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포켓몬스터DP : 아르세우스 초극의 시공으로> 를 보고
(※주의!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장판 포켓몬스터 재개봉 소식에, 요새 포켓몬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5살 아들을 데리고 영화관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 치고는 조금 긴 시간인 1시간 35분이라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엔딩 음악까지 빠짐없이 보자고 한 걸로 봐서는 상당히 재미있었나 봅니다. 사실 저도 큰 기대를 하고 가지 않았었는데 생각보다 이야기가 탄탄했고 감동과 교훈이 잘 어우러져서 상당한 수작이라고 생각했지요.
이 작품에서는 포켓몬스터 뿐만이 아니라 거의 전 생명체의 시초이자 신으로 추대되는 아르세우스가 인간을 가엾게 여겨 자신의 힘을 나눠주는 존재로 등장하는데요. 아르테우스는 운석이 떨어져 몰살의 위기에 처한 생명체들을 구하고자 자신의 힘을 거의 다 소진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힘의 원천인 플레이트를 분실하는데, 마침 그 근처에 있던 인간의 조상 다모스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다시 힘을 되찾죠. 그에 대한 감사로, 세상을 비옥하게 만들 수 있는 5가지 플레이트를 뽑아 생명의 보옥을 만들어 다모스에게 빌려줍니다. 다모스는 아르세우스의 배려에 감사하며 다음에 아르세우스가 돌아올 때 생명의 보옥을 다시 돌려주기로 약속하죠.
그러나 보옥을 돌려받기로 약속한 날, 다모스는 약속을 어기고 가짜 보옥으로 아르세우스를 속입니다. 보옥을 돌려받지 못하면 아르세우스 또한 자신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으며 생명까지도 위험한 상황입니다. 아르세우스는 분노하여 자신이 힘을 다시 어느정도 회복한 후 세상을 멸망시키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모스의 후손인 시나라는 무녀는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을 통해 아르세우스가 머지않아 세계를 멸망시키러 올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로 원래는 만나서는 안 될, 각기 다른 공간을 지배하던 신에 가까운 포켓몬들(디아루가, 펄기아, 기라티나)이 자꾸 부딪치며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아르세우스가 복수를 위해 인간세계를 찾아오고, 시나는 대대로 내려오던 생명의 보옥을 돌려주며 용서를 구하는데요. 알고보니 그 생명의 보옥은 가짜였고 아르세우스는 더욱 더 분노하여 세상을 마구 공격합니다. 그 자리에 모여있던 디아루가, 펄기아, 기라티나는 아르세우스를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었고 그 중 시간을 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던 디아루가가 시나와 지우 일행들을 과거 다모스가 살아있던 시절로 보냅니다.
과거에 도착한 시나와 지우 일행은 아르세우스를 배신하면 먼 미래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리려 애씁니다. 마침 신전에 있던 다모스의 측근 기신이라는 인물은 지우 일행은 우선 감옥에 가두고 시나만 데려가서 미래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습니다. 시나는 기신이 자신의 말에 설득되어 아르세우스에게 보옥을 돌려줄 것이라고 믿게 되지만, 알고보니 다모스는 아르세우스를 배신한 게 아니라 기신이라는 인물이 다모스를 배신하고 그를 감옥에 가둔 뒤 생명의 보옥을 빼돌린 것이었죠. 오히려 지하 감옥에 갇힌 지우 일행은 다모스가 아르세우스를 배신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와 힘을 합쳐 미래의 세상을 구하기로 합니다.
아르세우스가 보옥을 돌려받으려 나타나자, 기신은 오히려 시나를 내세워 가짜 보옥을 건네게 하고 아르세우스를 은을 녹인 물을 쏟아부어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또 다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여 아르세우스는 힘을 잃고 그의 분노를 자극하는 역사가 반복되려고 할 때 다모스와 시나는 그들의 능력, 즉 포켓몬의 마음속에 접속하여 그들에게 진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모스가 자신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르세우스는 분노를 잠재우지만 이미 힘을 많이 빼앗긴 상태였는데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지우는 피카츄와 함께 아르세우스를 구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게 됩니다.
현재의 아르세우스는 분노에 휩싸여 이성을 잃은 상태. 그러나 과거에 지우와 피카츄가 자신을 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공격을 멈추게 되고, 진짜 생명의 보옥을 돌려받으면서 힘을 다시 회복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다모스의 배신으로 괴로워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힘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인간세상을 축복하며 자신의 공간으로 다시 떠납니다.
작품을 보며, '신뢰'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극 중에 아르세우스는 자신을 구한 다모스를 믿고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플레이트를 떼어 도움을 줍니다. 다모스 또한 그 배려에 감사해하며 빌려준 생명의 보옥으로 열심히 터전을 가꾸죠. 이 둘 사이에 처음부터 신뢰가 없었더라면 아르세우스가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돕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옥을 돌려받으러 왔을 때, 아르세우스는 자신이 믿었던 다모스가 배신했다고 생각하여 큰 충격을 받고 증오를 불태우게 되는데요. 믿었던 존재의 배신만큼은 매우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죠.
슬프게도, 사실 요새 '신뢰'라는 가치에 방점을 두는 경우가 매우 적어진 것 같습니다. 남을 잘 믿고 따르는 사람을 도리어 어리숙하다고 얕보고 '호구'라고 비하하거나, 착한 사람은 남에게 무조건 이용당하기 때문에 차라리 먼저 상처주고 배신하는 것을 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신뢰'의 가치는 피상적이고 단기적인 인간관계라면 몰라도 장기적인 인간관계에서는 필수적인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나를 속이려 할 때 눈감고 속아주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최소한, 본인에게 떳떳하려면 저 사람이 배신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쳐야겠다는 그런 생각만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나는 그 사람을 믿었지만 그 사람이 나를 믿지 않아서 관계가 파탄날 경우, 왜 나는 사람보는 눈이 없을까, 하며 한탄하기보다는 오히려 나는 적어도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듯 합니다. 신뢰를 몸소 보여주는 사람은 매우 드물거니와, 먼저 신뢰를 보여주는 사람은 질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다행스럽게도 작품의 결말에서 아르세우스는 다모스에 대한 신뢰, 더 나아가 인류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사실 신뢰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획득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 국가 등 더 넓은 범위로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얻으면 그와 유사하거나 관계된 사람들도 좋아보이는 후광효과가 나타나기도 하고요. 물론 그 느낌이 때로는 틀릴 수도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타인을 바라볼 때 신뢰의 눈길로 보는지, 불신의 눈길로 보는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남을 항상 의심하며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신뢰를 갖고 타인을 대하는 것이 정서적으로는 훨씬 유익한 방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