고 사진을 찍어 SNS에 업로드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그 학생에게 들키게 되고, 속인 것을 눈감아주는 댓가로 학생의 숙제를 해 주거나 잔심부름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약점을 잡아 혜인에게 이것저것 시킨 학생도 잘못했지만 그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 혜인이 먼저 빌미를 제공한 것이죠.


그리고 여러 사건이 있은 후 혜인은 학교에서 징계 처분을 받게 되는데, 그에 대해 혜인이 부당한 처사라고 엄청나게 분노하는 것을 보며 더욱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이 혜인이 거짓말로 과외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요. 영화 <기생충>에서도 주인공의 아들과 딸은 자신의 학벌을 속여 부잣집 자제의 과외를 시작하게 되고,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데요. '가난'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가난'을 빌미로 양심을 팔고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것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혜인이 자신의 것이 아닌, 부자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요. 물론, 부유한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부분을 너무 강조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혜인에게 일어나는 사건 대부분이 현재의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을 욕심내다가 벌어지는 일이고 또 이걸 수습하려다가 일이 더욱 커지는 상황들이 반복됩니다. 물론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여러 사건들과 다양한 장치를 넣는 것은 맞지만 이 사건들이 대부분 비슷한 내용으로 반복되고 있어서 혜인이라는 주인공 캐릭터에게 공감하거나 응원하기보다는 왜 저렇게 욕심을 내는 걸까, 하면서 더욱 의아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일이 벌어지면,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반성한다기보다는 주로 환경 탓이나 자신을 속인 다른 사람들을 탓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주인공 캐릭터에게 마음이 가야 그 캐릭터의 시각에서 드라마의 전개를 따라가게 되고 재미를 느끼게 될 텐데 주인공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 주인공을 옹호하게 되면 나 또한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사람이라고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최근 여러 콘텐츠에서 '사적 복수'가 핵심 주제로 부상하면서 고난을 겪은, 또는 고난을 겪게 된 주인공들이 법의 테두리 밖에서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내용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상당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적 복수를 다룬 콘텐츠들의 결말은 대부분 가해자들을 처절하게 응징하면서 그 콘텐츠를 보는 많은 사회적 약자, 평범한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죠. 그리고 이 콘텐츠들의 주인공은 가해자들에게는 자비가 없을지언정 자신을 돕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사회적으로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청담국제고등학교>에서는 주인공이 그저 환경 탓, 남 탓만 하면서 자신의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나는 가난하니까 이정도는 괜찮다'라고 스스로 용서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는 콘텐츠를 접하는 학생들에게 자칫 잘못된 도덕관을 심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물론 <청담국제고등학교>는 아직 완결이 난 드라마가 아닙니다. 그래도 드라마 뒷부분으로 갈수록 주인공 혜인과 또 다른 축의 주인공 제나가 서로의 영향을 받아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시즌1까지는 주인공이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였더라도, 시즌2에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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