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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에 삼켜질까, 깨부술까. (feat. <간니발>

알면서도 속는 집단 가스라이팅의 무서움

by KEIDY

<간니발>이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요새 다들 디즈니플러스에서 <무빙>을 보던데, <무빙>을 보러 들어갔다가 아직 완결이 안 났길래 또 다른 추천작인 <간니발>부터 보았는데 결론적으로는 너무 재미있어서 이틀 만에 다 보고 말았습니다. '한국판 이끼'로 홍보하고 있던데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마을, 그 안에 정착하는 외부인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과 그 마을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에 대해 외부인이 추적해 나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외진 산골인 쿠게 마을에 한 부부와 딸이 이사를 옵니다. 남편은 경찰관으로 이 마을로 파견을 받아서 모든 가족들이 이사오게 되었는데요. 마을사람들은 오랜만에 외부인을 만나 이것 저것 조언도 해 주고 채소 등도 양껏 나눠주는 등 친절을 베풉니다. 이 마을은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 임업으로 먹고 사는 곳인데 숲의 대부분이 고토 가문이라는 한 혈족이 소유하고 있고, 마을 사람들은 고토 가문 사람들에 대해서는 함부로 하지 못하고 두려워합니다. 고토 가문 또한 마을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주인공인 경찰관, 다이고는 낯선 마을에 정착해서 잘 지내보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친절한 듯 하면서도 다이고의 가족을 감시하고, 마을 이장과 잠깐의 말다툼을 하자마자 마을 전체가 그 내용을 알고 적으로 돌아섭니다.


고토 가문도 매우 의뭉스럽습니다. 다이고 이전에 이 마을에 파견왔던 선배 경찰관의 행적이 묘연해졌는데, 그 선배 경찰관이 고토 가문을 조사하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고토 가문이 사람을 먹는다'고 주장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이 마을에 오자마자 곰에게 물려 죽은 시체가 발견되어 확인 차 갔었는데 그 사람은 고토 가문의 당주였고, 곰에 물려서 죽었다고는 했지만 이상하게 팔에 사람의 잇자국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또한 실어증에 걸린 딸이 어디서 주워온 시체 손가락을 건네주었는데 알고 보니 실종된 선배 경찰관의 것이었죠.


이 모든 의문을 품고 다이고는 고토 가문과 마을에 대해 조사를 합니다. 아버지를 찾아 마을로 다시 온 실종된 선배 경찰관의 딸을 만나고, 그렇게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가던 와중에 얼굴을 뜯어먹혔다고 주장하는 남자와 만납니다. 실종된 선배 경찰은 결국 시체로 발견되고요. 또한 선배 경찰관과 접촉한 오컬트 커뮤니티 운영자를 만나 여러 정보를 듣는데 이상하게 쿠게 마을은, 사산율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을 이장의 딸이 출산 도중에 아이가 사산되어 정신상태가 좋지 않은데, 그 여자는 아이가 죽었다고 했지만 분명히 움직이는 것을 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마을의 조산사는 단 한명이었고 그 사람은 바로 고토 가문의 당주 고토 긴이었으며 게다가 그녀는 쿠루병과 유사한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여러 방면에서 고토 가문이 사람을 먹고 있다는 정황적인 증거가 나오고, 다이고는 사건을 끝까지 추적하고자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 증거를 찾으려 합니다. 그 와중에 고토 가문에 붙잡혀 고초를 겪는 도중, 경찰 쪽에서 손을 써서 위기의 순간에 빠져나올 수 있게 됩니다. 더 이상 아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다이고는 혼자서라도 다시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알고보니 경찰쪽에서도 고토 가문에 의문을 품고 조사하고 있었기에 같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연마다 열리는 마을 축제에서 아이를 잡아먹는 행사를 하기 때문에, 행사 진행까지 만 하루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불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완전 무장을 한 고토 가문과 대결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SAT(일본의 경찰청 소속 대테러부대)를 움직이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므로, 다이고는 얼굴이 뜯어먹힌 남자에게 연락해 증인으로 서줄 것을 요청하고 그 남자 또한 거의 설득되었지만, 알고보니 그 남자를 구하고 지금까지 보살펴 준 사람은 고토 긴의 양녀 고토 아이었고 그녀는 자신이 나서면 차기 당주인 친아들 고토 케이스케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설 수 없었습니다. SAT 설득이 어려워진 다이고는 맨몸으로 다시 고토 가문이 아이들을 숨겨둔 장소를 찾아 떠나고, 경찰은 다이고의 가족들을 보호하려 경찰관들을 보내지만 그 중 한 명이 고토 가문의 사람으로 바꿔치기된 사실을 몰랐습니다. 아이들을 숨긴 장소에 도착한 다이고는 아이들이 모두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의문의 거한에 의해 습격당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몇 가지 생각해 볼 만한 주제들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집단 가스라이팅입니다.

