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 현상에 대하여
사회심리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1900년대에는 사회적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여러 의미 있는 실험들이 많이 행해졌고, 그때에 나온 여러 가지 이론들은 현재의 심리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아직 연구 윤리가 명확하지 않던 시절에는 실험결과의 오염을 막기 위해서 피험자들을 기만(!)하는 실험들도 다수 있었으며, 대표적인 예로 ‘동조 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애쉬의 ‘선분 실험’과 밀그램의 ‘권위에의 복종’ 실험이 있다.
애쉬의 ‘선분 실험’은 밀그램의 실험에 비해서는 덜 매운맛(?)의 기만 실험으로, 실험을 진행하는 사람과 실험 참가자로 위장한 사람들이 미리 짜고 진짜 실험 참가자 한 사람을 혼란에 빠뜨린다. 실험 참가자는 마치 인지능력, 시각능력을 측정하는 듯한 실험에 참여하게 되는데 선분 하나를 보여주고, 그다음 그림에서 A, B, C 세 개의 선분 중 처음 보여준 선분과 같은 길이의 선분을 골라내는 간단한 실험이다. 누가 봐도 명확하게 B 선분이 처음 보여준 선분의 길이와 같지만 실험자와 미리 짜고 들어온 다른 실험참가자들이 고의적으로 오답을 선택한다. 진짜 참가자는 처음 오답을 답변하는 사람을 볼 때는 별 생각이 없지만 다른 참가자들이 오답을 계속 말하게 되면 인상을 찌푸리며 자극을 다시 면밀하게 관찰하고, 몸을 앞으로 점점 기울인다. 참가자가 혼자인 상황에서는 99% 정답을 맞히지만, 참가자가 여러 명으로 늘어날 경우 정답을 말하는 경우는 63%이며 나머지 37%, 즉 1/3은 오답을 택하게 된다. 이는 확실하고 명확한 답이 있더라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의 단서에 민감하며, 대세에 따르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여러 담당자가 모여 회의를 진행한다고 가정해 본다. 회의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A라는 사람이 여러 대안 중 1안을 강력히 주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A에게 동조하여 1안에 힘을 보탠다.(특히 그 사람이 평소에 회사 내에서 입지가 탄탄하거나 직급이 높을 경우에는 그 효과가 배가된다.) 그러나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B라는 사람은 비슷한 일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1안이 얼핏 좋아 보이지만 굉장한 리스크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2안이 훨씬 더 나은 대안, 정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실은 회사생활에서 ‘정답’이라는 것은 없지만, 밝혀진 대안들 중 제일 나은 대안이므로 ‘정답’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나 그 회의에서 B를 제외하고 모두가 1안을 지지할 때 B가 2안이 더 낫다고 주장할 확률은 아마 낮을 것이다. 만약 A가 그 회의에서 가장 높은 직급이거나 심지어 사장, 대표 같은 최고 권력자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리고 굳이 A라는 사람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1안이 더 좋다고 선택한다면 마찬가지로 B는 2안을 강력하게 주장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집단 상황에서 모두 바보가 되고 잘못된 단서를 믿어버린다는 의미일까? 선분 실험의 비하인드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실험이 모두 끝나고 실험자가 진짜 실험참가자에게 아까 대답한 내용이 진실된 대답이었는지를 슬쩍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진짜 실험참가자는 당연히 답을 알고 있다고 대답하며, 정답을 맞혔다고 한다. 즉, 동조 실험을 통해 사람의 인지가 왜곡되고 신념이 바뀐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사회적인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의 보조를 맞춘 것이지 그 사람이 바보가 되거나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 것이 아니란 뜻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물론 동조가 필요할 때도 많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억지주장을 하며 관계를 흐트러뜨리거나, 본인 주장을 내세우는 것에 급급하여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모든 일에 반대하라는 뜻이 아니다. 동조 실험에서 집단이 아무리 잘못된 대답을 해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개인이 알듯이, 잘못 진행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공개적이고 사회적인 장소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개인이 알아차리고 개선해 나갈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집단의 주장을 꺾는 것은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지만 현명하게 그 길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회사생활에서 갖춰야 할 능력일 것이다.