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효과
1964년, 뉴욕 어느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인이 강도의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여느 살인사건과 이 사건이 달랐던 점은, 그녀가 강도를 만나 살해당하기까지 총 30분 넘는 시간 동안 그 사건의 목격자가 38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하면서 한 여자가 살해당하는 동안 그 사건을 보고도 돕지 않은 비정한 사람들을 부각시켰다. 로젠탈이라는 뉴욕타임즈 편집국장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아무도 돕지 않았는지에 대해 어느 누구도 설명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냉담한 특성을 그 이유로 꼽기도 했다.
이 충격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존 달리와 빕 라탄이라는 학자는 일종의 ‘책임감 분산’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는 누군가 도움을 청할 때 오히려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사람이 많아질수록 한 사람이 느끼는 책임감의 크기가 작아지고 그러한 상황에서는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도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배가 갑자기 아팠다. 그런데 그냥 조금 아프고 말 정도가 아니라 식은땀을 흘릴 만큼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졌고, 같이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던 동생이 걱정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카페는 상당히 컸고 사람들도 꽤 많이 앉아 있었다. 동생이 사람들을 향해 ‘언니가 너무 아픈 것 같다. 도와달라’ 고 여러 번 외쳤는데도 정말, 아무도 도우러 오지 않았다. 나는 카페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고 그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광경이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결국 동생은 점원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고 점원이 119에 신고하여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갔었다. 그 일을 계기로, 사람들의 비정함과 무심함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고 내가 필요할 때는 정작 도움을 받지 못하는데 타인을 돕는 것이 과연 가치있는 것인지 회의감마저 느꼈다.
그래서 ‘방관자 효과’라는 현상을 알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이 사건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러한 방관자 효과는 알고보면 우리 일상에서도, 회사에서도 쉽게 일어나고 있었다. 쉽지 않은 프로젝트를 맡아 고생하는 동료를 보고도, 그 사람이 매일 야근하고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더라도 먼저 나서서 돕겠다는 사람은 드물다. TFT를 새로 만들어야 할 때,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원을 받으면 생각보다 자원자는 많지 않다. 바쁜 출퇴근 길, 지하철역에서 한 사람이 쓰러졌다고 했을 때 정말이지, 먼저 다가가는 사람은 적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데면데면하고 냉담한 회사생활과,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비정한 도심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책임감 분산에서 비롯된 방관자 효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쉽게 고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효과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도움을 청할 ‘구체적인 누군가’를 특정해서 지정하는 것이다.
즉, 앞서 언급했던 카페 에피소드에서 ‘거기 모자를 쓰고 초록색 점퍼를 입은 남자분! 저 좀 도와주세요!’ 하고 콕 집어 도와달라고 말하게 되면 나뉘어져 있던 책임감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이를 응용하자면 어려운 프로젝트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동료 한 사람을 콕 집어 ‘ㅇㅇ씨, ㅁㅁ업무를 잘 하시는 것 같은데 저 잠깐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부탁할 수 있고, TFT 지원자가 적으면 지원자 풀을 좁히거나 아예 처음부터 어떤 조건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고 콕 집어 공고를 낼 수 있다. 지하철에서 쓰러진 사람을 볼 때도 본인이 힘이 약하다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같은 성별의 사람이 도와야 하는 등 직접 돕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거기 여성분! 저 좀 도와주세요’, ‘거기 키 크고 안경 쓰신 남자분! 저 분이 쓰러지신 것 같은데 도와주시겠어요?’라고 구체적으로 도울 사람을 특정하여 도움을 청한다.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지하철 대기 공간에서 의자에 앉다가 주룩 미끄러져 주저앉은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를 보긴 했지만 내가 과연 할아버지를 들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망설이고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나를 딱 보더니 ‘거기 아가씨, 나 좀 도와줘’하고 콕 집어 말하는 것 아닌가. 근처로 다가가 “제가 힘이 많이 없어서 쉽지 않겠지만, 일단 한번 부축해 볼게요” 하고 낑낑거리며 할아버지를 의자에 앉혔다. 더 도움이 필요한지를 묻지 할아버지는 조금 쉬면 괜찮을 거라고 하시고 ‘아가씨, 고마워’하고 인사하셨다. 아, 이 할아버지께서는 본능적으로 방관자 효과를 줄이는 방법을 알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방관자 효과를 알게 되고, 이에 대해 더 찾아보면서 인간의 본성이 생각만큼 마냥 착한 것도, 마냥 악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원인을 아는 것, 그리고 알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