쿠게 마을의 사람들은 고토 가문에 대해 선망, 질투, 두려움, 경외의 마음을 갖는 것 같습니다. 고토 가문은 쿠게 마을의 생계를 책임지는 숲을 모두 소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고토 가문에 밉보이면 생계가 끊겨 살아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외부로 나와서 살거나, 다른 일을 찾으면 될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폐쇄적인 외진 산골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생각의 폭이 제한되고 암묵적으로 퍼져 있는 집단의 규칙에 익숙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고토 가문과 가까이 지내지 않고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게 잘못된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때로는 본인에게 피해가 올지라도 항의하지 않고 참아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암묵적 규칙 하에 매년 아이를 잡아먹는 고토 가문의 악습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이겠죠. 마을 이장조차 자신의 손녀가 고토 긴에 의해 희생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말 못하고, 딸이 미쳐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요. 카노 순경이 고토 가문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을 전체를 짓누르는 형태가 없는 공포, 대대로 이어지는 두려움은 뼛속에 각인되어 고토 가문의 그 어떤 행위라도 반기를 들 수 없는 집단의 규칙이 정해진 겁니다. 일종의 집단 가스라이팅입니다.


두 번째로, 극단적 집단주의입니다.


앞서 집단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고토 가문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쿠게 마을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쿠게 마을은 외부인들에게 일견 친절해 보이지만, 친절을 가장해 외부인들을 감시하고 자신들의 집단적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집단 따돌림으로 응징합니다. 조언을 해 주는 척, 은근슬쩍 감시하기 편하도록 다이고 가족을 조종하기도 합니다. 마을 행사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득달같이 몰아붙이고, 잠시 자리를 비우면 어디 다녀왔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사생활을 침해합니다.


이러한 집단주의는 외부 교류가 쉽지 않았던 예전에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한 가치였지만, 각자의 개성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오늘날에는 극단적 집단주의는 불편할 뿐더러 때로는 생존을 방해합니다.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새롭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쉽지 않죠. 쿠게 마을의 극단적 집단주의는 그 마을을 점차 더 고립되게 만들고 폐쇄적인 태도는 외부인들이 그 안에 들어와 살 수 없도록 만들어 발전을 저해합니다.


세 번째로, 잘못된 선민사상입니다.

고토 가문은 매년 아이를 먹는 행사를 합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이러한 끔찍한 풍습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서라도 이어져 왔지만 현대에는 굳이 인육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토 가문은 자기 가문 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고깃덩어리' 취급하며 이러한 가치관을 당주 고토 긴을 통해 계속 세뇌시키고 있었습니다. 고토 긴은 조산사로 일하며 매년 쿠게 마을의 아이를 사산이라고 속여 빼돌리는 데에도 거리낌 없고, 가문의 존속에 반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가문의 사람이라도 무자비하게 처벌합니다.


고토 긴의 딸, 고토 아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잡아먹히는 아이를 구해서 달아나는데, 그의 아들 케이스케가 어머니를 살려주지 않으면 차기 당주인 자신이 죽겠다며 협박을 하죠. 무엇보다도 '피', '혈연'에 집착하는 고토 긴은 차기 당주로 예정된 손자가 죽으면 자신의 뒤를 잇지 못하기에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요. 여기에는 고토 긴으로 대표되는 고토 가문의 잘못된 선민사상의 영향이 큽니다.


고토 긴은 자신의 피로 이어진 혈연들만이 우월한 사람들이며, 가문을 배신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하지 않고, 그 외의 사람들은 죽든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쿠게 마을의 아이들을 훔쳐 자신의 가문을 존속하고 부흥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이용하죠. 이러한 반인류적인 행위는 고토 가문 내에 쿠루병이 발병하게 되는 계기가 되며, 그 신념을 제일 강하게 가지고 있던 고토 긴 또한 쿠루병에 걸리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드라마 <간니발>은 현재 시즌1까지 나와 있고, 시즌2 제작은 결정되지 않았으며 열린 결말로 끝났습니다. 시즌1에서 열린 결말으로 끝날지 시즌2에서 지금까지 나온 의문들을 해소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죠. 이러한 폐쇄적이고 비밀이 많은, 끔찍한 진실을 숨기고 있는 마을에서 다이고와 그의 가족은 살아남아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마을의 집단주의와 악습에 삼켜져 버리게 되는 것일까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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